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은 너무 어렵다
요즘 법률드라마 중에 서초동을 보고 있습니다.
작중 안주형변호사(이종석 분)와 강희지변호사(문가영 분)는 썸을 타는 분위기인데, 둘의 인연은 홍콩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약간의 스포지만, 이야기하자면 홍콩에서 만난 둘은 서로가 인연임을 알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다시 '만나자'라고 합니다. 만나자는 의미는 빈말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둘에게는 1) 서울에 가서도 다시 약속을 잡고 만나자 혹은 2) 서울에서도 지금의 관계처럼 연인이 되자, 혹은 사귀자 정도의 의미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만나자'는 말에 한 명은 사귀자는 말로 이해하고, 한 명은 약속으로 이해한 듯합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만나자는 것이 너무 성급하지 않느냐는 반응, 그리고 한 명은 만나는 약속을 거절하는 듯 하니 그 둘의 관계는 오해가 생기게 됩니다.
한 명이 확실하게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한국에서도 더 깊은 관계가 되고 만남을 지속하고 연인으로 지내고 싶다'라고 말했으면 얼마나 확실하면서도
낭만도 없고 설렘도 없고 돌직구를 날려버려서 저런 애틋한 사랑의 추억도 없이 지내버리고 안주형변호사도 연인이 생겨 공부를 소홀하게 되고, 강희지변호사도 로스쿨에 가지 않고 연애를 하느라 변호사가 안 되는 둘 다 변호사가 못되어서 서초동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지지 못하는(?) 일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된 안주형과 강희지는 처음 다시 재회한 날 '꼭 만난다는 말이 사귄다는 말이 되느냐'라고 합니다. 사실 변호사가 되었으니 용어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매우 매우 중요한 직업병이 됩니다.
많은 법학을 시작하는 학생들이 놀라는 포인트 중 하나는 방조죄가 방관죄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전에서 쓴 적이 있는 것이지만, 한자로 '도울조'를 통해서 사실 방관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범죄를 도와준 범죄가 됩니다. 즉 내가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자(=본 범)가 더 쉽게, 더 잘, 더 용이하게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행동을 말하므로, 사기방조죄라 하면 사기를 더 잘 저지르도록 계좌를 대여해 주거나, 대신 인출을 하거나(인출책) 하는 행위를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점은 적어도 '내가 범죄를 돕는다'는 고의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주 우연히 어떠한 행동을 했는데 범죄자가 옳다쿠나 하면서 범죄의 도구로 사용해 버렸다고 한들, 제가 방조죄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종 저러한 더 첨예하게 싸우게 됩니다.
대법원 2011. 12. 8. 선고 2010도 9500 판결
형법상 방조행위는 정범이 범행을 한다는 정을 알면서 그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 방조는 정범의 실행행위 중에 이를 방조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실행 착수 전에 장래의 실행행위를 예상하고 이를 용이하게 하는 행위를 하여 방조한 경우에도 성립한다. 그리고 방조범은 정범의 실행을 방조한다는 이른바 방조의 고의와 정범의 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인 점에 대한 정범의 고의가 있어야 하나, 이와 같은 고의는 내심적 사실이므로 피고인이 이를 부정하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고, 이때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할 것이며, 또한 방조범에 있어서 정범의 고의는 정범에 의하여 실현되는 범죄의 구체적 내용을 인식할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고 미필적 인식 또는 예견으로 충분하다(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7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04. 6. 24. 선고 2002도995 판결, 대법원 2005. 4. 29. 선고 2003도6056 판결 등 참조).
그러면 대체 고의는 뭐고 미필적 인식 또는 예견이 무엇인가입니다.
우리는 보통 '고의'는 내가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행동'을 하였을 때 자주 합니다. 다 너 잘되라고 한 것이라던가, 손해가 나지 않거나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행동한 행동이 역으로 손해가 발생하면 하는 말들입니다. 그러한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것' 그 자체를 고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법적으로 고의는 결과와 별개입니다. 정확히는 행동할 당시 그 순간의 의도를 말하고,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미수죄냐 그냥 ****죄이냐, 즉 미수와 기수를 가르는 기준이 될 뿐입니다.
