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로서의 '나'의 부재. 나는 놀이하는 어린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긴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질문의 깊이에 비하면 한없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누구에게 보다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우선 나는 과거의 결과물로 존재한다. 과거의 수많은 선택들이 각기 인연을 만들었고, 그것들이 또 다른 이들의 인연과 엉켜서 '나'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과거의 망령입니다. 좋고 나쁜 인연들이 만들어낸 현재의 나는 나라는 착각입니다. '진짜 나'는 여기에 없다. 과거의 흔적만 짙게 있을 뿐입니다.
과거의 성취의 대가를 누리고 있는 나,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벌을 받고 있는 나, 그런 나는 지금의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진짜 나'는 더 '나'에 가까워야 할 것 같습니다. '진짜 나'는 과거의 것들에 쇠사슬로 묶여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그런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는 '진짜 나'의 피부에 불과합니다. 또는 코끼리의 꼬리에 불과합니다. '진짜 나'는 그보다 조금 더 근원적인 무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과거의 망령이 아니라 미래의 창문일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가능성들이 뭉쳐있는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건의 가능성의 출발점입니다. 현재의 나는 아주 찰나의 것으로, 앞으로 영구히 펼쳐질 새로운 인연과 사건의 가능성이며, 나는 그것들을 엿볼 수 있는 창문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어떤 것을 추구하는 나,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나, 그런 나는 내가 '과거의 망령'이라는 해석보다는 조금 더 잘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내가 그런 가능성들의 집합에 불과할까요. 나의 생각은, 나의 의지는, 나의 마음은 어째서 생겨나는 것일까요.
저는 이쯤에 다 달아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동의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모든 과거와 미래를 노니는 어린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토록 괴롭던 과거와 불안하던 미래가 한낱 놀거리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주어진 인연의 파도 위를 물수제비처럼 노니는 어린이일 뿐입니다. 그토록 괴로울 일이 무엇이며, 그토록 불안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어린이에게 세상은 장난감일 뿐입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장난감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미를 부여하기 전의 세상의 모습은 날것 그대로 즐겁습니다. 때로는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 순간들도 놀이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너무 많은 시간을 고통스럽고 지우고 싶은 과거와 불안한 미래를 위해 허비했습니다. 수많은 놀거리들에 치여 그것이 즐거운 줄을 몰랐습니다. 장난감 레고를 밟은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 너무도 많이 아파했습니다. 이 시간들이 또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파도처럼 일렁입니다.
저는 아직 인연의 파도 위를 노닐 자신이 없습니다. 파도에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파도 위를 노닐고 있을 것입니다. 항상 마음속의 미소를 잃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웃으며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나'입니다. '진짜 나'는 놀이를 하는 어린이입니다. 과거와 미래를 노니는 어린이. 그것이 현재의 '진짜 나'라는 사실을 우리는 언젠가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