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객관화'란 무엇인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by ANDTAX

옛날 옛적에 제가 소년시절에 하던 게임을 하다가, 정말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신기한 게임 스킬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가늠'이라는 스킬인데, 이 스킬을 사용하면 상대방을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인지 알려주는 기술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싸우는 모든 상황에서 이길 수 있는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내가 상대방을 압도할 정도의 스펙이 있더라도 종종 패배하기도 합니다.


저는 스스로에 대한 엄격한 자기객관화가 싸움의 승부를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분석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종종 우리는 압도적인 차이를 만나면 오금이 저린다고도 하면서, 공포나 경외감을 초월한 것을 느낍니다. 마치 카리나, 장원영과 같이 이른바 폭룡적인 존재를 마주친 일반인처럼 눈으로 보는 감각도 신뢰하지 못하는 경지에 도달합니다.


https://biz.chosun.com/entertainment/tv/2024/04/21/EHK5ZEMLH2LKCK3M7RHP3FM4NM/


우리가 호랑이, 곰, 들개를 만나거나 강도를 만나도 도망가야 하나 하는 찰나의 생각이 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존재가 나타나면 도망가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나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당하기만 할 것 같습니다

9w--I22dM2sV4fJ3p4ysxN63OIc.png 코스믹 호러. 우리는 미스트를 비롯해 다양한 코스믹호러 영화를 마주쳤다





압도적인 존재와의 싸움은 보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싸움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눈으로 보기에는 쉽거나 만만해 보이지만 사실 속을 알 수 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야만의 시대가 아니므로 갑자기 나타난 상대와 결투를 하고 목숨을 잃는 일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적, 경제적, 법적으로 다양한 싸움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간단한 민원을 신청하러 동사무소를 갔습니다. 일단 대기번호가 줄지 않아 여러분은 화가 났습니다. 창구는 4~5개가 있는데 앉아있는 직원은 둘밖에 없고, 심지어 한 명은 손톱을 자르고 있고 한 명은 귀가 잘 안 들리는 노인분이 무언가 달라고 하시는데 안된다고 하는 듯합니다. 그러고 나서 몇 명이 바로 옆에 있는 무인창구에서 무료로 뽑을 수 있는 등본을 굳이 몇백을 내면서 등본을 뽑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여러분 차례가 왔습니다


"전입세대증명 뽑아주세요"


여러분은 일단 필요한 서류를 신청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직원은 여러분을 모릅니다.


주소지랑 용도를 물어봅니다. 주소지를 보니 이 동사무소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2시간을 기다려서 다른 동사무소를 가라는 말을 듣고 다시 나오게 됩니다


어찌 되었건 다시 주소지를 가서 기다려서 "전입세대증명"을 달라고 합니다. 동사무소 직원은 이사 갈 집이냐고 물어보며 계약서를 달라고 합니다. 계약서를 안 가져오면 다시 기다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현재 타인이 무단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직원은 눈빛이 흔들리고 손이 떨리기 시작합니다. 전입세대증명은 보통 이사 가려는 집에 아무도 안 살고 있어서 소액임대차 거주자가 없어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용도로 뽑는 서류이기 때문에, 저런 법적으로 문제가 생길만한 일은 인수인계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열심히 사수 같은 직원을 찾습니다. 그리고 매뉴얼을 알려주고 열심히 넘겨봅니다. 그러고 나서 서류를 쓰라고 하면서 신청서를 받았습니다


"법인 소유 집입니다"


그랬더니 법인등기와 법인인감증명서, 사업자등록증을 요구합니다. 챙겼다면 역시나 다행입니다.


그러고 나서 전입세대 열람을 해보고 누군가 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당연히 누가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을 내보내고 싶어서 물어봅니다


"주민등록 말소 되나요?"


아쉽게도 주민등록 말소제도는 폐지되었습니다. 거주불명이라는 제도가 생기긴 했는데, 재판보다 더 오래 걸립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하루(혹은 이틀)를 날려 내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만 알게 되었습니다.




