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란 무엇인가?

저의 이름은 고재민입니다

by ANDTAX

요즘 법조드라마가 정말 많습니다

vB7W0Pl-Mwrz7i-FbYk-XjiSnyyQcEnN4fUmek0kjTV5_YqcqJZ1akAXycEk_cH8sheFcDRTH4JGFotIALyH0m5JwYcsK51f_NPoXMG4NzJT-CCDt1jgu87QBq4g8jwbFirWa9vXFMdENOppwGkVTw.webp
tub0VNmmFLyL5AxegK0l2HcvK01WNn3PCA4vplYmcxu5SUEZceGFSM3irV12JRUhWbw9cuQMmbLLahtERcL0I1j0wYc6fdnRaIiRmumER7Lq_1EyAz78tWe4EdD3lVLnrndSwOS0hJnSI7bOzB9phQ.webp


사실 변호사 입장에서 법조물은 굉장히 오글거리는 판타지물이지만, 그래도 종종 우영우 같은 드라마는 법조물과는 다르고 안 보면 대화가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재판을 보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법조물을 대하는 주된 관점은 '배울 점' 내지는 '적용'입니다. 그러다 보니 법조물은 판타지다 보니 쉽게 '적용'할 점은 없지만, 등장인물들이 고민하고 갈등 속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은 하나의 '배울 점'으로서 작용합니다.


최근 생각하는 점은, 일본의 탐정물이나 미국의 수사물과 같은 드라마가 한국에서 흥행이 더 이상 불가능한 이유는 한국은 탐정도 해결사에서 시작하고, 한국의 경찰은 부패한 경찰물이 너무나 많기도 하고 마동석과 같은 원펀맨 스타일 해결사 경찰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머리를 짜내며 갈등 속에서 집중하게 만드는 장르는 저런 해결사물에서 액션을 빼면 결국 '법조물'로 귀결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이러한 장르는 제가 너무나 좋아하던 장르이기에 법조물에서 오글거리는 장면만 빼면 사실 너무나 재밌기도 합니다.



저에게 법조물은 사실 역전재판인데, 당시엔 제가 변호사가 되거나 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므로 이의 있소! 하고 법정에서 액션을 하는 것이 더 익숙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게임 속에서도 하나의 선택을 하면 다른 선택지가 사라지는 상황이 계속 놓이며, 끊임없이 추리하고 고민하여야 하는 게임이었습니다.


_1_42_1.jpg 즉시항고, 정말로 진짜로 한두 번은 재판 중에 즉시항고를 해서 이의가 있음을 말해야 할 경우가 있다


변호사가 된 이후, 저 '이의 있소!' 하는 외침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실제로 재판은 재판장이 진행을 하고, 인간인 판사가 재판을 진행하다 보니 적당히 초짜 변호사한테 은근슬쩍 넘겨버리면 사건이 빨리 정리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에는 실제 법에서 정한 '변론주의'라던가 '입증책임'과 같이 공정한 재판을 위한 장치를 슬쩍슬쩍 회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당한 지시나 신청 등이 '원(피)고 대리인도 이의 없으시죠?'와 같이 이야기하면 하늘 같은 법조선배가 설마 법을 위반해서 지시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못하거나, 또는 여기서 뭔가 문제를 삼으면 판결에 불이익이 있을까 봐 별 고민 없이 '어어어 네네' 하는 순간 즉시항고권을 박탈당하고 어이없는 증거가 채택되거나 증인의 진술이 인용되기도 부인되기도 합니다. 나중에 변론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아 조졌다'는 생각이 들어도 이미 늦은 것입니다



법조인은 대부분 하루를 고민하는데 쓰는 것 같긴 합니다. 저도 송무부서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머릿속에는 항상 사건만 있었고, 소송을 어떻게 진행할지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재판일정, 다음 서면 내용만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두뇌싸움하는 느낌이 너무 좋았고, 그러한 논리가 맞는지 검증하고 작성하고 제출하고 인정받는 루틴이 저의 법조인 루트였던 적이 있습니다.


images?q=tbn:ANd9GcSUsImnCzy8uNecURQo7PwXj3JrBsm0BmA98x9CPzfxRcncHYk0fQAkgnP9A9-W


