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고 에세이로 소통하며 시로 공감한다
1
두 줄로 땋은 그 소녀의 뒷머리 끝에는
항상 빨간 리본이 묶여 있었다.
그 소녀네가 사는 길모퉁이 외딴 돌담집
그곳 담벼락에 세워진 대나무 장대 가지 끝에는
그 빨간 리본처럼 항상 붉은 헝겊이 묶여 있었다.
그 소녀의 어머니는 무당이었다.
2
전교생이 참가하는 포스터 그리기 미술대회
선생님이 빨간 분필로 포스트에 넣을 표어를 칠판에 썼다.
미신 타파! 무당을 없애자
시인이신 교감 선생님이 직접 지은 표어라고 했다.
그 순간 무당은 우리가 반드시 섬멸해야 할
반공 포스터의 간첩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아이들은 각자 상상력을 동원하여 무당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뾰족한 바늘 털옷을 입은 징그러운 송충이처럼
또 어떤 아이는 오색치마저고리에 검정 깃털 모자 쓴 저승사자처럼
또 어떤 아이는 검은 망토를 걸친 송곳니 튀어나온 흡혈귀처럼 그렸다.
작두날에 무당의 목을 끼운 공포만화 같은 그림도 있었다.
나는 동화 속 마귀할멈처럼 무당의 얼굴을 그리고
엉덩이에 꼬리 아홉 개가 달린 여우처럼 몸을 그렸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고 낄낄거리며 포스터를 그렸다.
3
그 소녀는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소녀는 포스터를 그리지 않았다.
“넌 왜 그리지 않아!”
선생님은 그 소녀의 손바닥을 대나무 회초리로 때렸다.
그 소녀는 말없이 어깨만 들썩거렸다.
우리는 그 소녀의 눈물은 보지 못했다.
방과 후, 그 소녀가 울면서 길모퉁이 집으로 뛰어갈 때
뒷머리 끝 빨간 리본이 나비의 날개처럼 나풀거렸다.
담벼락 대나무 장대 끝 붉은 헝겊도 덩달아 바람에 펄럭거렸다.
4
다음 날 아침, 전교 조례에서 우수포스터 시상식이 있었다.
입상작은 무당을 없애는 부적처럼 학교 게시판에 붙었다.
그날 오후, 그 소녀의 눈물 같은 비가 내렸다.
입상작 포스터가 붙은 게시판 앞에서
나비 한 마리가 젖은 날개로 날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 소녀는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
한 달쯤 후, 그 소녀네는 마을을 떠났다.
그해 겨울, 그 소녀네 폐가 담벼락에 세워진
대나무 장대 끝 붉은 헝겊이 홀로 펄럭거리며
북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배웅하고 있었다.
5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고추잠자리의 날개 같은 반투명 유년의 기억
그 속에 그 소녀의 얼굴은 없다.
이름도 없다.
다만, 나비의 날개처럼 나풀거리던
그 소녀의 빨간 리본만 살아있다.
지금도 그 나비의 날개는
눈물 같은 비에 젖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