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난 말이야....
진실과 사실은 사실상 매우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진실’과 ‘사실’을 거의 같은 의미로 씁니다. 하지만 법에서는 미묘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과 관련된 법조항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형법 제307조(명예훼손)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이라고 규정하고, 공직선거법 제250조(허위사실공표죄)는 “허위의 사실을 공표한 자는…”이라고 합니다.
살짝 비꼬아서 살펴보면, 명예훼손은 '사실'을 적시하였다고 하면서 동시에 공직선거법과 함께 '허위의 사실'이라고 규정하기도 하는데, 사실은 꼭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사전에 의하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정의한 것과 차이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아래 조항에서 더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민사소송법 제202조(자유심증주의)는 “법원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라고 합니다. 즉 사실이라고 주장한 것이 진실한지 아닌지 판단한다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원고와 피고가 서로 '이것이 사실이다'라고 주장한다 한들, 실제로는 어떤 것인지 진실인지 판단하는 별개의 절차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절차를 법에서는 ‘사실인정’이라고 합니다
민사든 형사든 재판은 결국 ‘사실인정’의 과정입니다. 재판은 실제 있었던 일을, 증거와 진술, 정황과 추론을 통해 조립해 나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만약 아래와 같이 선고하였다고 전제해 봅니다.
“피고인이 A를 가격하였다는 점은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
위 문장만 보면 피고인이 A를 때리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리지 않았다'는 진실이 아니라, '때렸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실제로 가격했지만 증거가 없거나 증언이 엇갈리면, 무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형사사건에서 “무죄”나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 잘못이 없거나 더 나아가 억울한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 사실 단정적으로 그렇게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처벌받지 않는 행위를 한 경우 또는 범죄 사실을 도저히 입증하지 못한 경우를 두 가지로 나누어 무죄라고 부르고, 전자를 전단무죄, 후단을 후단무죄라고 합니다(전단, 후단 자체에 의미는 없고 형사소송법상 그렇게 둘로 나누고 있어서입니다)
결국 (후단) 무죄란 “범죄사실을 입증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무혐의란 “아예 기소조차 할 만큼의 사실관계가 불명확하거나 사소하다”는 뜻입니다.
범죄행위가 있고, 이에 대한 증거로 범죄자의 자백만 있다고 전제해 봅니다.
증거가 없이 재판을 할 수는 없으니, 잔뜩 두들겨 맞은 피고인이 법정 앞에 서서 "제가 그랬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자백이 있으니 증거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자백만으로도 처벌이 되었습니다. 피고인을 경찰이 때렸는지 안기부가 때렸는지 모르지만 일단 자백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자백한 것이 사실인지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형사소송법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유일한 증거가 자백이면 처벌되지 않습니다. 이제 자백은 하지 않지만 엄청 저항하다가 지장을 찍은 자술서가 나옵니다. 자술서는 "제가 그랬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쓰여있습니다. 이래저래 구체적인 내용도 쓰여있습니다. 자백도 있고 자술서라는 서류증거도 있습니다. 이때도 처벌이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저 자백이나 자술서가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만, 소송절차에서는 저러한 자백이 '사실'로 인정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즉, 법원에서 인정된 것이 전부 '진실'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죄건 유죄건 무엇이든지.
그러면 다시 돌아와서 법원은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는데 왜 존중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법정에서 종종 듣는 것이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입니다. 원고와 피고는 증거는 없지만 하늘도 걸고 부모님도 걸고 뭐든지 다 걸고 사실이라고 합니다. 걸지 않아도 되고 걸어도 더 신빙성이 높아지는 건 아니지만 저런 원통함에 보통 판사님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데 판사가 모르잖아요"라고 합니다.
이런 말은 “네가 그랬다는 걸 우리는 믿지 못하겠다”에 가깝고, “당신 말이 거짓이다”라는 의미까지는 아닙니다.
진실된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이를 말하는 경우 처벌되는 나라도 있고 아닌 나라도 있습니다. 대다수의 나라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은 명예훼손죄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이나 일본, 독일은 사실을 적시해서 명예훼손이 되는 경우 일정한 요건에 따라 위법성이 없다고 봅니다. 공익목적이나 소비자의 알 권리가 있는 경우 처벌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폐지될 가능성이 높은 죄인데, 한국 정서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없어지면 매우 우려가 되긴 합니다.
진실된 사실인지 허위의 사실인지는 결국 수사기관이 알아내야겠지만, 피고인은 사실이지만 공익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고, 피해자는 허위사실이라고 할 것입니다. 검찰은 허위인지 진실인지부터 확인하고 공익목적을 판단하는 절차를 밟을 것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가고, 인터넷은 만리를 갑니다. 소문이 퍼지고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받아서 처벌을 받는다 한들, 퍼진 소문은 잡을 수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명예훼손을 두려워합니다. 내가 과거에 한 일들, 내가 숨기고 싶은 비밀들이 퍼지는 것은 너무나 두렵고 공포스러운 일입니다. 나의 과거가 평생을 좌지우지합니다. 물론, 명예훼손의 피해자들은 종종 너무나 잘못된 과거와 반성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에 그런 죗값을 치러도 싸다고 합니다. 그런 고민도 고려하면 사실 너무나 복잡한 일들입니다.
A가 B에 대한 소문을 냈다고 C가 B에게 말합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A가 나쁘다. B도 나쁘다. 전달한 C가 더 나쁘다. C랑 어울리지 마라, C는 A한테도 B에 대한 안 좋은 말을 전했을 수도 있다 등등 다양한 사회생활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디캠을 착용하고 다니지도 않고, CCTV로 모든 것을 감시하지도 않습니다. 누가 사실인지도 진실인지도 허위인지도 모르고, 고소한다고 한들 원활하게 처리될 가능성도 낮습니다.
그러면 이제 각종 SNS에 다양한 정보글의 탈을 쓴 가짜뉴스들을 봐도, 한두 번 보고 또 보고 다른 곳에서 다르게 보고 하다 보면 이제 사실을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사실인지 진실인지 허위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너무나 자극적이고 놀라워서 계속 시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우리의 기억도 흐려집니다. 망각하고 덧씌워지고 술을 마셨다면 더 헷갈립니다. 내 기억이 사실인지도 아닌지도 모릅니다. 일전에 이야기한 대로 기억이란 고정되어 있지 않아, 무엇이 사실인지 진실인지도 허위인지도 구분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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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들 우리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믿기도 하고, ‘진실’을 팔아서 누군가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을 취급하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르는 사실을 학습하기도 하지만 추측으로 메우기도 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하고,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법정에서는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말한 모든 것들은 증거가 필요합니다. 증거가 없다면 사실인지 허위인지는 공허한 말들입니다.
제 말버릇 중에는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제 말의 신빙성을 높여주려는 트릭이기도 합니다만, 사실 평소에 엄청 말하는 걸 참는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참았다가 말할 때 자주 사용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진심을 전달하기 위하여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