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주제, 얕은 글
변호사가 '권리'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맘먹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권리는 법에서 중요한 것으로 뽑으면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생각하고, 그만큼 어렵고 복잡하고 무겁기 때문입니다.
영화 부당거래의 명대사가 권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재미난 것은 '호의'와 권리의 관계를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법을 배운 사람들은 처음 법대나 로스쿨에 입학하면 한 달 내에 '호의'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호의'는 좋은 뜻이라는 말의 한자어이고 얼핏 듣기에는 법이랑 전혀 상관없어 보입니다.
'호의동승'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법적인 문제로 가져오는 내용인데, 법률을 처음 배우는 법학도에게 권리와 의무를 설명하면서 드는 예시입니다. 좋은 뜻으로 시작했지만 법적인 문제가 생기는 경우, 즉 호의로 남을 차에 태워서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나면, 내가 택시기사나 대리기사가 아니어도 운전자로서 차에 동승한 동승자에게 상해를 입혔으므로 보험처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무엇이든, 그것이 법적인 관계가 될 때까지 번져버리면 '좋은 게 좋은' 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게 됩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의무를 지어주고 누군가에게는 권리를 발생시키게 됩니다.
호의를 계속 제공하면 호의를 제공받는 자는 마치 당연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누군가가 사회적, 경제적, 법적으로 양보를 하고 있고, 그러한 것은 결국 권리나 의무로 돌아오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권리는 어디에서 올까, 사실 법학도에게는 법에서 온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는 권리는 하늘에서 부여받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천부인권이라고 부르는 개념은 사실 종교적이면서도 굉장히 반종교적이기도 한데, 이러한 부분은 법제사나 법철학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들이긴 합니다.
천부인권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전을 생각해 봅니다. 인간은 무리를 지어 사는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중에서 리더를 정했습니다. 리더는 추후 왕이라는 존재가 되었는데, 왕은 사실 조상을 잘 만나서 세속 되는 경우가 더 많아서 종교적인 당위성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사제들은 왕과 함께 공존하거나 경쟁하면서 왕에게 종교적인 당위성을 부여하였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일반 백성들은 왕도 난리치고 사제들도 난리 치는 상황에서 살게 됩니다. 밥은 몇 번 씹어먹고, 옷은 어떤 색을 입어야 하고, 집안에 창문은 몇 개여야 하고, 아이는 몇 명이어야 하고, 성관계는 어느 요일에 해야 하는지 등 별에 별 모든 것을 간섭받게 됩니다. 백성들은 왕이 시키고, 사제들이 시키니 시키는 대로 하고 살게 됩니다. 즉 어떠한 행동이나 사상에 대한 결정, 즉 신을 믿으면 천국을 가고, 죄를 짓지 않으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큰 원칙에서 정해진 대로 살아가고 그에 따른 의무만 발생하게 됩니다. 죄를 짓게 되면 헌금을 더 내건 노역을 더 하건 맞아 죽건 회개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천국을 가기 위해서 더욱더 강한 의무를 부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구조에서 누군가 반기를 들게 됩니다. 이미 천국, 지옥에 갈 사람은 정해졌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능동적으로, 자율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할 수 있는 행동들은 정말 작은 점과 같은 원이었으나, 그러한 계몽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넓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계몽은 결국 백성들에게 자율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고, 수많은 행동의 선택지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를 우리는 '자유'라고 부릅니다.
백성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이 많아지고, 백성들 개개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의 반경이 넓어졌습니다. 왕 또는 사제만이 할 수 있던 모든 행동들은 너무나 큰 원이었고, 그 원 안에 점처럼 박혀있던 백성들의 행동들은 너무나 사소하고 작아서 점들이 서로 개입하거나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점들은 피자의 페페로니들처럼 점점 커져버렸고, 이제는 서로의 행동과 그 행동의 결과가 상호 간 충돌하기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유의 충돌은 조절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이제 서로의 갈등이 발생하지 않던 시기에서 갈등을 조절하는 시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갈등은 사실 조금씩 조절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번 자유를 맛보면 뒤로는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땅의 소유권도 백성들이 갖게 되고, 직업도 내가 선택할 수 있게 되고, 내가 노력해서 얻은 수확물은 그것이 농작물이 되건 돈이 되건 다 가질 수 있게 점점 사회는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게 됩니다. 그러한 자유는 점점 더 많은 갈등을 유발하게 됩니다.
