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란 무엇인가?

용서는 꼭 해야 할까?

by ANDTAX

제가 좋아하는 '원수(enemy)'에 관한 속담은 다음과 같습니다


누군가 너에게 해악을 끼치거든 앙갚음하려 들지 말고 강가에 고요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아라. 그럼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 올 것이다.

지금 글을 쓰려고 정확한 레퍼런스를 찾아보려고 했으나, 누구는 노자라고 하고, 누구는 공자라고 하고, 누구는 소설 타나토스라고 하고, 누구는 소설 쇼군이라고 합니다.



살다 보면 크고 작게든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받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똑같은 일도 그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너무나 크기도 하고, 너무나 하찮기도 합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작은 상처는 큰 칼이 되어 날아오고, 먼 사람이 나에게 갖는 원한은 나에게 생채기만 남기고 끝나기도 합니다.

멀리서 효과적인 원망을 하는 중. 예외는 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전제하면,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겠다만 상당한 시간 동안 피해를 준 가해자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갖게 됩니다. 길 가다 어깨만 부딪혀도 몇 분 간 생각이 납니다. 속을 끓이고 답답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나의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남을 미워하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 자체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마지막 힘이 ‘용서’라고 말하나 봅니다


법률에도 다양한 용서가 있습니다. 용서는 반성과 다르게, 피해자가 해주는 것입니다. 즉 가해자가 잘못을 시인하고, 피해자가 그러한 피해를 입고도 봐주는 것입니다. 용서는 예전 법률용어로는 '유서(宥恕)’라고 했는데, 우리가 아는 유서는 사망 후의 법률효과를 사전에 미리 적는 법률문서로, 이는 실제로는 유언 또는 유언장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단어는 폐지된 간통죄 조항에도 있었던 내용인데, 신기하게


"배우자가 간통죄를 종용 또는 유서 한 경우에는 간통죄로 고소할 수 없다"

라고 되어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종용은 무언가를 하라고 부추기는 것인데, 사실 법률용어상 종용은 '사전에 허락을 받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간통은 사전에 동의를 해주거나, 반대로 사후에 용서를 받으면 간통죄로 처벌을 받지 못하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용서나 사전동의를 어떻게든 받아냈다고 하고 갑자기 용서를 해준 배우자가 그때 해준 용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다시 간통으로 고소를 하게 되는 그런 구조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어떤 게 사전 동의인지, 사후 용서인지도 입증하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각서를 써서 '내가 XXXX. X. X. 한 간통행위에 대해서 용서한다'는 내용으로 합의서를 받아두어야 하는 걸까요?



또한 형법과 달리 민법도 이러한 조항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용서를 함부로 하면 평생 속을 끓으며 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좀 위보다는 더 자주 발생하는 것은 형사합의입니다. 피해자의 용서로써의 형사합의는 고소 취하나 처벌불벌 등으로 나타납니다.


형사사건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고 고소를 취하하거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이를 ‘합의’ 혹은 ‘처벌불원’으로 법원이 인정합니다. 고소를 취하하면 고소의 효력이 소급하여 사라지므로 고소가 반드시 필요한 죄인 '친고죄(=고소랑 친한 죄)'나 반의사불벌죄(=피해자 의사에 반해서 처벌할 수 없는 죄)에는 강력한 효력이 미칩니다. 그리고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죄에도 형사합의는 강력한 반성의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발생하는 이슈가 있습니다.


만약 어마어마한 합의력을 가진 사람. 즉 단순히 용서를 잘 받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보통 영화에서도 부정적으로 표현됩니다.

