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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청안 에세이작가 Nov 07. 2019

갑과 을과 월급

나는 혹시 '불평을 위한 불평'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가?




   얼마 전 치과 진료로 굉장히 묘한 기분을 받았다. 치료 때문이 아니고 치과의 주인인 원장 선생님과 그 병원 상담 간호사의 다른 태도 때문이었다. 나는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토요일 오전에만 동네 치과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점점 더 통증이 심해지자 원장 선생님은 “아프면 전화를 하세요. 제가 퇴근 안 하고 야간진료를 봐드릴게요”라고 이야기했다. 정말 고마운 말이었다. 한 명의 환자를 위해 퇴근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것이니.

 

   그런데 실제로 치통이 심해졌고, 의사 선생님 말대로 퇴근 무렵 병원으로 전화를 하니 간호사가 퇴짜를 놓았다. “원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도 사실 기다리시는 건 무리예요.” 병원이 문을 닫지 않으면 간호사도 퇴근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퇴근시간을 연장시키는 내가 얼마나 밉고 못마땅했을까. 나는 원장 선생님의 말대로 병원에 전화를 했지만, 그의 뜻대로 야간진료를 받을 수는 없었다. 나를 둘러싼 이 두 사람의 태도는 왜 달랐을까?


   공중화장실을 청소해본 적이 있는가? 아마 학교 때 당번으로 선정되었어도 정말 하기 싫은 일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집 화장실 청소는? 꼭 청소를 하지 않더라도 휴지통이 넘친다거나 바닥이 더러웠다면 어떻게든 그 상태를 개선시켜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우리 집 화장실은 청소하면서, 공중화장실을 치우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 조금은 흔한 이야기. 바로 주인의식이다. 내 삶의 주인공은 당연히 '나'다. 하지만 사람이 모든 일에 애착을 가지고 내 일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기는 힘들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월급을 많이 받는 이유는 책임질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고, 회사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높은 직에 있는 사람일수록 회사에 큰일이 생기면 밤잠을 설치고 고민한다. 과거에 내가 모셨던 상사들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묘수를 고안하였고, 가장 먼저 출근하여 수척해진 얼굴로 실무자 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분들을 가까이서 뵙고 있을 때, 나는 왜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월급을 많이 받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주인의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한눈에 보기에도 흐리멍덩하다. 일은 그런대로 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그 일을 끝까지 쫓아가고자 하는 의지나 확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위에서도 그저 그런 일만 시키게 된다. 주인의식이 미비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이 일을 내가 왜 하지 않아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회사 생활을 한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잡담을 하는 공간은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회사가 아니라 '입시를 포기한 시끄러운 수험생이 모인 열반' 같다. 열반 아이들은 불평을 위한 불평을 한다. 회사에 속해 있는 열반 직장인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주인의식은 회사에 충성하기 위한 을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내가 진정한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갑의 마음가짐이다. 근로계약서에 '을'이라고 명시되어있을지언정 진짜 '을'이 되지 말자.


   얼마 전 들었던 강의 말미에서, 강사는 세종대왕께서 남긴 말을 읊어주었다. 이 말씀이 가슴 한편을 울렸다.  “하늘의 뜻을 사람이 돌이킬 수는 없으나,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다해서 하라.”



*** 이 글은 에세이 베스트셀러 ‘너의 사회생활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에 수록된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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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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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면증 오디오클립 '책 읽다가 스르륵'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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