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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dongkim Sep 24. 2022

한국 '자연', 중국 '자연'

한국과 중국, 같은 말 다른 뜻

한국 ‘자연’ :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


중국 ‘자연(自然)’  : 그 자체에 내재하는 작용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



한국에도 ‘자연스럽다’는 표현이 있다. 한국 사전에서 자연이란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라고 한다. 중국 사전에서는 ‘자연(自然)’이란 그 자체에 내재하는 작용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모든 상황이 자연스럽게 변화하기만을 기다릴 뿐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은 중국 고전 주역(周易)에 잘 나타나 있다. 세상은 과정의 연속에 불과하다고 한다. 세상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연속해서 변화하는데 사람은 이런 변화에 더불어 순응하며 흘러갈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국인은 현재의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기다리는 데 익숙하다. 


중국 처세술 책 <증광현문>에 나오는 글귀다. ‘황하 물도 맑아질 때가 있는데, 어찌 앞으로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하랴(黄河尚有澄清日,岂能人无得运时)’중국 황하는 이름 그대로 황토가 섞여서 색깔이 누렇다. 하지만 이렇게 누런색을 띤 황하 물도 언젠가는 맑아질 수 있기에 참고 기다리면 기회가 온다는 의미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긴 황하는 지금까지 7번이나 물길을 바꾸었다. 홍수로 범람하여 한 번 물길이 바뀔 때마다 황하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거나 심지어 물줄기 방향을 반대로 바꾸기도 한다.


한국인도 잘 알고 있는 <수호지>의 무대가 ‘양산박’이다. 약 천 년 전 송나라 시대 ‘양산’지역으로 황하가 흘렀는데, 황하 물이 범람하여 만들어진 호수가 바로 ‘양산박’이다. 


그 당시  ‘양산박’은 사방 둘레가 약 팔백 리(400km) (중국에서 ‘십 리’는 5km임)나 되는 엄청나게 큰 호수였다. 그래서 <수호지>에 나오는 협객 108명이 호수 지형을 이용해 이곳에 많은 산채를 짓고 송나라 관군에 대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이백 년 후 황하 물이 또 범람하여 ‘양산’지역으로 흐르던 물길이 바뀌자,  ‘양산박’ 호수도 작아지기 시작한다. 지금은 배를 타지 않고 걸어서 ‘양산박’에 갈 수 있다.


그래서 중국에는 황하가 삼십 년은 동쪽으로 다시 삼십 년은 서쪽으로 흐른다 ( 三十年河东,三十年河西)는 격언이 있다. 오랜 세월 중국에서 황하가 대륙을 옮겨 다니며 흘렀다는 의미다. 중국인은 현재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황하 물길처럼 자신의 운명도 언젠가는 변할 것으로 생각하며 기다린다.



3번 일어섰으나 3번 모두 넘어진 낙타샹즈


중국 산둥성 칭따오시는 한국 사람이 많이 살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이 많이 여행하는 도시다. 칭따오시에 있는 관광지 중 한국 사람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칭따오맥주로 유명한 맥주박물관이다. 


중국 칭따오에는 중국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 <낙타샹즈>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낙타샹즈박물관이 있다. <낙타샹즈>는 ‘라오셔’라는 작가가 쓴 장편소설이다. 작가 ‘라오셔’가 칭따오시에 살면서 소설 <낙타샹즈>를 썼다. 그래서 작가가 살았던 집을 <낙타샹즈박물관>으로 만들어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한국에서는 우직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소’라는 동물로 표현한다. 중국에서는 이런 사람을 동물 ‘낙타’에 비유한다. 한국 ‘소’나 중국 ‘낙타’가 근면한 사람을 부르는 말이기는 하지만, ‘소’나 ‘낙타’는 자신이 열심히 일한 대가를 챙기지 못하고, 사람에게 이용만 당한다. 또 죽어서는 자신의 몸을 인간에게 고기로 제공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소설 <낙타샹즈>에서 ‘낙타샹즈’는 주인공 이름이다. 그러니까 소설 제목에서 주인공이 성실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굴곡진 인생을 살다가 마지막에는 좋지 않게 되리라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작가 ‘라오셔’는 1936년 이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발표되고 나서 중국에서도 베스트 셀러 1위였지만, 1945년 미국에 번역 출판된 후 미국에서도 베스트 셀러 1위를 차지했다. 그러니까 중국을 무대로 중국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지만 세계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중국 언론사가 선정한 ‘20세기 중국 문학 베스트 100’에서 장편소설 1위에 올랐다. 또 중국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나온다.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루쉰’의 <아Q장전>소설이나 ‘위화’의 <인생> 소설은 중국 초중등학교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인에게는  ‘루쉰’의 <아Q장전>이나 ‘위화’의 <인생> 보다 ‘라오셔’의 <낙타샹즈> 소설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919년 한국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났고, 중국에서는 54운동이 일어났다. 중국에서는 54운동의 의의를 두 가지로 평가한다. 첫째는 중국에서 이천 년 동안 지속하였던 봉건체제(황제를 중심으로 그 주위의 관료들이 백성의 주인이었던 전제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국민이 주인이 되고자 한 반봉건주의 운동이고 둘째는 서양 나라의 침략을 받아 서양인의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반제국주의 운동이었다고 한다.