위처럼, 여러분은 집에 있는 누군가를 내쫗기 위해서 전화도 해보고, 찾아도 가보고, 회유도 해봤다가 결국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민원을 신청하러 갔으나, 아무 효과가 없었습니다. 사실 재판을 하더라도 사람을 내보낼 방법은 없습니다. 강제집행으로 집안 살림살이를 다 꺼내고 나서 도어록을 변경하면, 그제야 포기하고 나가게 되는 경우도 있겠으나 사실 임대인 또는 집주인이 무단점유자인 임차인을 내보내는 것은 너무너무너무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나는 집주인이고 임대인이고 뭐든 정할 수 있다는 압도적인 힘은 사실 세입자가 열심히 연초를 피워 콘크리트에 담배냄새를 쩔게 만들고, 온 동네 유기견 유기묘를 다 집에서 길러서 각종 민원과 작살난 장판 바닥을 보게 될 수도 있고, 막말로 집안을 범죄소굴로 만들거나 최악의 경우 자살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전세사기로 선량한 임차인들에게 피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반대로 선량한 임대인도 임차인에게 피해를 보기도 합니다. 이렇듯 힘의 차이는 일정하지도 않고, 미리 알기도 어려우며, 분쟁이 시작되면 저울은 고정되기 전까지 매우 흔들리게 됩니다.


법적분쟁으로 싸움을 시작하게 되면, ‘상대가 나보다 얼마나 강한지’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면 준비 없이 뛰어들어지고, 과소평가하면 아예 시도조차 못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기 객관화(Self‑Objectification)는 모든 갈등의 출발점입니다. 자기객관화가 부족하면 자기 평가가 현실과 괴리되어, 법적·사회적 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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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변호사에게도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고, 법률용어와 일반용어를 섞어서 쓰기도 합니다. 다 좋습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나름 법률적인 관점에서 해석해서 이를 법률문서화 하도록 하는 것을 트레이닝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마인드를 리걸마인드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변호사도 인간인지라 종종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실수의 귀책은 변호사일 수도 있고 의뢰인일수도 있으나, 정말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변호사는 너무나 많이 믿은 죄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점은 경험을 통해서 극복되나, 사실은 변호사는 그런 실수는 하여서는 안됩니다.


내가 청구하고자 한 권리나 법률효과는 법에서 정한 일정한 요건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즉 어떠한 요건을 충족하여야지만 권리가 되고 청구권이라는 것이 발생하는 구조인데, 이러한 요건들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당연히 반대로 그러한 권리도 청구권도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하는 변호사도 종종 있지만, 보통은 그럴싸한 말로 주장은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는 경우라면, 결국 청구권을 행사하고자 한 의뢰인도 자기 객관화에 실패하고, 이를 대리하는 변호사 또한 실패하게 됩니다.



요즘 핫한 민생쿠폰이나 실업급여 등 복지제도를 신청한다고 가정해 봅니다. 여러 복지제도는 복지의 성질마다 다르게 설정되어 있는데, 누군가는 "복지혜택 주기 싫어서 복잡하게 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은연중에 그러한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외형적으로 복잡한 복지제도를 운영하는 이유는 복지제도의 악용을 막고 더 많은 복지가 해당 복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엄격하게 설정하기 때문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독거남성노인에게 생리대를 지원하거나, 중학생 차상위 학생에게 금연장학금을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자신 또한 어떠한 복지가 필요한지 스스로 어느 정도는 학습이 필요할 수는 있습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복지제도를 다 알고 그 복지제도를 나에게 접목시켜서 필요한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사실 없습니다. 사회복지사나 사회복지직 공무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하나 요건충족여부를 통해서 객관화하여 필요한 복지제도를 확인할 수 있고 신청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원자격이 없는 복지혜택을 신청하고자 하면, 동사무소에서 하루 종일 싸우면서 "옆집 김 씨는 줬는데 왜 나는 안 줘"라고 외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2dd8942f-f7fe-4f4f-9973-d270e454b49f.jpg 자기객관화가 안된 악성민원인을 엄단하는 중이다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나 스스로가 굉장히 나이스하고 멋지고 쿨하고 CHILL 한 회사 구성원이자 상사이면서 실무가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나를 굉장히 기회주의적이고, 험담에 능하며, 능력보다는 정치질로 승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내가 그런 야비한 사람임을 인지하고 남에게 안 좋은 모습을 안보이려고 노력하거나 호가호위에 능해서 살아남는 생존전략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그런 자기객관화가 안되어 버린 상태로 사회생활을 해버리면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의 차이가 커져버립니다. 나는 분명 모든 구성원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직장인인데, 내가 실수를 하거나 회사를 떠날 때 아무도 나에게 술을 사주지 않게 됩니다




