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란 무엇인가?

여러분을 이불킥을 하게 하는 기억은 무엇인가요?

by ANDTAX

인간은 종종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너무나 완벽하고 잊히지 않는 기억은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 작용하고, 결국 과거만 찾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오래되고 사소한 기억은 쉽게 잊고, 중요하고 강렬한 기억은 오랫동안 머리와 몸에 기억으로 남고 경험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을 기반으로 학습하고, 추억하며, 경험화하고, 성장하기도 합니다.



기억은 비단 좋고 싫음을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복했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감정도 흐려지고, 오히려 괴롭거나 슬프거나, 창피했던 기억은 꼭 잠들기 전에 다시금 살아나서 베갯잇을 적시거나 이불킥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기억을 그 자체로 보존하고는 있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내가 가진 나의 기억입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남에게 전달하려면 그 기억을 입으로 꺼내야 하는데, 문제는 기억은 우리가 기록해 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흐릿해진다는 것입니다. 어제의 기억은 10년 전의 기억보다 보통은 뚜렷합니다.


_OU3-r6j6REhKm097nlDUkHbZIw.png 기억과 진술하면 유명한 영화 '라쇼몽'

더 놀라운 것은, 흐릿해지긴 했지만 현존하는 기억 그 자체를 그대로 진술하는 것도 상당히 쉽지 않다는 것인데, 왜냐면 기억을 진술하는 경우는 보통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어떠한 상황에서, 그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 외에 사람이 거의 없는 경우, 그 상황의 재구성은 목격해서 기억하는 사람의 진술에만 의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하라고 하면 자신에게 유리한 '필터'를 거쳐 기억을 직접 왜곡하게 됩니다. 목격자가 많으면 진실을 찾기에는 쉽겠지만, 그만큼 거짓을 가려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종종, 여기에 더해서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는 사실을 스스로 속이기도 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사실이 진실과 다르더라도, 내가 믿는 그 상황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기억하는 상황이 현실이고 진실입니다.



위증이라는 죄를 고려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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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드라마나 범죄드라마를 보면 종종 선서를 하는 증인들을 봅니다. 실제로 법정에 가면 코팅된 선서문을 주면서 (대충) 선서를 시키기는 하지만, 선서를 했는지가 위증으로 처벌받는 조건이기에 형식상으로라도 선서는 꼭 합니다. 선서문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기억이 왜곡되어 사실인 줄 알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라면 처벌을 받는 것이 되는지 궁금해집니다.


예컨대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목격한 증인이 있습니다. 내가 보기엔 빨간색 옷이었는데, 피가 튀었건, 빨간 조명이 있었건 하여 다른 옷이었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그럼 빨간색 옷이 아니었으니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판례는 "증언이 증인의 기억에 반하는 것인지의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에 증언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되면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고, 또한 증언의 전체적 취지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고 그것이 기억에 반하는 공술이 아니라면 극히 사소한 부분에 관하여 기억과 불일치하는 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신문취지의 몰이해 또는 착오로 인한 진술이라고 인정된다면 위증죄는 성립될 수 없다."라고 해서, 일단 전반적으로 비슷하고 사소한 부분이 불일치하면 처벌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의 기억력의 한계를 고려한 판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재미난점은, 사실인데 거짓말인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판례에서는 "위증죄에 있어서의 위증은 선서한 증인이 자기의 기억에 반하는 사실을 진술함으로써 성립되고 설사 그 증언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된다고 하더라도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한 때에는 위증죄의 성립에 영향이 없다."라고 하여, 내가 말한 게 사실인 것과 무관하게 거짓말을 한 그 자체를 처벌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증인 또한 사람이고,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말하는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양심'도 있고,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위증죄와 증인제도는 증인이 자신의 기억을 그대로 최대한 왜곡하지 않고 말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20240207184130199duss.jpg 여기서 '네'라고만 대답하면 안 될 것이다.



