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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om P Jul 13. 2024

소소한 사람의 커다란 행복 찾기

소확행이 아니라 대확행(?)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무한한 우주의 무한한 별들과 무한한 행성 중 하나 위에 발 붙이고 있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인 나. 그만큼 소소한 존재가 '나'이고 '너'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인연의 끈들 속에서 자율과 타율이 뒤엉켜 살아갑니다. 자유의지란 존재하는가, 그것은 태도에 불과합니다. 인연이 차려놓은 삶의 밥상을 기꺼이 맛있게 취하겠다는 태도, 그것이 자유의지의 궁극적인 형태입니다.


우리는 이리저리 엉켜있는 인연의 끈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처럼 우리는 소소한 존재입니다. 우주의 티끌 같은 존재, 아주 조금의 자유의지. 엉켜있는 인연의 끈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연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요. 그것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수많은 변인들에 의해 엉켜있는 실타래, 그것이 우리의 인연입니다. 풀어보려 할수록 엉키는 실타래와 같습니다. 그 실타래는 '나'와 '너'의 몸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주어진 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나 부처, 우리에게 모두 공평합니다.


 우리의 자유의지가 태도에 불과하고 삶은 인연이 차려준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요. 주어진 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에게도 부처에게도 우리에게도 공평합니다. 예수는 인연에 따라 십자가에 못 박혔고, 부처는 인연에 따라 '깨달음'이라 이름 붙여진 어떤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요. '태도'. 그것이 우리가 조종할 수 있는 우리 삶의 유일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좇는다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유쾌한 상황도 불쾌한 상황도 인연에 따라 주어지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인연 앞에 무력할 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요. '태도'. 그것이 우리가 조종할 수 있는 우리 삶의 유일한 요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커다란 행복을 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해골물을 마시더라도 그것을 맛있게 느끼기로 마음먹으면 그만입니다. 죽음의 칼날이 목에 닿아 있더라도, 그것을 덤덤히 받아들이기로 하면 그만입니다.


태도는 현상을 바꾸지 못하지만, 현상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내면을 뒤바꿀 수 있습니다.


 태도는 현상을 바꾸지 못하지만, 현상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내면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습니다. 행복은 내면에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내면을 바꿀 수 있는데 우리는 상황을 바꾸려 합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너무도 소소한 우리는 늘 커다란 행복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게도 우리 자유의지의 바깥 인연을 바꾸려 애쓰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더욱 옥죄이고 있는 것을 모르는 채로. 행복은 우리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소소한 우리는 늘 커다란 행복을 만끽할 자유의지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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