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달리 즐길 게 없더라도 늘 즐거운 아이처럼
삶은 놀이입니다. 삶은 연극입니다. 빈 손으로 태어나 빈 손으로 떠나는 하나의 놀이입니다. 무대 위에서만 잠깐 펼쳐지는 하나의 연극입니다. 규칙이 없는 놀이. 각본이 없는 연극.
그저 잠깐 펼쳐지는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생각이 이 쯤에 닿고 나니,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이 일어납니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어떠한 목표도 필요하지 않으니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가면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상황에 따라 상대방이 원하는 가면을 쓰고 진짜 자신을 보여주지 못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삶이 연극이라면 우리는 모두 가면증후군에 걸려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떠올린 삶은 조금 다른 형태의 연극입니다.
수많은 인연들로 우리는 이어져있습니다. 수많은 상징들이 무대 위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린이집, 학교, 군대, 회사... 그 사이를 오가며 우리는 인연을 만들며 살아갑니다. 우리 자신 그 자체가 연기입니다. 사실 우리는 빈 손으로 왔는데, 마치 무언가를 쥐고 온 것처럼 무언가를 쥐기 위해서 저 상징물들 사이를 건너다닙니다.
수많은 상징들로 인해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그것들은 절대적인 것인 양 자리를 차지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시대에 따라, 인연에 따라 그것들의 모양은 변하고 규칙이라 불리는 신성해 보이는 어떤 가치도 상대적인 것으로 전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하나의 놀이에 불과합니다. 모든 상대적인 것들 사이에서, 모든 상징들 사이에서, 인연들을 만들며 노니는 공간 - 그것이 바로 삶입니다.
이 점을 떠올리면 마음의 병도 다 나은 것처럼 후련해집니다. 그래, 삶은 하나의 놀이인 것을, 고통을 붙잡고 안달복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점을 떠올리면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한 두려움과 욕망이 내려놓아집니다. 어차피 놀이인 것을, 어차피 상징인 것을.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욕망해야 하는 것일까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원치 않는 학교에 입학하더라도 속상할 것 없습니다. 원치 않게 징병이 되더라도 속상할 것 없습니다. 원치 않는 회사에 입사하더라도 속상할 것 없습니다. 원치 않는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속상할 것 없습니다. 그것들은 그저 상징일 뿐이니까요. 우리는 그저 생존에 대한 의지와 목표를 가진 놀이 중입니다. 이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놀이가 끝나고 연극의 막이 내리면, 우리는 다시 빈 손으로 어둠 속으로 편히 흩어질 배우들에 불과합니다.
너무 진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 가벼울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주어진 삶을 자신답게 살아내면 그만입니다. 그것이 이 놀이의, 연극의 비법입니다. 최후의 자유는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이 놀이의 규칙이고 연극의 각본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자주 두렵습니다. 저도 자주 지나치게 진지해지곤 합니다. 그럴 때면 마음이 들들 볶이고 심장에 통증이 일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되뇝니다. 이것은 놀이일 뿐이야. 이것은 연극일 뿐이야. 지나치게 몰입할 것 없어. 짧은 한 때를 살아내고 돌아가는 놀이의 장일뿐이야.
그렇게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 더 크게 한숨을 내쉬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집니다. 그럴 수밖에요. 방금 전까지 저를 괴롭히던 수많은 과거와 미래들이 그저 하나의 가능성으로 흩어지며 연극의 장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수많은 가능성들은 인연에 따라 저에게 주어지거나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 연극은 끊임없이 굴러가겠지만, 저의 배역은 찰나의 생애에 불과합니다. 이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질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