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란 무엇인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냐?

by ANDTAX

휴재를 고려할 정도로 지난 글 이후로 허리의 상태는 들쭉날쭉 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글도 책상 앞에서 쪼그려 앉아서 쓰고, 의자에는 앉기가 어렵습니다


한의사는 저에게,


'고통은 줄어든다. 익숙해진다. 괜찮아진다'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 의심이 됩니다.




어렸을 적 싸움을 하게 되면, 가장 무서운 것은 맞은 후가 아니라 맞기 직전 주먹에 눈앞으로 날아오기 직전이었습니다. 맞기도 전에 몸이 위축되고 난 저 주먹으로 얼굴을 맞을 것이고, 고통이 곧 있을 것이라는 감정은 저에게 싸움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기 전까지 많은 시간 동안 트라우마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정작 맞고 나서는 아픈 느낌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맞는다는 그 자체가 저를 떨게 만든 것입니다.


사실, 지나고 보면 오히려 주먹에 맞는 고통, 어딘가 높은 곳에서 까불다가 떨어져서 다친 고통은 사실 그 자체는 많이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다쳤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저를 무언가 고통스럽게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에서야 보면 저는 종이에 베이는 것이 더 아픕니다.


우리도 종종 경험하는 대로, 어딘가 쓰라리거나 불편할 때는 몰라도, 그것이 어딘가에 긁혀 다쳐서 피가 나고 있다거나 하는 경우였고 그걸 눈으로 보고 나서야 아프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저 또한 학교에서 요리를 하는 수업에 과도를 챙겼으나, 그 과도는 제 손가방을 뚫고 나와서 제 다리를 두어 번 칼질을 했지만 저는 그것이 칼에 베인 상처임을 집에 가는 중간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살벌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통증의학과에서 근육주사를 맞거나, 한의원에서 초음파약침을 맞기 위해서 근육에 주사를 찌를 때, 보통 주사를 맞는 순간보다 그 직전이 더 두렵고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고통을 곧 접한다는 인식이 만든 두려움, 이러한 경험들은 제가 '고통은 그 자체보다 고통임을 인식하는 것이 나를 더 아프게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고통의 원인과 고통이라는 느낌 자체는 인과관계가 있으나 그 정도는 객관적으로 수치화되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아무튼 고환마찰이 생리통보다 더 아프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통에 대한 인식은 자칫 '안 아프다고 생각하면 안 아픈 거 아니야?'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나는 고통에 대해 둔감하고 단단해서 고통을 받더라도 이겨낼 수 있고, 적당한 고통은 삶을 긴장시키는 양념 정도로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몇 사건은 제가 고통, 장애나 장해, 인식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존재 등을 인지하게 된 사건들이 있습니다


위에서 제가 이야기한 바와 달리 고통 그 자체는 신경의 자극이며 신경의 작용으로 인하여 발생하고, 뇌는 그것을 고통으로 인식하는 단계를 거칩니다. 따라서 고통이 존재하나 기껏 제가 생각한 것은 뇌를 속이고 '아~ 안 아프다~'하고 우리 부모님이 우리가 애기 때 다쳤을 때 해주신 이야기를 스스로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고통은 신경의 작용이기에, 결국 그러한 고통을 느끼게 한 원인이 보통은 존재합니다. 주로 여러 가지 외부의 자극이 대부분일 것이고 그러한 자극은 다치는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외관상 고통의 원인이 측정되지 않고 현대의학으로도 뚜렷한 고통의 원인을 찾지 못함에도 고통 그 자체가 존재하는 병이 있으니, 이는 CPRS, 이른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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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법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단 한번 관련 사건을 접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행정기관이 당한 행정소송을 지휘하고 보완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구청 공무원은 '너무나 그 원고(=환자)분에게 장해등급을 지정해주고 싶은데, 관련 규정이 부족해서 어렵다. 소송을 통해서 져도 상관없고 내 실적이 떨어져도 좋으니 제발 소송에서 지더라도 저 환자분에게 장해등급을 받게 해 달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그런 공무원을 처음 만났기 때문에, 실제로 관련 법령도 검색하고 부장검사를 설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결과가 잘 기억은 나지 않으나, 약 8년 정도 전의 사건이니 지금은 관련 규정이 개편되었길 바랄 뿐입니다.



장애는 어떠한 상태가 아니라, 불편하다고 느끼는 그 감정 자체라고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의 허리 통증이 영원이 지속되면 어떡하냐는 질문을 스스로 합니다. 누군가는 저에게 15년 정도, 20년 정도 아팠다고 하며 무얼 하면 좋고, 무얼 하니 괜찮았다는 말을 합니다. 제가 앞으로 20년의 삶은 더 달려야 할 나이인데, 지금 이렇게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 채로 계단을 피해 다니고 의자를 피해 다니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 두렵기도 합니다.


고통은 인식이고 인식의 전환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젊은 날의 저를 반성합니다. 저는 고통과 공포를 직면해서 미래를 나아가자는 모토로 살고 있으나, 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도 장애에도 둔감했던 저의 삶을 돌이켜 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 또한 겨우 이런 고통으로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상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암환자분은 암투병경험이 있는 의사 선생님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암환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의사라면 치료받는 내내 마음도 치료하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젠 저도 불편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실 불편함이라고 부르기엔 힘든 상황이지만, 이러한 고통은 양분이 되어 제가 더 많은 사람의 고통과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믿으려고 합니다. 안 그러면 지금 아프고 앞으로 아플 시간이 너무나 아깝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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