버릇처럼 무섭다. 그래도 괜찮아, 인정해야지?..... 거짓말이다.
시계가 10시를 넘기고 있다. 어제 해놓은 밥을 데운다. 3분 30초는 돌려야 밥이 말캉하고 뜨거워진다. 밥을 좀 적셔서 데워야 그렇다. 식탁 위 컴퓨터를 안쪽으로 밀어 놓고 데운 밥의 랩을 벗긴다. 김이 모락모락, 충분히 뜨거운 지 확인하고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카레를 붓는다. 비비고 비비고 채 다 잘 비벼지기 전에 건더기와 밥을 한 수저 먹는다. 훅 들어오는 카레 맛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다. 나무 수저로 벅벅 긁어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이 그릇을 비우고 나면, 그제야 머릿속이 다시 자기혐오로 차기 시작한다. 아! 2시간은 있어야 소화가 된다는 데 자기 전 먹는 밥은 소화 시간이 더 걸린다. 이제 자야 하는데 곤란하다. 자정을 넘기기 어렵게 졸음이 쏟아진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나 싶지만, 위통으로 잠든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깬다.
요즘 계속 이렇다. 잠잠했던 버릇이 다시 올라오고 있다. 멈추고 싶은 것은 멈춰지지 않고, 하기 싫은 데 이미 해버린 후고, 해야 하는 것은 쳐다보기도 싫고, 난 뭘 어쩌자는 건가? 그렇게 싫어하는 일을 자신에게 무참히 저질러 버린다. 항상 자신을 절벽 가까이로 몰아붙이는 못된 버릇. 그렇다고 배수진을 치고 살아 보겠다고 악착을 떨어본 적도 없다. 그저 무기력하게 그 위험 속에 자신을 던지고 있다. 던지고 또 던지고 잔인하게 자신을 무서운 저곳으로 던지기를 반복한다. 난 정말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건대 이렇게 자신이 망가지고 있는 것을 그냥 두고 보기만 하는 거지? 왜? 자신을 직접 나서서 아주 적극적으로 망가트리고 있는 거지? 난 엉망이다.
그래 무서운 것이다. 그동안 겪어 본 자신이라 잘 알고 있다고 무서워도 지나갈 거고 사실 그렇게 무서운 것도 아니라고 자신을 속이려고 하지만, 이제 그 정도는 보인다. 난 지금 너무 무서운 거다.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는 눈길, 겪어봤던 그 눈길들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몸서리쳐지게 무섭다. 쳐다보기도 무서워서 고개도 못 돌릴 만큼 무섭다. 그토록 오랫동안 보아 온 자신이지만, 지금 상태의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그러면서도 매번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살기를 아주 아주 잘 살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숨을 고른다. 길게 밖으로 내뿜는다. 나쁜 게 빠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길게 내보내면서 몸에서 힘을 빼 본다. 무서움으로 바짝 긴장하여 딱딱해진 몸에서 뒤 목부터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서늘함이 느껴진다. 반복한다. 몸에서 굳은 기운이 말랑해지도록 반복해서 숨을 내뿜는다. 그러다 보면 당황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뇌 세포들이 긴장을 풀기 시작한다. 그래 난 괜찮지 않지만 곧 괜찮아져야 한다. 괜찮아질 기술로 빠지기 전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자신을 무장해야 한다. 결국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 계속될 것을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하자. 매번 당하지 말고... 숨쉬기부터 해본다. 길게 내뿜는다. 날 공격하는 것들을 내쫓는다. 그리고 고통스러울 만큼 무섭다고 징징거리는 것을 멈추라고 나에게 말한다. 이제 무서운 것은 가버렸으니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에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