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룹의 그 멤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변호사로 일을 하다 보면 승소할 때도, 패소할 때도 있습니다. 법정싸움에 승부가 항상 정해진 것은 아닌 것처럼, 승소할 재판도 지기도 하고, 패소할 재판도 이기기도 합니다.
압도적으로 싸워서 털끝만 한 손해도 없이 이기는 경우가 없기도 하고, 싸우고 나서 지쳐버린 상태로 결과를 보면 싸움에서 이겼다는 말을 들어도 처음 재판에서 승소를 했을 때처럼 즐겁지도 신이 나지도 않습니다. 이제는 초심을 잃어서 그런 걸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인 승소율 100%라던가 몇억 원대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식의 홍보는 자칫하면 변호사법 위반이 되기도 합니다.
소송과 고소고발에 찌들어버린 변호사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일상에서 ‘승리’를 자주 접하며 살아갑니다. 꼭 '승리'라는 단어는 아니어도 승패가 주된 요소가 되는 것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나가건, 반에 시비가 걸린 놈이랑 맞짱을 까버리건(?), 직장에서 타 부서와 싸우건, 애인과의 감정싸움이건, 그리고 스포츠에서건 법정에서까지, 다양한 경쟁과 갈등의 순간마다 승리와 패배라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축구선수가 골을 넣어 승리해도 부상으로 뼈가 부러지고, 격투기 선수가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쌓인 데미지로 사망하기도 하고, 법정싸움이 길어져 돈도 시간도 마음도 건강도 잃어버린 채 판결문을 받았습니다. 연인과 싸워서 이겼지만 내가 사랑하던 그녀는 나의 지지 않는 투쟁심에 질려 저를 떠났습니다.
과연 승리란 무엇인지, 그리고 승리했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진짜 승리라고 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이들 법대로 하자고 하고, 법대로 해서 이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법원은 굉장히 소극적인 기관입니다. 법원의 판결을 통해 내 말을 들어준 판사님이 내가 했던 말들을 판결문에 써주었고 판결문에 내가 이겼다고 쓰여있다는 점 자체는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판결문에 이름이 남는다고 해서 그 자체로 실질적인 이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는 판결문인 종이짝이라고들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소송에서 승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이미 재산을 다 처분했거나, 지급능력이 전혀 없어서 판결을 집행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이런 경우 승소 판결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할 수 있고, 오히려 소송에 들인 시간과 비용, 그리고 정신적인 고통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변호사 비용, 인지대, 송달료 등 여러 가지 소송비용이 최종적으로 받게 되는 금액보다 더 많아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이러한 경향은 커지고, 결국 내 시간과 돈, 건강을 다 털어서 이겼다는 말 한마디만 받고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나라와 법이 내 편을 들어주는 그 순간이 더 중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과 잃어버린 돈, 건강은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공익소송이나 환경소송, 인권 관련 소송처럼 사회적으로는 의미가 크지만 실질적인 보상이 적은 소송에서는 승소했음에도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20, 30년 만에 재심을 통해서 누명이 벗겨지면 나라에서 정해진 보상금으로 적지는 않지만 많지도 않은 형사보상금이 지급됩니다. 이제야 누명이 벗겨졌다는 기쁨은 너무나 값진 보상이지만, 억울하게 사라진 청춘은 아무도 보상해주지 못합니다.