맞고 돈도 주는데 신고하다니 어이가 없다


그렇기에 실제로 용서를 한 피해자의 의사가 진정성이 있는지 확인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진정성도 굉장히 주관적인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합의서를 비싼 돈 주고 사 온다고 하면 진정해지고, 돈 안 받고 용서를 해주면 진정성이 떨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변호사들은 일단 가해자에게는 많은 돈을 합의금으로 지급하도록 권유하고, 피해자들도 일단 합의금을 많이 받는 식으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돈의 액수 그 자체보다, 합의하려고 노력한 내역들도 약하긴 하지만 전부 양형자료가 되기 때문에 합의 진행에 상당한 노력을 가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가해자가 피해자 동의 없이 법원에 합의금을 공탁하는 ‘기습 공탁’ 사례도 있습니다. 공탁은 공공기관에 맞긴다는 뜻으로 법원이 운영하는 공탁소에 돈을 기탁하는 형식이며, 여러 가지 공탁이 있으나 하나는 누구에게 돈을 지급하여야 할지 모르는 경우 또는 누구에게 돈을 지급할지 정해져 있으나 상대방이 수령을 거부하는 경우로 나뉩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합의하겠다고 몇 번 시도는 했겠으나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은 피해자는 당연히 수령을 거부합니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이 수령을 거절했다고 하며 공탁을 합니다. 악질은 그러한 공탁을 선고 며칠 남겨두지 않고 공탁한 다음 법원에 공탁증을 제출합니다. 적정한 형량이 선고된 다음 공탁금을 수령해 갑니다. 심지어 피해자는 공탁금을 받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그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개정된 형사공탁제도는 법으로 완벽하게 완비되지는 않았으나 일단 가해자가 공탁을 하면 다시 돌려받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고지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방법이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것입니다.


조금 다른 차원에서, 법을 잘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도 용서가 될지 의문입니다. 고대 로마 법격언에는 “법률의 부지는 용서받지 못한다”(Ignorantia juris non excusat)는 원칙이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불법인지를 몰랐다고 해서 처벌받지 않으면 당연히 이상한 결과가 초래되겠지만, 모두 다 '나는 바보예요'를 외치며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발생할 것입니다.


형법 제16조는 단 한 가지 예외를 둡니다.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처벌을 면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이 경우에도 그 기준은 매우 엄격합니다.


몇 가지 원칙을 말하면, 이미 공표되고 시행 중인 법률을 몰랐다는 사정만으로는 책임이 면제되지 않습니다(너무 당연합니다)


“형법 제16조에서 ‘정당한 이유’란,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가 위법할 가능성에 대해 심사숙고하거나 조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지적 능력을 다하여 이를 회피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다하였더라면 위법성을 인식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의 정도는 구체적인 행위 정황, 행위자의 인식 능력,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달리 평가되어야 한다.” (대법원 2006. 3. 24. 선고 2005도 3717 판결).


고 하여, 단순히 법을 몰랐다는 사정(법률의 부지) 그 자체로는 면책사유가 아니고, 자신의 특수한 상황에서 법령에 따라 허용된 행위로 오인하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판례는 공무원이 잘못된 안내를 했거나, 과거의 무혐의 처분 등을 받아서 법령 위반이 아니라고 믿었고, 그 믿음에 정당한 이유가 인정된 사례에서는 처벌이 면제된 바 있습니다(대법원 1995. 8. 25. 선고 95도 717 판결 등).


근데 단순히 오랜 관행이나 주변의 잘못된 인식 등에 의존한 경우에는 ‘정당한 이유’로 인정되지 않습니다(대법원 2017. 12. 13. 선고 2017도 16067 판결). 남의 말을 믿기만 한 것으로는 용서받기에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용서와 관련되어 아주 유명한 영화. 하정우 주연
"그러면 도와줄 수가 없어"


어느 한편으로는, 피해사실을 잊는 것으로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망각과 혼동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피해자나 대다수의 범죄사실을 기억했던 사람들이 기억을 잊으면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은 약해지고 자신에 대한 비난만 기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흐려지더라도 변하지 않는 피해, 그리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피해는 그러한 상처를 갉아먹기도 합니다 고통을 잊고, 분노를 삭이고 살아간다 한들 용서하지 못하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망각은 단순히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라면, 용서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그 잘못을 ‘덮어두기로’ 결정하는 의식적 선택입니다.


법이 용서의 진정성을 따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흐려졌다고 해서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며, 그 잘못을 다시 상기하더라도, 진심으로 덮어둘 수 있을 때 비로소 용서라 부를 수 있습니다. 용서는 인간적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상당히 쉽지 않은 행동입니다. 진심 담긴 용서는 상처 입은 관계를 치유하고, 사회와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그렇기에 법은 용서의 진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제가 첫 번째 속담만큼이나 좋아하는 '용서'와 관련된 격언은 아래와 같습니다.


Forgive your enemies, but never forget their names

이것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존 F케네디가 했다고 합니다. 적은 용서 하되 이름은 기억해 두는 것입니다. 마음이 미움으로 가득 차있는 상태는 유지하지 않지만, 머릿속으로 이름을 기억해 둡니다. 나중에 내가 잘 살다가 그 원수를 다시 갚아줄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멋지게 용서를 해주면서 과거의 나와 적을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이름도 기억하기 귀찮다면, 데스노트 같은 걸 만들어서 적어두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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