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겨우내 잠을 자고 있었다. 달력은 봄을 알리지만, 겨울은 여전히 끝자락에 머물러 떠나려 하지 않는다. 오늘은 강한 바람이 온통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천지를 흐려놓았다. 그놈의 바람 때문에 어디를 나서기가 불편하기 짝이 없는 날이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봄이었을까. 화단에 매화는 앙상한 가지에서 얼굴을 내밀며 새롭게 돋아나있고, 그윽한 향기를 아낌없이 뿜어내고 있다. 오며 가며 꽃송이에 코끝을 대고 들숨으로 들이켜 본다. 이 꽃만으로도 봄을 만나는 기쁨이 된다. 꽃이 지고 나면 청 매실이 주렁주렁, 벌써부터 행복을 주는 고마운 나무다.
봄이 오면 맨 먼저 만나는 노란 수선화,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고 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거린다. 수선화를 보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막내동서다. 막내동서는 전남 나주가 친정인데, 친정 갔다 오는 길에 수선화를 얻어왔는데 그걸 줘서 심어놓은 거다. 지금은 캄보디아에서 선교사역을 하며 잘 지내고 있겠지. 노란 꽃을 보며 그리운 동서의 모습을 그려본다. 동서야 건강해라!
지난겨울 엄동설한을 꿋꿋이 이겨낸 쪽파가 새파랗게 싱싱한 자태를 지니고 있다. 쪽파 이파리색이 너무도 곱다. 눈길이 머무는 순간 내 마음을 훔쳐간다. 먹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래도 먹어야 하는 걸 어떡해. 봄이 왔으니 나도 이제 기지개를 켜본다. 움츠렸던 마음을 활짝 열고 봄과 함께 행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