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번째 생일

by 패미로얄

결혼 후 나의 생일은 늘 우울했다. 연애하는 동안 한 번도 큰 소리를 낸 적이 없던 신랑은 생활의 얄궂음, 각박함으로 날카로웠고 모든 일에 자비로움을 잃어갔다.

조금은 특별한 날,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적을 바란 적은 없었지만 단지 생일 하루만큼만은 걱정 없이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민생활은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어느 해는 보험 때문에 하루 종일 발을 동동 구르며 조바심을 내야 했고

어느 해는 은행 신용 때문에 남편과 말끝이 거칠어졌다.

또 어느 해에는 끊임없이 울어대는 딸아이 때문에 함께 펑펑 울었고

또 어느 해는 내 존재 자체가 재앙이 되어 싸움이 일었다.

생일은 축하해야 하는 날이 아니라 살아있기에, 또 내일을 살아나가야 하기에 꾸역꾸역 이겨내야 하는 피곤한 날이었다.


딸아이가 18살이 되고 집을 떠나던 날, 딸은 작은 편지뭉치를 나에게 건넸다.

'엄마의 생일 징크스가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어요. 이제는 엄마의 징크스가 깨지길 바랄께요. 오늘 하루만큼은 마음껏 행복하세요.'라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앞으로 2년 동안 열어볼 생일 편지와 내가 힘들거나 외로울 때 또 아이가 그리울 때 꺼내 읽으라는 편지들이 들어 있었다.

언젠가 생일날 아침 축하인사를 건네는 딸아이에게 "엄마는 다른 선물 필요 없어. 오늘만큼은 엄마의 생일 징크스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엄마 생일 때마다 꼭 안 좋은 일이 생기고 아빠랑 심하게 싸웠거든"이라고 흘리듯 이야기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보니 딸아이가 편지를 건넨 지 3년 동안 내 생일은 평안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남편과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우리가 그만큼 마음에 굳은살이 생기고 이민생활에 적응했기 때문이겠지만 왠지 오늘은 딸아이의 행운의 편지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보통 때 같으면 오전 11시까지 늘어지게 잠을 자는 것이 일상인 둘째와 셋째가 아침 일찍 일어나 나를 꼭 안아주었다.


'Happy Birthday!'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반갑지 않은 소식이지만

생일날 마음 상할일이 생길까 봐 더 이상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참 행복하다.

이제 생일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평온한 하루가 되었다.


오늘은 쉰 번째 나의 생일이다.

몸도 마음도 5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왔지만 오늘부터 나의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음껏 행복해하고

마음껏 즐거워할 것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