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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수 Oct 07. 2022

돈을 대하는 자세

돈의 실체

기독교 종파인 감리교의 창립자 요한 웨슬레가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 이웃이 헐레벌떡 달려오면서 지금 집에 화재가 났으니 빨리 가보라고 말하였다. 요한 웨슬레가 집에 도착하자 불이 자신의 집을 완전히 덮었고 곧 전소되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이 맡기신 재산 중 하나가 방금 내 손에서 해방되었네요”라고 담담히 말했다.



돈은 매우 중요하다. 

돈이 있어야 물건을 사고 집을 얻으며 옷을 입을 수 있다.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하며 자동차를 굴릴 수 있다. 돈이 있어야 학교도 다니며 책도 살 수 있다. 

인간이 화폐를 만들어 교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돈은 필요의 충족 수단이고 부의 상징이 되었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돈을 투자해서 수익을 얻는 것이 화두가 되었다. 주식, 부동산, 스타트업, 그리고 요새는 비트코인에도 투자한다. 사업을 하기 위해 돈을 투자하기도 한다. 얼마가 있어야지 노후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고 하여 노후대책을 위해 돈을 모은다.


돈은 편리한 수단이다. 

돈으로 못하는 것이 없다. 때로는 사람의 마음도 돈으로 살 수 있다. 돈이 없으면 시집, 장가도 가기 힘들다는 사람들도 있다. 돈많은 사람들이 뉴스의 표적이 되고 그들의 동정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권력을 가진 사람도 그 힘을 이용해 돈을 모은다. 온갖 부조리에는 돈이 관계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잃었다고 목숨을 던진다. 어떤 사람은 돈 때문에 건강을 잃는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돈벼락을 맞자마자 배우자를 바꾼다.

  

돈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위에 적은 것이 돈에 관한 것인데, 무슨 소리인가? 돈의 실체를 말하는 것이다. 

돈은 수단이다. 

돈 위에 사람 없고 돈 밑에 사람 없다고 하는 말이 바로 그 의미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돈이 내 위에 있던 적이 많이 있다. 때로는 사람을 돈 밑에 깔아놓고 대하기도 한다.

  

나는 여러번 사업을 해서 실패를 경험했다. 

결혼 직전에 은행, 신용보증기금, 신용카드, 개인 등 다양한 곳으로부터 적지 않은 빚을 지고 매월 신용카드 돌려막기를 했다. 때로는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 때도 있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돈에 대한 처절한 교훈을 얻었다. 돈이 사람을 지배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을 처음으로 깊이 있게 접하고 가르침을 얻었다. 

돈에 대한 관점, 관리 방법, 사용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나를 바꾸었고 내가 재기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성경에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성경에는 또 신의 축복을 받아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이것은 성경의 모순이 아니라 무엇이 가치가 있냐는 것이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부자는 부(富)가 최우선 순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부자의 우선순위에서 부(富)는 한참 밑에 있다. 

부 위에 사람, 봉사, 사랑 등이 있다. 

진정한 부자는 돈을 중요한 수단으로 보지 목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돈을 잃어도 낙심하지 않고 곧 재기한다. 돈을 많이 벌어도 흥청망청 쓰지 않아 부를 잘 유지한다. 투자하는 데에 욕심이 과하지 않아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반면에 졸부는 돈으로 사람을 부리려고 한다. 

돈이 많으면 교만해지고 돈이 없어지면 극심한 우울증을 앓는다. 그러다가 투자하는 데에 과다한 욕심을 부려 큰돈을 잃는다. 우연히 대박을 터뜨린 것이 자기의 능력이라고 굳게 믿고 더이상 노력을 하지 않는다. 종업원들의 노동력을 쥐어짤 궁리를 한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날 때도 모두 놓고 가야한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성경에서는 돈에 관한 지혜와 금기, 진정한 축복을 받는 방법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본문들을 소개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온갖 악의 뿌리가 된다’.     

돈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열망하고 흠모하기까지 하다가 상처받고 넘어지고 악행을 저지르게 됨을 경고한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그 자체로는 필수적 수단이고 잘 사용하면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준다. 그러나 돈을 너무 사랑해서 돈때문에 가족이 무너지고 친구관계가 깨어지며 평생 쌓아온 인격이 일시에 무너진다. 돈때문에 감옥에 가는 사람들을 뉴스에서 거의 매일 접한다.     