12 앵그리맨이라는 아주 옛날 영화를 보면, 한 소년의 아버지 살해 혐의, 모든 정황이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11명의 배심원은 '유죄'를 확신합니다. 그때, 단 한 명의 배심원이 "정말 그럴까?"라는 합리적 의심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치열한 토론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배심제도 사실, 군중심리에 휘둘리면 배심원들도 만장일치하게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한국은 배심원의 의견대로만 판결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판사들도 귀찮아서 배심원들을 설득하다가도 한계에 다다르면 적당히 판결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한국은 배심제 재판에서 한 명이 저렇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사실을 밝히자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배심제는 하루 안에 판결을 해야 하는데 저렇게 재판이 길어지면 집에 못 가기 때문입니다. 연대책임에 대한 굉장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한국인 정서상 저런 구조로는 어렵습니다.


영화라서 그렇겠지만, 이런 상황은 '진실'과 '증명 가능한 것'에 대한 차이가 저런 고민과 갈등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https://brunch.co.kr/@andtax1003/44



images?q=tbn:ANd9GcTr1YnL8rXA-5nn_NRXxfzhpHwtkfpc7ASnywwKLgOu1ipgpXUN-jcn2jdEVWgy


요즘 들어 자주 발생하는 이슈인데 어퓨굿맨을 보면 부당한 상사의 지시를 따라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나옵니다. 로스쿨 입시면접에서 TOP10에 들어가는 주제로, 부당한 지시가 객관적으로 불법인 경우, 해당 지시는 따르지 않아도 됩니다.


영화에서는 가혹행위로 사망한 군인과 이를 밝히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우리나라도 특히 이런 일이 많았는데, 군부정권이나 계엄령과 같은 다수의 역사적 사실도 있고, 좀 더 옛날로 돌아가면 위화도회군 같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쿠데타를 할 것이니 수도로 회군해서 왕을 잡자는 장군의 지시를 따르는 게 누가 봐도 불법이지만 사실 해당 상황에 놓이게 되면 쉽지 않습니다. 거기서 거절하면 이성계가 활로 나를 쏠 것이기 때문입니다.


images?q=tbn:ANd9GcSuWRsHZDHf6jOIcxmgIvd4Jvze0CI9_NG5tBDCl93hR9vwyWr_f_8ZpWd7aPU8


저는 변호사가 되면 링컨차를 사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중고로도 가격을 보면, 초럭셔리 스펙에 1천만 원 이내에 차를 산다면 링컨이 가장 추천되긴 합니다. 한 번쯤은... 하고 생각하다 고장 나면 폐차하겠다는 생각으로 몇 번이나 고민하긴 했지만, 보험료 때문에 포기했었습니다.


링컨차를 고른 이유는 순전히 위 영화(소설, 드리마) 때문인데, 악마의 변호사(The Devil's Advocate)로 묘사되는 몇 안 되는 변호사를 그린 영화로, 유능하지만 속물적인 변호사가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부유한 의뢰인을 변호하는 변호사입니다


이 또한 로스쿨 입시 면접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고 로스쿨에 입학하면 법조윤리에서 배우는 내용입니다만, 자신의 의뢰인이 과거 자신이 변호했던 다른 사건의 진범일지도 모른다는 심증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비밀을 지키고 그의 이익을 위해 싸워야 할 철저한 직업윤리적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의뢰인이 진짜 범인임을 알면서도 '무죄'를 주장해야 한다면, 그것은 과연 정의일지, 내 양심은 어떻게 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변호사의 법조윤리는 이러한 점에서 생명과 같은 중대한 침해가 발생한다면 신고의무를 부여하고(e.g. 범인이 체포되어서 음식이나 물을 줄 수 없는 상태의 유괴피해자가 있고, 유괴된 장소를 알게 된 경우), 그 외의 사건에서는 자백을 권유할지 아니면 비밀을 지킬지에 대해서 변호사에게 선택지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변호사에게 고민되는 사안이고 지금도 변호사들은 이러한 고민 속에서 강력한 갈등에 휘말리게 됩니다.


앵무새 죽이기라는 영화도 법조물입니다.

images?q=tbn:ANd9GcQvcAeNo6n7GDOxJYvF2DBH1ldEvzwaqoVKoWiy8Y0dhei2eP9SR-q1O_t6nv4Z


요즘은 조금 시들해졌으나, black lives matter라는 슬로건이 있었습니다. 흑인인종차별은 한국에서는 단순히 한국인 외의 모든 인종을 배척하는 문화 때문에 발생하지만, 해외 특히 미국은 노예제도부터 발생한 다양한 인종문제가 있었어서, 흑인에 대한 차별만으로도 여러 글을 쓸 정도로 이슈가 많습니다.