기억은 사실 다양한 생리학적 기작을 통해서 작동하는 듯합니다.


재구성 기억(Reconstructive memory) 이론에 따르면, 기억은 단순히 저장된 정보를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적 조각(fragment)과 기존의 지식 구조(schemas)를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재편집된다고 합니다. 즉 지식과 인지의 결합을 통해서 만들어져 해석된 것을 기억으로 보고 있습니다.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기억 회상 시 해마(hippocampus)와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활발하게 작용하며, 이는 저장된 정보와 정서, 사회적 맥락 등의 요소를 연결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구조로 추측해 보면 인간의 기억은 사진이나 동영상처럼 상황을 보이는 대로만 기억하지도 않고, 글처럼 그 상황을 서술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고, 듣고, 생각한 모든 조각조각들을 재구성해서 하나의 덩어리처럼 합쳐둡니다. 이러한 덩어리는 다른 조각의 침입에도 딱히 배타적이지 않아서, 기억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잘못된 세부사항이나 거짓 내용을 채우거나(정보 왜곡, confabulation). 긍정적 내용은 강화되고, 부정적 내용은 축소되는 경향(선별적 기억, selective memory)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외부 자극이나 질문 방식에 의해 초기 기억이 재인코딩되어 왜곡될 수 있는 것(선행 정보 효과, misinformation effect)입니다.



어떤 범죄가 벌어졌는데, 아무런 증거가 없거나, 반대로 아무런 목격자가 없다고 전제해 봅니다. 이러한 범죄는 종종 '암수살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일단 목격자건 자백이건 증거건 뭔가 나와야 하는데, 이를 말해줄 사람도, 증거도,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VNV5AqQ25pugnj_xddMyejQ43acemrsO7ke43vjt589YeQ0THHAG-Oxk8ZtdP_c4pdMXoQ3FJkd343I_UlunUw.webp 사실 경찰이 풀어야 하는 건 맞다

수사기관은 이미 비협조적인 범인의 진술이 사실인지도 모르겠고, 목격자나 증거도 희박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난 범죄 하나도 처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피해자의 영혼을 구제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수사관은 십수 년간의 미제사건을 해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러한 범죄가 수십수백 명을 죽이고 다치게 했는데, 시간마저 너무나 지나서 목격자도 찾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법무관으로 군복무를 할 당시, 몇 개의 과거사 소송을 수행하였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한국 현대사의 국가폭력, 인권침해, 강제수용, 해외입양 등 다양한 과거사 사건을 조사하며, 집단적 기억의 복원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핵심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과거사 사건은 국가가 일으킨 과거의 범죄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진실규명이 필요한 사건 자체를 조사하기도 하는데, 단순히 '나라가 그런 거 하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접근도 가능합니다. 다만 한국의 민사소송은 개인이 스스로를 구제하도록 설정되어 있고, 그마저도 10년이 지나면 권리에 잠자고 있었다면서 청구도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과거의 국가적 차원에서 발생한 재앙은 개인이 직접 스스로를 구제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나라가 이러한 점을 보완해서 아래 두 가지 법리를 만들었는데, 하나는 1) 위원회가 채택한 증거는 유력한 증거로 인정해 주는 것, 2) 소멸시효가 지난 사건도 청구를 인용해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복지원부터 보도연맹사건까지 다양한 사건을 처리하기도 하였으나, 지나간 사건들 대다수가 흐릿하고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미약한 증거와 사진, 글귀와 진술로 그 문턱의 경계에 있다고 합니다.


제가 기억하고 수행한 사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3년 차 제대를 앞둔 선임이, 저보고 과거사사건도 해보면 좋다고 하며 사건을 인계해 주었습니다. 저는 사실 별생각 없이 다양한 경험이 좋다는 주의로 받았으나, 제가 첫 발령하고 1년이 거의 다 되어가도록 사건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선임이 사건을 이제 봐야 한다고 해서, 사건 기록을 보게 된 것입니다.


