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위에 쌓은 높은 성, 시지프스의 형벌
여러분들은 살아오면서 어떤 것들을 이루셨나요. 원하던 대학, 원하던 직장, 원하던 배우자, 원하던 자녀... 그런 것들을 돌아보며 보람을 느끼신다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더니 수많은 과제들과 시험들이 난관입니다. 원하던 직장에 입사했으나 과중한 업무와 직장상사의 꾸지람이 일상입니다. 원하던 배우자와 결혼했으나 행복도 잠시 갈등 투성이입니다. 원하던 자녀를 얻었으나 나의 철없던 어린 시절과 판박이입니다.
그런 것이 바로 삶입니다. 삶에는 이루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루었다고 말하는 모든 것들은 갯벌 위에 쌓은 모래성에 불과합니다. 밀물이 오고 파도가 몇 번 오고 가면 무너질 것들입니다. 대학은 의미가 바래고 직장에서는 언젠가 은퇴해야 하며 배우자는 마음처럼 행동하지 않고 자녀들도 떠나갑니다. 그렇게 시간이 되면 모든 모래성은 무너집니다.
갯벌에 쌓은 모래성은 아무리 높고 견고해도 무너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루었다 생각하는 것들에 집착한다면, 우리는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나'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나는 대학생이 아닙니다. 나는 직장인이 아닙니다. 나는 배우자가 아닙니다. 나는 부모가 아닙니다. 나는 '나'로서 존재합니다. 그 모든 것들은 '나'가 입은 옷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나'에 대한 고민에 저 또한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단지 소거법으로, 이것은 '나'가 아니야, 이것은 '나'가 아니야... 이렇게 반복해 되뇔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짜 나를 지워가다 보면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합니다.
삶은 참 부조리합니다.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끊임없이 악에 받쳐 무언가를 이루어내라고 합니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간의 모든 노력이 무의미하다 느껴질 정도의 허탈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삶을 반복합니다. 우리가 형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생각합니다. 악에 받쳐 무언가를 이루어내려 노력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남은 삶을 허송세월 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이 부여한 오늘의 몫의 바위를 굴리고, 남는 시간에는 진짜 나를 찾아 내면의 바위를 굴리겠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나를 찾으면 행복해진다고, 평온해진다고 합니다. 저는 행복보다는 평온함을 더 추구합니다. 행복은 찰나에 흩어지지만 평온함은 시간을 품고 있으니까요. 아쉽게도 저는 아직 진짜 나를 찾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시지프스의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삶의 부조리 앞에서 너무도 무력하게 소비되고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사회를 위해 소비되고 있습니다.
진짜 나는 소비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빼앗기더라도 마지막 자유는 빼앗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마지막 자유는 '태도'라고 합니다. 태도. 그것은 진짜 나의 세상에 대한 반격일 것입니다. 바위를 꼭대기에 올려도 이내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이 세상에 대한 반격입니다. 배고픔 끝에 아사하더라도, 굶주림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담담하다면, 그의 죽음은 평온할 것입니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가짜 나를 모두 지워내고 남는 것이 진짜 나일 것인데, 지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워도 지워도 가짜 나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여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을 인정하려 합니다. 어쩌면 진짜 나는 어릴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진짜 나는 아플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진짜 나는 나약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진짜 나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인정할 준비를 하는 과정이, 가짜 나를 지워가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