  

‘달란트 비유’      

어느 날 주인이 종 3명에게 그들의 재능대로 5달란트(한 달란트는 현재 돈으로 약 20억 원 정도 되는 큰돈이다), 3달란트, 1달란트를 맡기고 먼 타국으로 떠났다가 되돌아 왔다.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받은 종 2명은 장사를 잘하여 원금의 두 배를 벌었고 주인으로부터 칭찬과 함께 더 많은 것을 맡을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1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돈을 땅에 묻고 원금이라도 건졌다고 자신 있게 말하였다. 그냥 돌려주기만 했더라면 덜 꾸중을 들었을 텐데, 돈을 땅에 묻은 이유까지 말하는 바람에 1달란트를 빼앗기고 그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한다. 

“주인이여. 당신은 마음이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는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는 주인이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모으지 않고 불로소득으로 부를 일구었다고 했고 자신도 동일하게 해서 원금이라도 유지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 것이다. 그 종이 뭘 잘 모르는 신참 종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겨우 1달란트만을 맡겨서 불만이 많았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예수가 후자에 대한 교훈을 준 것 같다. 

그 종은 자신을 과대평가했다. 주인은 분명히 그 재능과 능력에 따라서 분배를 했는데, 자신을 낮추어 대우했다고 생각하여 불만을 품고 다른 종들이 열심히 나가서 장사를 하는 것을 보고도 땅에 묻어놓고 띵가띵가 놀았다. 그 돈을 차라리 어디에 맡기기라도 했다면 이자라도 벌었을 텐데. 아마 주인이 돌아와서 결산을 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불만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결과는 컸다. 그나마 있던 1달란트도 뺏기고 안정된 일자리도 잃은 것이다. 그는 실업자로 길거리에서 방황하며 슬피 울면서 자기 자신을 올바로 보지 못하고 주인에게 대든 것을 후회할 것이다. 만일 늦게나마 각성을 했다면 열심히 능력과 인격을 갈고 닦아서 재취업을 하기를 다짐할 것이다.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과 단순 비교하면 현재 가진 것에 대한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얼마나 그것을 위해서 노력했는지를 생각하면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남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써도 더욱 부유해지는 자가 있고 지나치게 아껴도 여전히 가난한 자가 있다’.     

이 세상의 부에 대한 기본 관념은 절약이다. 

재산을 늘리려면 투자를 해야하고 투자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지만 절약은 리스크가 없다. 성경에도 검소한 삶과 절약에 대해 중요하게 말한다. 하지만 지나치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인색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그럼, 아낌없이 돈을 쓰는데 어떻게 더 부유해 지는가? 곧 가난해지고 쪽박을 차야지.

그 앞에 붙는 말이 ‘남을 위해’이다. 성경 본문에 그 이유가 나온다. ‘남을 풍족하게 하는 사람은 자신도 풍족하게 될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신도 윤택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혼자만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부(富)는 혼자서 일구지 못한다. 사람들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큰 부를 일군 사람들은 사람들의 협력과 도움을 잘 이끌어낸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게 대접하고 베푸는 사람은 언젠가 그것을 돌려받는다. 종업원에 대한 복지를 잘 해주는 회사의 직원들은 시키지 않아도 회사를 번영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이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수중(手中)의 인원으로 군대를 조직할 정도의 큰 부를 일구었다. 

개신교가 세운 나라인 미국의 큰 재산가들은 기부를 많이 한다. 근래 한국에서도 큰 기부를 하는 기업인, 자산가들을 볼 수 있다. 나는 그들의 그런 마인드가 큰 부를 일구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배려와 마음 씀씀이에 감동한 사람들의 도움이 몇 곱절로 돌아온 것이다. 역사상 최고의 부를 가졌던 록펠러,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 한국의 이랜드를 창업한 박성수 회장의 공통점은 성경의 원리로 큰 부를 일군 사람들이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사람과 재산 관계의 특성 중의 하나는 만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저 정도 가지면 만족할 수 있다고 하지만 막상 그렇게 되면 더 높은 욕망이 생긴다. 또다시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열등감을 느낀다. 