해외에서는 특이하게 권리 침해가 인정되지만 실질적 손해가 거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1달러처럼 명목상 배상만 인정하기도 합니다. 법적으로는 이겼지만,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없는 결과임을 감안하기도 하고, 반대로 손해액이 얼마인지 산정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시간을 절약하기도 하며, 그리고 청구하는 금액에 비례해서 소송비용이 발생하는 구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즉 법적으로 내 말이 맞는지만 확인하고 손해배상을 포기하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법적으로는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강제집행 절차를 별도로 진행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비용과 시간이 소요됩니다. 법적 승리가 곧바로 경제적 이익이나 사회적 평판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법적으로 승리했지만 사회적으로는 도덕적 비난을 받거나, 기업의 경우 브랜드 가치가 크게 하락하는 등 사회적 패배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예컨대 노동자의 불법쟁의를 기업이 이긴다고 하더라도 비난만 받게 되고, 과징금, 세금 사건에서 이긴 회사 또한 마치 거액의 변호사비용을 써서 나라에 낼 돈만 아낀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총수 또한 다수의 범죄에서 처벌이 되지 않는 경우, 유전무죄 등을 논하며 사회적 비난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법적으로 패소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와 각성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안 염전노예 사건처럼 법적 증거 부족 등으로 패소한 사례에서도 언론과 여론의 주목을 받아 장애인 인권보호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일어나고, 결국 제도 개선까지 이루어지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재판결과가 아니라 재판의 절차 그 자체를 이용해서 합법적으로 대중에게 재판을 통해 발생하는 내용을 알리는 것이며, 재판 결과 또한 이목이 주목된 상태에서 사법부에게 압박을 주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패소하더라도 사회의 이목을 주목받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https://www.neosherlock.com/archives/20989
또 경제적으로는 이득을 본다고 생각하였다가 법적으로 패소해 모든 것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에서 거액의 보상 패키지를 합의받아 경제적 이득이 코앞에까지 다가왔다가, 주주대표소송에서 절차상 위법이 인정되어 법적으로는 패배하게 된 사례가 있습니다. 한국도 이러한 주주대표소송이 상법개정을 통해서 더욱 많아질 수 있는 위기에 처했는데, 아마 당분간은 눈치를 보며 경영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41203025200075
앞에서 살짝 넌지시 이야기했듯이, 싸움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만, 보통은 싸움은 그 결과를 취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것이 꼭 어떠한 경제적 이득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싸움의 결과가 이념이나 종교, 정치, 정의 같은 형이상학적인 가치인 경우 그 싸움의 끝은 너무나 먼 곳에 있습니다
당장 우리가 적당히 친한 회사 동료나 연인에게 저런 철학적 가치관의 공유가 아니라, 가치관의 차이를 없애고 하나의 가치관으로 통일하기 위해 대화를 해본다고 가정해 봅니다. 연인의 시작은 연락의 주기, 대화의 방법, 카톡을 보내는 말투나 전화를 하는 톤, 방법, 시간 등 다양한 것을 맞춰갑니다. 만나고 보니 정치적 가치관이 달라서 서로 투표한 후보자도 달랐다거나, 알고 보니 조상이 원수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싸움은 보통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서운함이나 애정, 집착과 같은 감정에서 고조되며, 싸움의 결과는 화해와 더 단단한 애정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싸움이 반복되고 관계의 강화가 목적이 아니게 되면, 싸움은 자존심싸움과 감정싸움 그 자체가 되어버리게 되고 소모전이 됩니다.
https://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314125
사랑하는 사람과 싸우고 헤어지는 것은 사실 빈번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싸움의 목표가 헤어짐이라면 싸워서 이기는 것을 축하하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입니다.
이처럼 싸워서 이기는 승리라는 것은 법적, 경제적, 사회적 관점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분야에서의 승리가 다른 분야에서는 오히려 패배가 될 수도 있고, 각자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결과의 의미가 정반대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판결에서 승소했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면에서 이익을 본다고 할 수 없고, 때로는 패소 속에서도 사회적으로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진정한 승리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단순히 법적으로 이기는 것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능열쇠가 아니며, 각 관점에서의 실익과 손해, 그리고 그 이후의 현실적 변화까지 균형 있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투에서 져도 전쟁에서 이겼다
라는 말을 정말 좋아합니다. 전투 같은 싸움은 상대방과의 소모와 괴로움, 고통을 야기시키지만 희생을 줄이는 전략으로 전쟁을 이겨서 실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군가 상담을 해올 때 '(소송에서) 이기고 싶으냐'라고 물어봅니다. 내가 살을 내어주더라도 상대방의 뼈를 끊어버리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가진 의뢰인에게는 싸움을 부추기고, 싸움이 두려워 힘들어하는 의뢰인은 방패와 전략가가 되어주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싸우지 않고 이길 방법이 떠오르면 저는 '전투가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자'고 말합니다.
싸움에 임할 땐 당연히 임전무퇴의 마음으로 싸움에 임해야 합니다. 하지만 승패를 판단하기보다는, 그 결과가 자신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를 남기는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상처만 남은 싸움의 승리에서 건질 전리품이 하나도 없다면, 사실 싸움귀신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