연애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슬프지만 연인관계에서의 저울은 균형이 정확하게 이루어진 채로 고정되기는 어렵습니다. 흔들거리기도 하고 치우치기도 합니다.


예전 제 초등학교 동창A가 있었는데, 학교를 다닐 때 그 친구는 공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다른 여자애들 패거리에서 우두머리역할을 했습니다. 초등학생 때라 일진이나 그런 표현은 조금 애매했으나, 확실한 건 초등학생 때에도 엄청 화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인상이 남을 만한 외모였습니다. 저도 나쁘지 않게 지냈던 기억이 있지만, 여중여고를 간 그 친구와 남중남고를 간 저는 다시 마주칠 일이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성적으로 좋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화려한 외모와 친구들이 많은 모습을 보고 애초에 남녀관계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도 못했습니다(초등학생이었지만..)


그러다, 대학교 1학년 1학기가 되고 교양과목을 들으러 갔는데 그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초등학생 시절의 그 당당한 표정으로 강의실 한가운데 앉아있었습니다. 그 과목이 조별과목이라, 교수님이 3명씩 조를 구성하라고 하시자마자 그 친구에게 다가가서 나를 기억하냐고 물어봤습니다.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 같은 학교를 왔냐고 고생 많았다 축하한다며 서로 반가워했습니다. 그 친구는 초등학생 때 얼굴에서 그대로 자라 키만 커져서 모델처럼 자랐고, 저는 그냥 일반인(?)처럼 자랐습니다. 당시에도 저는 애초에 남녀관계를 생각하지도 않았던 친구라 반가움만 있었는데, 잘은 기억은 안 나지만 조를 같이 하게 된 친구 B는 저랑 약간 안면은 있었지만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 친구가 저에게 잘해주게 된 시기는 제가 동창과 인사를 한 그날부터였습니다.


셋이서 같은 조가 되었고,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습니다. 저는 동창친구 A를 소개해달라는 B의 연락을 받고, 이미 서로 연락처를 아는데 소개가 필요하냐고 되물었습니다. 제 우답을 현명하게 이해한 친구는 아마 스스로 그 친구에게 잘 연락을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잘 안되고 끝났을 것으로도 예상합니다.


제 동창친구 A는 지금 생각해도 남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요소가 정말 많았는데, 제 기억에도 흐릿한 얼굴의 B는 사실 저랑 친한 친구도 아니었고, 지금도 왜 아는 사이였는지도 기억이 안 납니다. 사실 셋이서 무슨 강의를 들었는지도 기억이 안 납니다. 물론 용기가 있는 사람이 미녀를 얻는다고는 하지만, 얻을 만한 사람이 용기가 있었기에 얻은 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한 자기 객관화를 하기 위해서 SWOT를 돌리거나 설문조사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이 바라보는 나와 남이 바라보는 나의 차이의 갭을 줄이려면, 자기 비하보다는 나은 겸손함이 필요하고, 과용이 아닌 정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기객관화에 대해서 할 말이 너무나 많지만, 위험한 말이 될 수 있어서 여기까지만 하려고 합니다.

농담이고, 스스로를 비추어보며 갈고닦는 것 만이 나를 더 완전한 존재로 이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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