욕망이 커지고 새로운 욕구가 싹이 틀면서 새로운 결핍이 생긴다. 

그래서 성경에 이런 말이 등장한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세상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하면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많아서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에 처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부자가 죽으며 낙타 17마리를 유산으로 남겼다. 그는 이렇게 유언했다.

큰아들에게는 재산의 1/2을 주고, 둘째 아들에게는 1/3을, 그리고 셋째에게는 재산의 1/9을 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남긴 유산은 낙타 17마리가 전부였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1/2, 1/3 그리고 1/9로 나눌 것인지 형제들은 고민했다.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산수 실력을 활용하여 다음과 같은 최적의 결과를 내놓았다.  

첫째 아들, 17/2 = 8.5마리

둘째 아들, 17/3 = 5.6마리

셋째 아들, 17/9 = 1.9마리

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계산으로는 결국 낙타를 토막내어야 분배를 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던 형제들이 옆 동네에 현명하다고 소문난 노인을 찾아간다. 

그 형제들의 이야기를 듣자 노인은 자신의 낙타 한 마리를 그들에게 주면서 이제 분배를 하라고 했다. 

이제 18마리!. 과연 한 마리가 추가되자 거짓말같이 고민이 해결되어 각각 9마리, 6마리, 2마리를 갖게되어 오히려 그들이 처음에 계산했을 때보다 각자 더 많이 갖게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한 마리가 남는다. 그들은 크게 기뻐하며 남은 한 마리를 노인에게 돌려주었다.  

형제들이 처음에는 산수 실력보다는 자신들이 가질 것에만 눈이 어두어져서 현명한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노인은 자기 것을 줌에 의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욕심과 지나친 경쟁의식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막고 베품은 사람을 살리고 자신도 살린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에 쌓아두리라 ~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 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한 마디로 아무리 많은 부도 죽으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평생 먹고 살 재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재산을 쌓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운명이 다해서 오늘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    

성경에서 죽는 것은 신의 소관이다. 성경은 한 마리의 새가 나는 것도 신의 허락없이는 안된다고 했다. 

이 세상을 만든 분이 있다면 이 세상을 운행할 것이다. 그냥 만들어 놓고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만물 하나하나마다 모양을 정하고 행동범위를 정하며 의미를 부여해서 이 세상을 만들 정도면 모든 만물 하나하나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다 알 것이다. 특히, 모든 만물의 영장이고 자신과 동일하게 창조한 인간들의 모든 세세한 것을 관심있게 지켜보면서 때로는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보다 훨씬 우리를 더 잘 알고 있는 분은 우리의 운명의 주관자이다. 

나의 재물을 축적하는 데에 힘을 쓸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 ‘너의 재물을 하늘에 쌓아라.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처럼 과도히 아끼지 말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넉넉한 마음을 베푼다면 하늘에 갔을 때 그 공(功)을 받을 것이다. 

지상의 재물은 가져가지 못해도 하늘에 쌓은 재물은 나를 살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전체적인 성경의 돈에 관한 자세는 ‘내 것이 아니라 맡겨진 것’이라는 사고이다. 

나는 돈의 주인(Owner)이 아니라 수탁자(Consignee)이기에 돈을 맡긴 주인을 위해서 쓰고 투자하고, 그리고 다시 돌려주는 것이다. 이것을 청지기 정신(Stewardship)이라고 한다. 

청지기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쓰지 않고 맡긴 사람이 원하는 것을 위해 돈을 쓴다. 그래서 과소비를 하지 않고 필요한 일에 돈을 쓰고 남을 돕는 일에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한다. 

자기 것이 아니고 돌려 줄 돈이기에 기분이나 충동적으로 하지 않고 신중하게 투자한다. 돈이 많아지면 기뻐서 흥분하기보다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이 앞선다. 

그래서 청지기 정신을 가진 사람은 돈이 없어도 불만이 없고 돈이 많아져도 실수로 재산을 탕진하지 않는다. 요한 웨슬레의 놀라운 반응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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