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가정주부가 되기엔 너무 어린가요?

by 작가 다영

아침 7시, 알람에 맞춰 벌떡 일어나 남편과 아이의 점심 도시락을 싸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게 된 걸까.’


아이를 낳은 이후로 나는 가정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자라면서 내 미래를 그리고 떠올렸을 때, 단 한 번도 ‘가정주부’는 그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 피아니스트, 화가, 간호사, 의사, 판사, 변호사, 기자, 방송피디, 교사 등 꿈은 수시로 바뀌었지만 어째서인지 ‘가정주부’는 내 꿈의 리스트 중에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교복을 입고 새벽까지 독서실 자리를 지켰고, 반장 선거, 전교 학생회 선거에는 늘 당연하게 나갔던 당찬 10대의 나.

금요일 밤만 되면 새벽까지 친구들과 신나게 웃고 떠들고 놀다가도 다음날 아침 7시면 아르바이트 중인 도넛 가게 문을 열며 밝게 출근을 하던 스무 살의 나.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어 다시 한번 치열하게 공부해서 수능을 다시 보고 두 번째 대학교에 입학했던 스물한 살의 나.

과외, 알바로 모은 돈으로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고, 학점 관리, 외국어 공부에도 열정을 부어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던 대학생의 나.

‘나는 항상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낼 것이다.’라는 생각이 머릿속 깊은 곳에 당연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그래서인지, 자라온 가정환경 때문인지 나는 늘 바쁘게 살았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인정 중독’, ‘노력 중독’, ‘성취 중독’의 삶이었다.


사회에서 직장인으로서의 경력은 단 2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눈물 흘리다가 또 시간이 지나 성장한 스스로에게 보람을 느끼며 행복했던, 더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될 것이라 꿈꾸던 그 시절. 그곳에 나는 직업적으로 머물러있다. 직업적으로 더 배우고 싶었고, 능력을 키우고 싶었고, 나를 더 꾸미고 싶었고, 돈도 벌고 싶었던 내 나이 만 스물여섯 살.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이듬해 엄마가 되면서 나는 가정 주부가 되었다.

한평생 워킹맘으로 살아오신 친정 엄마 아래에서 자랐다. 늘 바쁘셨던 엄마를 보며 엄마가 가정주부인 친구가 참 부러웠다. 하교 후에 집에 가면 나를 반겨주는 엄마, 따뜻하고 건강한 간식을 준비해 주는 엄마, 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집. 나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엄마가 가정주부인 친구가 부러우면서도, ‘내가 커서 그런 엄마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내 능력을 발휘하는 멋진 직업을 가진 여성이 될 거니까.


그랬던 내가 지금 가정주부로 살고 있다. 어릴 때 꿈꾸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라 가끔씩 주기적으로 회의감이 찾아온다.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나가서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늘 현 상태에 부족함을 느끼고 그 부분을 채우고 발전하려 했던 과거의 나에게서 온 탄성이 아닐까. 지금의 삶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러운데 왜 자꾸만 부족한 것만 생각하며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것일까. 나의 하루는 평화롭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바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혼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를 오롯이 마주한다.


꿈꾸던 삶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는 순간순간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나는 늘 그래왔듯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고, 발전할 것이다. 가정주부의 삶도 멋지다. 언젠가 다시 새로운 길을 걷게 되더라도, 지금의 이 시간은 내 인생의 소중한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이 자리에서, 조용히 나를 빛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