죽도록 때려놓고 다칠 줄 몰랐다거나, 죽을 줄 몰랐다거나, 죽일 생각으로 때리지 않았다고 말하며 '고의가 아니었다'라고 해봅시다. 사람의 마음은 아무도 모르니, 이러한 경우 '고의가 없었다'라고 법적 판단을 해버리면, 사람을 아무리 패도 폭행죄, 상해죄, 심지어 상해치사나 살인죄 등 사람이 죽어도 전부 감경된 처벌을 받게 됩니다. 때리는 행동이 조금 와닿지 않으면, 계단이나 절벽,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힘껏 밀었다고 하고 '장난이고 고의였다'라고 해도 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게 다 '실수'가 되며, 실수는 우리가 아는 '과실'과 비슷합니다.
그렇기에, 고의는 내가 말하고 생각하는 의도에 한정하지 않습니다. 고의는 '상식적으로' 이러한 결과가 나올 것을 알았고 그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행동을 내 의사대로 하였다'면 성립합니다. 즉 죽으라고 때리지 않아도, 이 사람이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의도면 충분히 고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너를 죽이려고 너를 마구 때렸다'는 의사라면 명백한 고의가 되고, '내가 너를 죽이려고 때리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배운 살인무술로 너의 울대를 쳐버리면 죽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미필적 고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화 중에 '고의는 없지만 미필적 고의는 있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너무나 법률용어이나 요즘 종종 등장하기는 하는 단어이긴 합니다. 미필적 고의는 아닐 미에 반드시 필자를 쓰고 있는데, 사실 한국어로도 참 이상하긴 합니다. 굳이 한국어로 말하면 '완벽한 고의에는 미치지는 않는 고의'정도로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고의'라는 단어도 일상생활과 법률에서도 조금은 다릅니다. 연인과 싸울 때도 그렇고, 법정에서도 마찬가지로 '고의는 아니었다'라고 한 순간, 더 큰 방어논리를 갖추어야 할 듯합니다
고의만큼 자주 논의되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증여'입니다. 증여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남에게 물건을 주면 증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면 남에게 물건을 '무상으로' 주어야 합니다.
근데 한 번씩 '증여도 계약이다'라고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남에게 주는 것이 왜 계약인지 고민해봐야 하는데, 사실 간단하게 말하면 받는 사람이 승낙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주는 사람이 있고, 증여하고자 하는 물건이 있고, 받는 사람의 지배권한에 놓이게 된 경우 바로 '증여'의 법적 효과가 생긴다고 가정해 봅니다. 그러면 이제 쓰레기를 증여했다고 말해도 받는 사람은 쓰레기의 소유권자가 되고, 갖은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받는 사람의 의사도 받고자 한 경우에야 비로소 증여라는 법적 효과, 즉 증여자가 수증자에게 물건의 소유권을 넘기는 것에 대한 효과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여는 문서로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문서로 하면 우리가 증여계약서를 쓰게 되는 것인데, 문서로 하게 되면 증여는 특별한 효과가 생기게 되고, 쉽게 말하면 증여는 원칙적으로 주는 사람이 맘대로 줄 수는 없지만, 주는 사람이 맘대로 주기로 한 계약을 무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서면으로 해버리면, 맘대로 무를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 '이거 줄게!'라고 하면 서류로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연인이 해와 달과 별도 주고 내 인생도 주고 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면, 증여세는 둘째 치더라도 일단 우리의 사랑을 글로 남기자고 하고 반드시 도장을 찍게 해야 합니다.