사건의 원고는 노인이고, 피고는 대한민국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국가배상사건이자 과거사 사건이었습니다. 노인은 무엇을 원하는지 기록을 넘겨봅니다. 일단 손으로 쓰여있습니다.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해서 글을 쓰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을 것 같습니다. 결국 소송구조 제도를 통해서 국선대리인이 선임됩니다.


국선대리인 또한 노인을 직접 자주 뵙지는 못한 듯합니다. 친딸로 추측되는 분의 진술을 대부분 담아서 서면을 작성한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억울함이 있고 진실규명을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계속해서 읽어봅니다. 청구취지에 피고는 원고에게 금 몇십억 원을 지급하라고 되어있으니,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넘겨봅니다.


노인분은 소년시절 경복궁 근처에 초가집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주변에 인망이 좋던 노인은 주변 사람들과도 사이가 좋았습니다. 탁월한 성격과 더불어 투철한 애국심으로 전쟁에 참전합니다. 그러나 결국 북한의 포로가 되었는데, 수감생활을 하다가 몇 번의 회유를 받았다고 합니다. 회유를 거절하고 수감생활을 계속하다 탈출했고, 피난길에 합류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UN군에 잡혔는데, 북한군의 포로생활을 보고 간첩으로 오인해서 UN군 또한 노인분을 다시 수감했다고 합니다. 열심히 남한 군인들에게도 호소했으나 믿어주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나고 그제야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생각에도 정말로 괴로운 기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해당 내용이 사실인지는 정말 어떠한 증거로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과거사위원회에서 어떠한 결정을 해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저 또한 혹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놀라운 것은, 저 노인분이 피난길에 합류하고 나서 만난 다른 사람이, 나중에 신문에 간단히 연재소설을 썼는데, 거기서 나온 탈영병사가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소설가가 쓴 모든 소설을 사건기록에 제출하였습니다. 사건기록은 만장이 넘어갔고, 저는 소설을 다 읽지 못하였습니다.


저 또한 정의감으로 UN군에게도 사실조회를 보내고, 경복궁 옆에 초가집에서 살았던 노인 ***을 아는지 사실조회를 보내고, 국방부에도 보냈으나(차마 북한에는 못 보냈습니다) 그 어디도 노인분의 기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법무관 당시에도 다양한 사건을 했으나, 지금도 아리송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똑똑한 건 아니지만 기억력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합니다. 사실 기억을 잘하는 방법은 여러 감각을 연상하여 기억하는 것이 좋다고들 하지만, 저의 요령은 조금 더 넓게는 잊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을 찾았는데, 감정적 요소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억은 유사한 감정이 떠올라도 떠오르므로, 단순 연상보다도 더 기억을 오래, 정확하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역사적 실패는 참담함을, 과학적 성취는 성취의 기쁨을, 사건기록을 통째로 기억하기 위해서는 피해자, 가해자의 감정을 함께 기억했습니다. 이러한 기억은 제가 왜곡 없이 사건을 그대로 기억하게 하되, 감정적인 부분을 배제하면 진실만 남도록 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우리는 쉽게 잊지 않기 위해 기념일을 정하고, 기념탑을 세우기도 합니다. 기념품도 만들고, 그러한 인식을 통해서 우리의 기억을 강화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념일이 언제고, 기념탑이 어디 있고, 기념품을 어디다 두었는지는 기억해도 어떤 것을 기억하기로 했는지는 잊을 때가 많습니다. 연인이 100일, 200일을 기념하고 결혼기념일을 기념하지만, 처음 사랑하기로 했던 맹세는 잊기도 하고, 반려동물이나 연인, 가족과의 이별의 슬픔이 잊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도 합니다.


역사를 배우고 공부하며 과거를 돌이키지 않기로 해도, 역사는 반복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혹시나, 우리의 기억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왜곡되어 반복해도 되는 실수를 합리화하고 있는 건 아닐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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