해당 영화도 1930년대 미국 남부,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변호사가 아무리 변론을 해도 해당 시기에는 흑인은 지나가기만 해도 범죄자취급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흑인이 변호사의 변호를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센세이셔널한 상황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images?q=tbn:ANd9GcRTdyMEeYH-zu22nfFiJY5fNIRFZAy2Kk12BPePNCCy8v0Rn9rucb0iIFLIPeRv

우영우는 오히려 간명합니다. 많은 자페스펙트럼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부정했지만, 일단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변호사 우영우는 오히려 누구보다 법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논리적으로 적용합니다. 그렇기에 법 외의 문제, 특히 인간적인 문제, 사회적 약자의 아픔 앞에서 쉽게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묘사됩니다.


기계적인 법률의 적용이 오히려 법적이지 못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관점의 묘사가 저에게는 '법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rookie'들을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법치주의는 법만능주의가 아님에도, 법으로 문제가 없으면 문제가 없고, 법으로 가능하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법은 세상의 하나의 수단이고 방법이지 목적이나 결론이 되지는 않습니다.



images?q=tbn:ANd9GcSA7ZFrjwixy3mbavDeUBVg4SyGvoWAof-GjaGBlsC8E6Rkld4ykMyhHjfEK1nd


비밀의 숲과 같은 검사드라마도 사실 법조드라마이고, 검사가 매번 현장을 자주 방문하거나 하는 모습도 정말로 현실에서는 못 보던 일입니다. 서류 작업으로도 하루가 부족한 검사들을 저는 검찰청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검찰에서 근무하면서 비밀의 숨과 공감한 내용 중 하나는 조직에 대한 결속력입니다. 몇 번이나 저는 제가 판단한 정의가 조직이나 국가라는 명목으로 부인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특히 '책임질 수 있어?'라는 질문에 반문할 수 없는 사안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범죄를 저질러서 함께 출국하여야 하는 제외국인 아이를 내보내야 하는 결정, 특정 종교단체의 재산을 압류하고자 하니 별 실익이 없는 트집으로 압류신청서 제출을 막은 검사 등등 저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조직의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 검사의 모습도 자주 보게 됩니다.



처음 이 시리즈를 생각하면서 트롤리딜레마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andtax1003/28


우리의 갈등은 단어에 대한 정의가 다름에서 발생하기에 싸우게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에서 시작한 이 글들은, 결국 하나의 단어에도 논의할 것이 너무나 많은 저라는 사람 한 명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한 주 한 주 주제를 통해서 재미난 이야기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트롤리 딜레마처럼, 우리는 아주 짧은 순간에 고민을 마치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순간순간의 갈등이나 다툼이 발생할 수 있는 경계에 다다르면, 누군가는 그 갈등을 해소하고 다시금 우리가 가던 방향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습니다.


법조인으로서 단어의 정의는 법률에서 정한 정의규정으로 대화하나, 종종 법률에서 정한 정의가 없으면 네이버사전부터 관행, 인터넷 검색결과라도 가지고 와서 우리의 대화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짚고 넘어가게 됩니다.


https://www.enuri.com/knowcom/detail.jsp?kbno=3821861&srsltid=AfmBOopUdydDqyFpA9oH2eSlmY2zDWms3P2CdP0VktIcoAz1Pavv6lD2



한 번씩, 말도 안 되는 주장이나 택도 없는 주장을 하는 법조인을 만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주장이 정말로 저를 화나게 하려는 목표인지, 혹은 판사를 현혹하게 하려는 목표인지, 자신의 의뢰인에게 칭찬받기 위해서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느 주장은, 우리의 관점을 가두고 있던 편견을 깨고 새로운 판결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 변호사는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재판은 제가 10년간 변호사를 하면서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그 정도의 고민이 없었던 게 아닐까 반성하게 됩니다.


법조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고민 끝에 나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각고의 노력과 갈등으로 빚어낸 결과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원동력이 됩니다.

114432525202502069622b30a-324b-49bb-be4e-0af9c631ad22.jpeg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8화'좀비'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