증여세는 나중에 고민하고 싶어서 일단 도장을 찍었다고 하면, 이제 증여계약이므로 계약이 서면으로 적법하게 성립하였을 수 있습니다. 내 목숨도 주겠다고 쓰여있다면 무효일 수 있으므로 그런 말은 은근슬쩍 빼고,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을 위주로 적법하게 작성하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가 처음 증여세라는 세금을 만들 때, 아마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면 민법에서 이미 증여계약이라는 것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증여세도 '적법하게 성립한 증여계약'으로 놓을 수도 있고, 유증, 상속, 생전증여 등을 모두 상속세로 규정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기는 맹점을 보면, 위에서도 그렇고 '내 삶과 내 목숨,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계약을 체결했다고 가정하면, 언제 저 모든 내 사랑을 줄지가 나와있지 않습니다.
내 목숨을 지금 가져가기로 했다면 '을은 갑에게 본 계약을 체결한 즉후 을 자신의 생명을 갑에게 제공한다'는 문구가 쓰이게 됩니다. 아니면 을이 지금 말만 할 수 있고 돈은 땡전 없는 낭만거지인 경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준다고 해도 빤스에 운동복이 다라면, '을은 갑에게 본 계약을 체결한 즉후 을이 가진 모든 재화를 갑에게 제공한다'라고 계약을 체결해도 갑은 빤스운동복만 받게 됩니다.
결국 증여계약은 '언제'의 문제인데, 언제 증여를 할지, 언제 계약을 체결할지가 구분되면서 재산을 무상으로 받은 사람은 '나라가 그러한 재산의 무상이전도 보호해 주므로 나라에 세금을 내라'는 입장에서 매우 애매하게 됩니다. 만약 계약서에 '을은 갑에게 마음 내킬 때 재산을 증여한다'라거나, '을은 갑에게 재산을 사용하게는 해주나, 증여는 사망 직후에 효력이 발생한다'라던가 하여 증여의 법적 효력을 맘대로 정해버리고 나라가 세금을 걷을 때도 이를 따르게 해 버리면 증여세를 언제 걷어야 하는지, 증여가 진짜 이루어지는지 계속 감시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나라는 아주 쉽게, '증여계약이건 뭐 건간에 일단 재산이 실질적으로 넘어가면 증여'라고 보기로 하였습니다. 아주 쉬운 방법이기도 하고 효율적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 헷갈리지도 않습니다.
종종 이러한 일관된 조건이 필요합니다. 예시로 자주 드는 것은 유실물습득에 대한 세금입니다
만남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만나면서 발생하는 관계의 유지입니다. 마치 동일하거나 비슷하게 들리는 용어가 서로 간에 정한 정의가 다르다면 당연히 대화가 될 리가 없습니다.
연인사이에서 말싸움이 일어날 때, '왜 말을 그렇게 서운하게 해'라고 하며 싸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한 싸움에는 말을 하는 분위기, 표정, 톤도 중요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단어가 거슬리고 긁히기도 합니다. 대화는 어디까지나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지, 싸움이나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은 아니고 그러한 '고의'가 없을 때도 많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 싸움의 도구나 상처를 주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한 고의가 없더라도, 우리가 단어를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싸움이 되기도 하며, 반대로 의미 없는 미사여구로 달도 별도 따다 주는 허황된 말이기도 합니다. 변호사들은 그러한 단어싸움에도 익숙하고, 정의규정에도 민감하나, 반대로 종종 변호사이기에 변호사가 아닌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종종 의사소통이 잘 안 되기도 합니다.
저도 그러한 시기가 지나가고, 저는 그런 상황에서 최대한 용어를 편하게 쓰기도 하고, 상대방이 법률용어를 전혀 모른다고 가정하고 하나하나 알려주기도 하고, 변호사가 아닌 인격으로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의는 아니지만' 변호사가 되어 대화를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은 직업병으로 여기고 고쳐야 할지, 아니면 내가 말하다가 종종 변호사처럼 말을 하며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는 점을 미필적 고의로써 인지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