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희망회로를 가지고 계신가요?
저처럼 호기심이 많던 여성 '판도라'는 신들이 절대 열지 말라는 상자를 열었습니다. 열지 말라고 하면 꼭 열고 싶긴 하지만 장르에 따라 공포가 되기도 합니다. 온갖 불행이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근데 바닥에 무언가 남아있던 것이 우리가 말하는 '희망'입니다
요즘 들어서는 '희망'이야말로 불행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헛된 희망이야 말로 더 큰 절망감을 가져오게 한 이유가 될 때도 있기도 합니다. 혹은 남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말로 더 큰 불행을 견디도록 가스라이팅하기도 합니다.
과연 희망이 불행의 원인인가 싶습니다
저는 참을성이 정말 많고 인내심도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가역적인 손상을 입지 않는 이상 몸은 회복되고, 고통을 이겨내면 더 강한 몸으로 재생되고, 치료과정 또한 지나가면 낫는 것입니다. 이성과의 헤어짐으로 받은 슬픔은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자 나를 더 많은 이해심을 갖게 하는 성장의 기회입니다. 지금 하는 업무가 괴롭고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승진의 기회, 야근수당, 더 나은 곳으로의 이직을 위한 스펙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돈을 때려 부어 학위를 하고 자격증공부를 하고 잠도 밥도 씀씀이도 줄여가며 살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삶의 굴레는 딱히 방법이 없다가,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와이프로부터의 '지금의 행복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하고 생각을 바꾸고 쉬어가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저런 막연한 희망이 당시의 불행을 초래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희망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 다양합니다. 저는 두 상황에 대해서 별도의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 즉 사람이 처한 상황마다 희망을 갖는 것이 나은지, 희망이 없는 것이 나은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긴 합니다. 그렇다면 희망을 전제한 삶, 더 나은 미래가 있고 그러한 미래를 그리면서 지금의 상황을 이겨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들, 희망을 가지게 된 전제가 옳은지 고민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미래에 나아진다는 희망이 헛된 희망인지, 그나마 실현 가능한 미래인지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실현 가능한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실현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희망 어떠한 것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지도 자유입니다. 우리가 매주 로또를 사고 당첨일까지는 내 상사에게 사표를 던지고 좋은 스포츠카를 사고 좋은 집을 사고 대출을 갚는 꿈을 꿉니다만 누구도 그것을 죄악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로또를 사는 것을 격렬하게 말려서 로또를 못 사게 되거나, 실수로 남의 로또를 잃어버리거나 훼손했다고 하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로또는 당첨된 것인지 아닌 것인지 알 수는 없으므로, 우리는 확률로서 그저 당첨일에 버릴 종이를 지금 버린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반대로 15~20억 가량의 현금을 눈앞에서 불태워버린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로또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로또 주인이 법적으로 당첨금을 청구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생각하기에 저런 '헛된 희망'같은 것을 법이 보호해 줄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법이 '희망'을 보호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첨금을 받을 수 있다는 입증(=증거)이 부족해서 청구를 받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보다, 법률은 우리 국민의 희망을 다양한 방법에서 지켜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원 등 입법자들은 부끄러웠는지 '희망'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좀 자제했던 것 같습니다.
쉬운(?) 접근은 신뢰보호의 원칙에 있습니다.
떡볶이를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떡볶이를 파는 것이 일단 마약이나 총을 파는 것이 아니니까 불법이 아니라는 생각은 합니다. 같은 장소에서 2년 정도 노점상을 통해서 떡볶이를 팔고 있던 여러분은 쉬면서 핸드폰을 보다가 갑자기 '떡볶이 제조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라는 기사를 보게 됩니다. 놀란 여러분은 여태 팔던 떡볶이를 더 이상 팔아도 될지 안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사를 자세히 보니, 떡볶이를 판매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부랴부랴 노점상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오늘부터 금지한다고 하였지, 오늘부터 판 사람만 처벌한다는 것이라는 말을 듣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떡볶이를 2년 정도 판매한 여러분은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현듯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떡볶이 레시피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이러한 레시피를 10년 전에 알려주셨습니다. 얼른 어머니를 만나러 가보니 어머니는 오랜만에 아들이 왔다며 맛있는 떡볶이를 해주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멘붕이 왔습니다. 노점상에서 판매하는 것은 처벌한다고 했으나, 제조하는 것도 금지하는 것은 동일하므로, 집에서 제조한 떡볶이도 불법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떡볶이를 후다닥 싱크대에 버리고 어머니에게 '뉴스도 안보냐'며 화를 냈습니다.
이러한 상황, 즉 여러분의 삶은 어느 날 갑자기 법률이 다가와 흔들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떡볶이를 만들거나, 팔거나, 먹거나 하는 그 자체를 처벌할 가능성은 사실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법률이 입법되었고, 그러한 법률의 페널티가 심각할 경우, 보통은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하게 됩니다.
국가는 최소한의 국민의 신뢰는 보호해 준다. 즉 갑자기 입법을 하고 날벼락을 치게 하지는 않는다.
