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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수 Sep 24. 2022

자존심 자만심 자존감

낮춰야 올라간다.

 하루는 아들 병아리가 아빠 닭에게 물었다.

  병아리 : “아빠, 우리는 왜 벼슬이 있어요?”

  아빠닭 : “그건 적들에게 우리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서지!”

  병아리 : “그럼 주둥이는 왜 뾰족하고 날카롭죠?”

  아빠닭 : “그건 적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해 혼내주기 위해서지!”

  병아리 : “그럼 목소리는 왜 이렇게 커요?”

  아빠닭 : “그건 적들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지!”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병아리가 말했다.

  병아리 : “그런데, 아빠?”

  아빠닭 : “왜 그러니 아가야?”

  병아리 : “그런 힘을 가진 우리가 지금 닭장 안에서 뭐하는 거죠?”     



자존심(自尊心)은 사람을 의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말뜻 그대로 해석하면 굽힐 줄 모르는 고귀한 심성이지만 이기심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식이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협화음이 날 소지가 많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자아(自我)가 강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동기는 강하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것에서 나온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이타적인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      

  

자만심(自慢心)은 자존심이 내적 자아를 중심으로 하는 것에 비하여 외적으로 분출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객관적인 평가를 무시하고 스스로 자신을 자랑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자만심이 생기면 교만(驕慢)이 태동한다. 교만은 세상을 열등한 것과 월등한 것으로 구분하여 자신을 월등한 반열에 올려놓고 다른 대부분은 열등하다고 치부한다. 자신보다 월등하다고 판단이 들면 비난하여 깍아내리거나, 반대로 용의주도한 사람들은 필요 이상의 저자세를 보이며 기회를 엿본다. 

교만은 관계를 해친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드러나기에 사람들이 회피하여 소외되기 쉽다. 다른 이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곁에 있는 사람들로 채워져서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한다. 

자만심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주장이 월등하다고 믿기에 대립을 가져온다. 사람들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기에 상처를 주고 미움과 비판을 조장한다. 조직에 있는 이런 사람의 영향력은 인체에 점점 퍼지는 암과 같이 조직을 혼란시키고 분열시킨다.       


하루는 아주 거만한 양반이 고기를 사러 왔다. 멀리서 부터 그는 소리쳤다. “이놈, 돌쇠야, 고기 한 근만 썰어라” 이 말을 들은 돌쇠는 바보처럼 싱글싱글 웃으면서 고기를 썩뚝 썰어 종이에 둘둘 말아 내놓았다. 

바로 그때 다른 점잖은 양반이 고기를 사러 왔다. “이보게, 돌쇠네, 고기 한 근만 썰어 주게”하고 주문했다. 이에 돌쇠는 또 싱글싱글 웃으면서 고기를 썰어 잘 포장하여 내주었다. 

그런데 먼저 왔던 양반이 보니 자기의 고기보다 뒤에 온 양반의 고기가 두 배는 족히 되게 크고, 포장도 잘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따져 물었다. “이놈아 왜 고기의 크기를 다르게 썰었느냐?” 

그때 돌쇠가 대답한다. “예, 나으리, 하나는 돌쇠놈이 썰어서 그렇구요, 또 하나는 돌쇠네가 썰어서 그렇습니다.”     


자존감 = 열린 마음 + 가난한 마음 + 겸손


자존감(自尊感)은 열린 마음이다. 

항상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기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자존심이 아집(我執)이라면 자존감은 사랑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하기에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다른 사람의 잘못도 용서한다. 


자존감은 가난한 마음이다. 

약함을 인정하고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기에 성장한다. 자존감이 낮으면 자신을 열등하게 생각하고 사람들을 무서워한다. 누가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자신을 비판한다고 착각한다.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스스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힘들다.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의 출애굽기에 보면, 약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에서 해방되어 비옥한 가나안 땅에 막 입성하기 직전에 그곳을 지키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에 압도되었다. 상대방의 위용에 두려워 자신들을 메뚜기와 같이 여기며 자존감을 잃어버리고 앞으로 진군하지 못하고 후퇴하였다. 

자존감을 잃은 결과는 컸다. 그들은 정착을 못하고 40년간 광야에서 떠돌아야만 했다.     

 

성경에는 자존심과 자만심에 대해 많은 경고의 메시지를 준다. 겸손하지 못해서 넘어지고 깨지는 많은 스토리를 들려준다. 그리고 자존감이 충만한 영웅들의 이야기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30세에 세상을 구원하려는 과업의 시작부터 자존심과 자만심에 대한 유혹을 이겨야 했다. 

신(神)의 능력을 보여주라고 유혹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주겠다는 속삭임을 물리치고 자존감을 지켰다. 채찍에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조롱당하면서도 겸손을 잃지 않고 인류를 위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장 심한 고통을 주는 사형 틀인 십자가에서 점점 죽어가면서도 신이면 내려오라는 조롱을 극복하였다. 만약 예수님이 조금이라도 자존심과 자만심이 드러났다면 인류 구원 계획은 물 건너갔을 것이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수많은 전투에서 패배한 대부분의 원인은 겸손하지 않아서였다. 

겸손은 자존감의 핵심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약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절대자에게 의지할 수 있다. 절대자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은 실패할 수 없다. 내가 아닌 절대의 능력이 나를 받쳐주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행한 모든 행동과 전쟁은 승리를 가져왔다. 그러나 자존심과 자만심에 사로잡혀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평가한 모든 행동은 실패를 가져온 것을 볼 수 있다. 

  

겸손한 사람은 어디까지가 자신의 한계인지를 잘 알고 있기에 쉽게 절대자의 손을 잡는다. 

우리는 가끔 방송에서 자신의 성공을 신께 돌린다는 소감을 듣는다. 외적인 겸손뿐만 아니라 실제로 절대자에게 능력에 의지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수많은 사건은 겸손과 관련되어 있다. 

자존심과 자만심을 내려놓을 때, 겸손이 들어온다. 

겸손한 사람은 절대자를 인정하지만, 자신의 아집, 교만은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절대자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내가 한낱 불완전한 인간이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믿음을 얻을 수 있는 마음 바탕이다. 

성경에 보면 신은 자신의 처절한 희생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려는 계획을 완성했다. 

우리가 우리의 자존심, 자만심을 내려놓고 그 손을 잡을 때, 예기치 않은 기적이 일어난다. 그 기적을 통해 진리를 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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