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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준 Sep 23. 2024

로마 제국 쇠망사 46 -1 : 동로마의 위기와 구원

이라클리오스의 개혁이 동로마 제국을 800년 더 유지시키다

포카스의 찬탈과 폭정


Phocas, having usurped the throne, ruled the empire with tyranny and violence, weakening the state both politically and militarily.


포카스는 왕좌를 찬탈한 후 폭정과 폭력을 통해 제국을 다스렸으며, 정치적, 군사적으로 국가를 약화시켰다.


포카스는 602년에 군사 반란으로 동로마 황제 마우리키우스를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폭정 그 자체였다. 포카스는 강압적인 통치로 인해 동로마 제국의 군사적, 정치적 기반을 크게 약화시켰으며, 외부의 침략에 대응할 능력을 상실했다. 이 시기에 사산조 페르시아의 호스로 2세가 로마제국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고, 동로마 제국은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대공세


Heraclius, upon his accession to the throne, embarked on a campaign of military and administrative reforms aimed at restoring the strength of the empire and repelling the Persian invasions.


이라클리오스는 제위에 오른 후 제국의 힘을 회복하고 페르시아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한 군사적, 행정적 개혁에 착수했다.


이라클리오스는 포카스의 폭정을 종식시키고 610년에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했다. 즉위 후 그는 제국의 군사적, 행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이라클리우스의 여러 가지 개혁 덕분에 로마제국은 페르시아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이라클리오스의 즉위와 대대적 개혁


46장은 동로마 제국이 심각한 정치적 혼란과 외부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한 시기를 다룬다. 포카스는 마우리키우스를 살해하고 황제 자리에 오르며, 제국의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의 폭정은 제국의 통치 구조를 약화시켰고, 내부 반란과 정치적 갈등이 격화되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제국은 외부의 침략에 취약해졌고, 사산조 페르시아의 호스로 2세(Khosroes II)가 대규모 군사 공세를 펼치게 되었다.


호스로 2세는 동로마 제국이 내부적으로 분열된 틈을 타 동부 영토를 침략하고, 여러 주요 도시를 점령하며 제국을 무너뜨리려 했다. 이 시기의 페르시아 침략은 동로마 제국에 있어 가장 큰 위협 중 하나였으며, 제국은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이라클리오스가 등장했다. 610년, 그는 포카스를 물리치고 황제가 되어 제국의 재건을 시작했다. 이라클리오스는 군관구제와 둔전병제를 통해 제국의 군사력과 경제적 기반을 재정비했으며, 이는 지방의 자치를 강화하고, 자급자족 가능한 군대를 조직함으로써 제국의 방어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했다.


그리스어의 채택과 민심의 결속


또한, 이라클리오스는 제국의 공용어를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바꾸는 중요한 개혁을 단행했다. 이는 제국의 실질적인 언어 현실을 반영한 결정으로, 동로마 제국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스어는 이후 동로마 제국의 공용어로 자리 잡아 제국 내 민심을 안정시키고, 행정과 문화의 일관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의 승리


이라클리오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622년부터 시작된 반격에서 그는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고, 627년 니네베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을 격파하며 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 결과, 페르시아의 호스로 2세는 몰락하고 동로마 제국은 다시 한번 재건될 수 있었다.


결단력 있는 리더십과 체제 개혁


이라클리오스의 통치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리더십과 개혁의 중요성이다. 포카스의 폭정은 제국을 무너뜨릴 뻔한 위기를 초래했으나, 이라클리오스는 단순한 군사적 승리에 그치지 않고 제국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새로운 체제를 구축했다. 그의 군사적 개혁은 제국의 방어 체계를 강화했고, 경제와 군사적 자립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언어와 문화적 통일성의 중요성도 중요한 교훈이다. 이라클리오스가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도입한 것은 제국 내 민심을 안정시키고, 동로마 제국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국가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부심이 국가의 결속력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한 체제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 이라클리오스는 군사적 승리를 넘어, 장기적인 군사·행정 시스템을 정착시켜 제국이 800년 이상 더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의 개혁은 단기적인 성과를 넘어서, 장기적으로 제국의 안정을 보장했다는 점에서 현대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따라서, 이라클리오스의 시대는 지도자의 결단력과 체제 개혁이 국가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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