또 하나는 갑자기 처벌 같은 커다란 제재를 하여야 하는 경우, 과거의 행동은 보통은 문제 삼지 않는다.
여러분은 어머니의 기가 막힌 레시피로 노점상에서 굶주린 학생들, 직장인들의 배를 채우며 부자가 될 것을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노점상이니 세금은 냈는지 사업자등록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용달이건 수레건 샀을 것이고 어쩌면 자릿세도 냈을 수도 있고, 떡과 고춧가루나 고추장, 설탕 들을 사고 어머니의 비밀재료도 샀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여러분이 떡볶이를 팔 수 없게 되는 경우,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괴로움을 주지는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부자가 되고자 하는 희망을 국가가 책임지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꿈을 꾸고 그러한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신뢰하는 것은 보호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쉬운(??) 접근은 무죄추정의 원칙입니다
우리는 편견이 많은 존재입니다. 범인인지 몰라도 수갑을 채워 경찰서에 들어가면 범죄자로 보이고, 정장을 입고 당당하게 경찰서에 들어가면 고소장을 접수하러 가는 변호사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언론에서나 방송에서 한번 체포되었다는 말만 들어도, 탈세혐의로 세무조사를 받는 중이라고 하면 바로 천하의 나쁜 놈이라는 낙인이 생겨버립니다.
일반 국민들이 편견을 가지더라도, 보통은 그러한 편견만으로 처벌되지는 않아야 합니다. 사법기관이 있는 이유는 어떠한 사람이건, 즉 증거가 명백한 범죄자더라도 경찰한테 폭행을 당해서는 안되고, 고문을 당해서도 안되고, 자백하는 진술서를 5일간 잠도 안 재우고 밥도 안 먹인 상태에서 쓰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누구나 수사와 형사재판을 통해서 그 사람에게 죄가 있다는 점을 확정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죄인낙인을 찍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사람에 대한 수사나 형사재판을 하는 사람이 가장 편견 없이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죄인으로 보는 순간 모든 행동은 의심스럽게 보이고, 모든 말은 거짓말로 보이고, 모든 증거는 그 사람이 범죄자라고 말하는 것으로만 보입니다.
수사관도 판사도 검사도 모두 사람이기에 그러한 편견을 0으로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듣기 좋은 말로 '사람을 의심하여서는 안된다'라고 규정하지 않고, 확정이 되기 전까지는 '죄인'과 동일한 법적효과를 부여할 수 없다는 다고 강력한 규정을 넣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형사소송법은 다양한 과오를 통해서 보완되었습니다. 죄인이라고 생각한 편견과 더불어 실적과 빠른 사건의 마무리 등 다양한 이유로 생각보다는 많은 죄인이 아닌 사람들이 죄인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렇게 죄 없이 고문을 통해서 자백하고, 오랜 수사와 재판, 수감기간을 통해서 희망을 점점 잃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희망의 불씨가 꺼져가기 전에도 우리는 재심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억울한 사람들이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을 두었습니다. 청춘이 다 사그라져 오랜 시간 동안 버텨오다 사라진 희망도 다시 살려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헌법이나 형사법, 행정법은 사실 '국가'가 국민의 희망을 어떻게 보호하는지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면 로또 용지를 훼손한 것처럼, 개인이 개인의 희망을 어디까지 보호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희망이 훼손되는 경우 어디까지 배상을 해줘야 하는지의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만약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가정해 봅니다. 교통사고로 장해를 입으면 여러 삶의 지장이 생기고, 하던 일을 못하게 되거나, 하던 일을 잘 못하게 되거나 하는 등 손해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장래에 내가 받았어야 할 이득, 정확히는 장래에 내가 받았어야 할 이득이지만 이제는 받지 못하게 된 것을 일실이익이라고 합니다.
https://korea-lawyer.com/new_bbs_detail.php?bbs_num=29&tb=board_law05_kin
일실이익은 나에게 사고가 나서 발생한 손해이고 정확히는 내가 생각해 온 미래가 달라지게 되는 일이 발생했을 경우 발생하여 '받지 못한' 이익을 말합니다. 법률에서 말하는 이익은 곧 배상해야 하는 금액을 말하며, 보통 배상은 손해배상을 발하므로 '이익=손해'라는 재미난 결론이 도출됩니다.
조금 더 쉬운 것으로는, 내가 시가 1억 원짜리 집을 사기로 하였습니다. 계약금 1천만 원도 흔쾌히 지급하고 중도금 3천만 원도 지급하였습니다. 계약서 도장의 인주가 다 말라갈 무렵 갑자기 집주인이 집을 팔지 않겠다고 합니다. 갑자기 인근 지역에 재개발 뉴스가 나면서 1억 원 하던 집이 갑자기 5억 원이 되었습니다. 집주인은 계약금을 더블로 돌려줄 테니 계약을 없던 것으로 하자고 합니다.
