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를 떠나,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 주를 이루는, 나이 든 시골마을에 정착한 지 벌써 6년 하고도 두 달이 지나고 있다.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된 이유는 이렇다. 나이가 들면 시골에 내려가 자연과 함께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기를 소원했던 그 꿈을 실현해 보고자 하는 이유였다.
시골마을에서 누리는 생활은 계절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변화 속에 목가적인 풍경을 맛보게 한다. 텃밭에 심어 놓은 채소들은 계절마다 각기 다른 먹 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내가 심고 거두는 자업자득의 기쁨은 결실 앞에 충만으로 채워준다. 더불어 농부의 애쓴 마음도 공감하게 된다. 농부는 씨를 심고 가꾸지만 그 이상은 하나님이 기르신다. 지금까지 식탁에 올려놓은 건강한 채소들 덕분에 오늘도 건강이 유지되며 잘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도시민들에게는 이런 호사를 누려보고 싶은 로망이 아닐까 싶다.
서울에서 부모와 함께 귀여운 손자 둘이 외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왔었다. “뛰지 마! 뛰지 말라고!”, 아이들을 옥죄는 층간소음이 주는 스트레스는 여섯 살짜리 손자 몸에도 배어있었다. “뛰어도 돼요?”라고 묻는 손자에게, “그럼 맘껏 뛰어도 괜찮아.”라고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손자의 표정은 ‘신남’으로 바뀌더니 이리저리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닌다. 이런 모습을 보며 웃음과 함께 안쓰러움도 찾아온다. 손자들은 할아버지가 잡아 준 개구리 몇 마리를 조물거리며, 온 마음이 거기에 빠져있다. ‘놀다 지치면 들어오겠지. 그래 마음껏 놀아라.’ 하고 슬며시 자리를 빠져나왔다.
우리가 사는 마을의 규모는 작은 편이 아니지만, 사람들의 소리가 잘 들려오지 않는다. 골목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을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어느 집 방안을 뚫고 들려오는 아가들의 울음소리는 언젠가부터 사라지고 없다. 이런 슬픈 현실 앞에 노인들만 사는 나이 든 마을이 되었다. ‘slow city‘는 서두를 것도, 바쁠 것도 없는, 느림의 미학을 담아내는 농촌의 한 부분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지만, 인구소멸지역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씁쓸한 환경은
기성세대 모두가 힘을 모아서 풀어야 할 큰 과제이다.
귀농귀촌으로 내려오는 세대들도 사 십 대 이하는 드물고, 오, 육십 대 연령층이 대다수이다. 나이 든 마을에 젊은 세대들이 들어와 함께 살아가면 참 좋겠다. 그러므로 젊은이들 사이에 농업을 선호하는 직업의 열풍이 대한민국 안에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젊은 도시를 떠나 나이 든 마을로 전향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