이러한 접근이 있습니다.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준 인권은 너무나 소중하므로 감히 인간이 그러한 인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관점, 즉 천부인권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이상적으로 가져오면 문제는 너도 나도 다 하늘로부터 받은 자유이고 권리이기에 모두 자신의 권리만 소중하다고 할 것입니다. 갈등은 심화되고 상호 간 양보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개념에는 '너의 권리도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니 너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도덕적으로 이러한 관점은 양보와 조화를 뜻하겠지만, 법적으로는 '너와 나의 권리가 충돌하면 이를 적당히 조절할 수 있다'는 개념을 도출하게 되며, 결국 권리가 충돌하는 경우 법으로 정한 방식대로 양보를 강제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아니면 다른 접근으로는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가지고 있는 '기본권'이라는 권리가 있고, 이러한 기본권은 절대 침해해서는 안됩니다. 기본권은 하늘이 주었다고 하든 말든 상관없고, 절대로 침해해서는 안 되는 개념이므로 이러한 권리에서 충돌이 일어날 상황이 되면 법으로 정하지 않은 이상 절대로 조절도 양보도 해서는 안됩니다. 법으로 정하지 않은 이상 국가도, 개인도, 단체도 누구도 그러한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되며, 필수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권리입니다.
두 접근방법은 '천부인권'이건, '기본권'이건 둘 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천부인권은 너무나 이상적인 것 같고, 기본권은 굉장히 이성적으로 느껴집니다. '기본'이 되는 권리를 헌법에 규정해 두고 그러한 권리가 침해되는 아주 예외적인 요소만을 규정하면, 마치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기본권은 독일의 법사상이고, 천부인권의 범위가 너무 넓기에 이를 축소하고자 '기본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입니다. 기본권으로 규정되지 않은 권리는 그러한 권리가 천부인권에 속하더라도 침해하는 것이 가능한 구조가 됩니다. 마치 우리가 중세시대때 할 수 있는 행동반경(=권리)이 좁으면 상호 간 충돌이 적은 것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기본권'이라는 개념보다는 천부인권에서 천부라는 거창한 표현을 빼고 '인권'이라는 개념으로 헌법을 배우게 됩니다. 인간이 권리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헌법에 규정된 천부인권들을 말하게 됩니다. 인권침해는 결국 헌법에서 정한 인간에 대한 침해를 말하는 것이지만, 요즘은 인격권침해와 많이들 혼동하긴 합니다.
인권이 충돌하는 경우, 대부분 더 소중한 권리가 우선하게 됩니다. 사실 모든 권리는 다 소중한데, 어쩔 수 없이 권리별로 중요도를 정해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흡연권과 맑은 공기를 마실 권리인데, 우리도 알다시피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가 담배필 권리보다 더 소중한 권리입니다. 내가 비록 종교시설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했지만 채플을 듣지 않을 권리도 있습니다.
법적으로 허가를 받은 폐기물처리시설이 인근 학교나 축산지, 주거지에 영향을 주는 경우, 연예인의 사생활이 국민들의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마구 해 집어지는 경우, 정당한 노동권을 주장하는 노동자에게 업무방해를 이유로 경찰이 출동하는 경우 등 다양한 갈등들이 있습니다.
법을 배우다 보면, '권리'는 법에 명문화된 물권, 채권과 같은 청구권 등에 한정되기도 합니다. 청구권을 발생시키지 않는 권리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나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수많은 권리가 다양한 이유와 장소에서 침해되거나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법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권리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보기도 합니다. 장애인들은 왜 저렇게 시위를 해서 지하철을 막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성소수자들이 왜 저렇게 자극적으로 주장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방법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무언가 권리를 호소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자유를 근거로 하는 인권에 속하는 어떠한 권리를 기반으로 울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울부짖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려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왜 울고 있는지도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요즘 계단 하나 오르고 내리기도 손잡이나 경사로가 없으면 쉽지 않습니다. 병원은 디스크 파열은 수술해야 한다고 합니다. 장애인 통로가 없으면 가지 못하는 곳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건강할 때의 저도 여러 감수성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처럼 장애인 감수성이 높은 시기가 없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