여기서 아쉬운 대로 계약금의 더블인 2천만 원을 받고 계약을 포기하는 선택지도 있을 수는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계약금의 배액상환이라고 해서 계약금을 포기하거나(1천만 원 손해), 계약금의 배액 상환(1천만 원을 주고 2천만 원을 돌려받으니 1천만 원 이득)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판례에 따르면 중도금을 지급한 다음에는 계약금만 포기하고 계약을 무를 수가 없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1억을 내면 5억짜리 집을 사면 4억 원을 벌 수 있는데, 천만 원만 벌고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 아깝습니다.
이 경우, 집주인은 4억 원을 물어주어야 합니다. 이를 '계약이 이행되었다면 얻었을 이익'이라고 하여 '이행이익'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비록 그 집에서 실제로 거주하려고 사는 것이었을지라도, 여러분의 눈과 뇌는 그 집이 5억으로 껑충 뛰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천만 원만 벌고 나가는 선택지는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4억을 벌 수 있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러한 것을 민법은 '이행이익의 배상'이라는 것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뢰이익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민법에서 말하는 이익은 곧 손해배상이라고 들었으니, 이제 마치 들어보면 믿었던 것에 대한 손해배상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체 무엇을 믿으면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1억 원의 집의 시가가 5억 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욕심이 더 나기 시작합니다. 재개발이 끝나면 그 집은 10억 원이 될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 집주인에게 차액인 4억 원이 아니라 9억 원을 줘야지만 계약을 물러주겠다고 합니다. 그러한 신뢰는 여러분이 오랫동안 공부해 온 부동산 시장과 가치상승을 고려한 것이라고 근거를 말해줍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 민법은 그러한 희망까지는 보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뢰는 '계약이 유효'할 것을 신뢰한 것을 보호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여러분이 신혼집으로 그 집에서 살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집을 배송지로 하고 여러 가전과 인터넷, 인테리어 업자들 등등 여러 작업을 하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집주인도 대금을 전부 지급받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만난 집주인은 그 집에 대한 권리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계약이 법적으로 무효였습니다. 여러분은 그 집주인을 얼마큼 믿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권리 없는 사람의 말을 믿고 행복한 신혼을 그렸으나 다 망해버렸습니다.
이러한 경우 발생한 비용은 계약이 유효할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무효였던 경우 신뢰하여 발생한 손해를 말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그려온 미래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잊기 전에 말하자면, 그러면 이제 로또종이를 훼손한 사람은 로또주인에게 당첨 전에 5천 원을 배상해 줄지, 당첨 결과를 기다렸다가 당첨금을 주거나 아무 돈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복권은 수학을 못하는 사람이 내는 세금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잘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희망을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검색하면, 법률에는 전혀 검색되지가 않습니다. 지자체에서 만든 조례에는 희망카드, 희망택시 등등의 제도가 나옵니다. 서두에서 말한 대로 희망을 법에서 정하는 경우는 흔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국민들 대다수는 은연중에 국가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있거나,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국가의 역할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보면 어렵지만, 우리 주변에 희망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은 쉽게 동의합니다.
전세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 서민들의 주거를 책임졌으며, 목돈을 제공하고 현금흐름을 만드는 특이한 주거제도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는 과정의 시작으로 전세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전세사기 피해로 삶의 터전을 잃고, 희망마저 꺾이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이 한순간에 절망으로 바뀐 현실 앞에서, 법의 태도는 처음에는 다소 차가웠습니다. 전세제도를 모르는 청년이나 취약계층에게 '그러게 등기부를 잘 봐야지'와 같은 비현실적인 태도를 취하기 일쑤였습니다. 등기를 본다 한들 집주인이 파산할지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결국 강제집행을 하거나 전세대출 연장이 안 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피눈물 흘리는 국민이 늘어나고, 내 집마련이라는 꿈과 희망은 사라져 가고 절망하는 사람이 늘어나서야 비로소 대책마련을 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국가는 그러한 힘도 있고, 더 나아가 그러한 제도의 취약점도 알고 있었으며, 그러한 사태가 날 것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단순히 '부동산 권리분석을 못한 세입자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한 식품을 먹게 하는 것부터 사람답게 사는 것, 최소한의 인간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것을 보장하지 못하고, 단순히 '전세제도는 부동산 가격을 왜곡시키므로 점진적 폐지시키고 관련 혜택제도를 축소하자'는 접근은 그러한 보호를 지연시킨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교통사고로 터진 제 디스크가 언제 낫는 것인지, 사고 2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고 걱정합니다. 디스크가 파열되어도 파열되어 흘러나온 디스크액은 디스크막이 재생되면서 다시 온전한 디스크를 형성하고, 비록 다시 터지게 될 확률이 높아지긴 하나 일상생활로 복귀가 가능할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디스크 환자분들이 10년, 20년 동안 아프다는 말을 했을 때는 정말 아픈 삶을 유지하며 살아야 하나 절망했다가, 지금 한 발자국씩 나아가며 나아지는 제 모습을 보면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정말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모든 세상의 악한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도 희망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헛된 희망이 불행의 근본이라는 관점도 저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저는 희망 자체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갖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절망과 어둠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픔을 이겨내고 걷고, 이제는 뛰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