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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수 Sep 20. 2022

완벽주의와의 이별

마음 치유

닭이 소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사람들은 참 나빠. 자기네는 계획적으로 아이를 낳으면서 우리에게는 무조건 알을 많이 낳으라고 하잖아.” 

그러자 소가 말했다. “그까짓 건 아무것도 아냐. 수많은 인간들이 내 젖을 먹어도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녀석이 하나도 없잖아!”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상처가 있다. 

그 상처는 제때 아물지 않아 지속적인 고통을 준다. 

어린 시절 스스로 판단하고 보호할 능력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나이에 받은 상처는 잠재의식에 남아 성숙한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기억의 지배를 받는다. 

세상에서 주는 잘못된 기준은 자아에 대한 오류를 낳아 자기 자신을 위축시키고 무력화한다. 

많은 경우에는 자녀들에게 그 경험이 전수되어 상처가 대물림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깊은 상처를 받아 일상생활에 너무 불편한 영향을 미쳐서 의학적 치료를 받기도 한다. 

다양한 치유에 대한 지식은 널려있고 의학적인 전문가도 많은데 왜 현대인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가?   

   

완벽주의는 무엇을 잘해야된다는 압박을 받은 탓에 강박을 가져오고 결벽증과 우울증, 그리고 열등감을 낳는 기초가 된다. 

어려서 부모로부터 칭찬을 적절하게 받지 못하고 더 잘해야 된다는 압력을 받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칭찬에 인색하고 더 잘하려고 하지만, 현실의 벽과 끊임없이 싸우고 좌절을 느낀다. 그것이 사소한 것에도 영향을 미치면 결벽증이나 과도한 원칙을 생산한다.

외모, 학력, 특정 분야의 지능, 집안 배경, 소유물, 재산,   지위 등에 관한 사회적 기준은 부모로부터 시작하여 친구, 직장 등의 관계에서 왜곡되어 개인의 상처를 만든다. 그리고  여전히 그 가치관에 얽매이게 만들어 열등감에 의한 우울과 자기비하를 낳는다. 

인터넷, TV 같은 미디어에서 종종 마치 나를 비난이라도 하듯이 던지는 돌에 맞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더 깊게 만들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과거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세상의 기준과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완벽주의와 강박, 우울, 열등감, 자기비하 등의 아픈 마음은 꽁꽁 숨기고 자신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데에서 치유가 더디어진다. 

자신의 아픔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위로받는 자체에서 그 아픔은 많이 경감된다. 세상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서 나의 아픔의 원천을 알게 되고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 깊은 늪에서 나올 수 있는 단서를 찾은 것이다.


누구에게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고 위로를 받을 것인가?   

가족이나 친구, 혹은 의사와 같은 전문가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온전히 그 상처를 이해하고 위로해 주며 함께 치유를 위해서 발벗고 나서는 탁월한 사람은 누구인가? 나의 숨겨왔던 부끄럽고 떠올리기 싫은 과거를 잘 알고 이해하며 온전히 용서해 줄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의 세상을 보는 기준과 세상의 평가는 무엇을 근거로 하고 있는가? 70억 인구 중에 유일하고 독특하게 창조된 나를 누가 감히 비난하고 낮게 평가하는가? 고귀하고 순수하게 창조된 영혼을 누가 무너뜨리고 오염시키는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안달을 하면 할수록 나 자체에서 멀어지고 상처는 깊어진다. 

나는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굳이 인정을 받지 않더라도 이미 그 자체로 존귀한 존재이다. 

나는 자연적으로 갑자기 무(無)에서 (有)가 되고 아메바를 조상으로 두었지만 무언가를 해야만 동물이 아닌 사람으로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나를 스스로 보는 시각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기존의 존재론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자유가 온다. 내가 의존하고 의지하는 사람을 포함하는 대상들이 나를 떠나도 외롭거나 슬픔이 오래가지 않는 내성은 진정한 동반자가 있으면 가질 수 있다.      



누가 나의 진정한 동반자인가? 

내가 아무리 실패하고 어둠  속에 있더라도 나를 버리지 않고, 아무리 힘들어도 같이 고난을 넘을 수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 내가 찾으면 언제라도 달려오고 내 오장육부와 잠재의식까지도 속속히 알고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 내가 억울함에 소리쳐도 항상 받아주고 위로해 주는 존재는 누구인가? 내면 깊은 곳을 만지며 따뜻하게 안아주고 하늘같은 편안함으로 나를 맞아주는 존재는 누구인가?


오로지 그 존재게만 인정을 받으면 굳이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 실패와 실수를 내려놓고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결과보다는 내 마음의 중심을 보는 그 존재에게 하루를 맡기고 나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충실히 살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체를 사랑하는 그 존재에게 나를 맡기고 나는 비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배신당해도 나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 그 존재가 있다면, 그 상처는 곧 아물 것이다. 

그 존재는 내 상처를 동여매며 세상의 편견과 말초적 문화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나를 이끌 것이다. 

나는 자유하고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쁘게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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