작가 ‘라오셔’는 20살에 54운동을 겪게 되는데, 이 운동의 영향으로 결국 일하던 직장(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을 관두고 소설가의 길로 나선다. 그 후 1936년 그의 대표작인 소설 <낙타샹즈>를 쓴다. <낙타샹즈>는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베이징에 사는 보통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그러니까 <낙타샹즈>은 1919년 54운동을 겪은 중국 사람들이 그 후에 어떻게 살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소설이다.


소설 <낙타샹즈>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한다.


주인공 낙타샹즈는 농촌 출신으로 젊은 나이에 베이징에 와서 인력거를 끌게 된다. 그의 꿈은 인력거 회사의 인력거가 아니라, 직접 자신의 인력거를 끄는 것이다. 한국 현재 상황으로 비유하면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가 개인택시를 사서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돈을 모아 인력거를 한 대 사야 한다. 그래서 낙타상자는 인력거를 사기 위해 먹는 것 입는 것을 아끼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간다.


중국 중학교 교과서에는 소설 <낙타샹즈>의 글 일부가 실려 있는 것이 아니라 소설 줄거리를 요약한 형식으로 나온다. 그래서 중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누구나 <낙타샹즈> 내용을 알고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대학교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소설 <낙타샹즈>의 줄거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학생 모두 <낙타샹즈> 내용을 삼기삼락(三起三落)으로 설명했다. 아마도 중국 국어 교과서 교사 수업지침서에 그렇게 교육하라고 나와 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삼기삼락(三起三落)이란 ‘세 번 일어섰으나 세 번 모두 넘어졌다’는 중국 사자성어다. 그러니까 소설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꿈을 세 번 이루었으나 결국은 세 번 모두 실패하게 된다는 의미다.


주인공은 회사 인력거를 끈 지 3년 만에, 돈을 모아 자신의 인력거를 사게 된다. 한국의 예를 들어 쉽게 표현하면 회사 택시를 몰다가 개인택시를 몰게 된 것이다. 주인공이 꿈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인력거를 끈 지 6개월 만에 전쟁이 일어나, 길거리에서 붙잡혀 인력거는 군인 운송용으로 강제로 빼앗기고 자신도 전쟁터에 끌려가 짐꾼이 된다. 한 번 일어섰으나 6개월 만에 넘어지게 된다.  


전쟁터에서 도망친 주인공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대학교 교수의 개인 인력거 전용 운전사로 취직하여 돈을 모은다. 인력거 한 대를 살 돈이 거의 모였을 때,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대학교 교수가 사상범으로 몰려 도망치는 일이 생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대학교 교수를 쫓던 경찰 형사가 교수를 잡지 못하자, 대신 교수 인력거 운전사였던 주인공을 찾아온다. 


그러면서 교수 대신 주인공을 잡아 감옥에 가두겠다며 감옥에 가기 싫으면 돈을 내라고 협박한다. 결국  주인공은 인력거를 사려고 모았던 돈을 모두 형사에게 주고 목숨을 구한다. 두 번째로 일어섰으나 또 넘어지게 된다.


그 후 주인공은 어떤 여자와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되는데, 그 여자가 주인공에게 돈을 주면서 인력거를 사서 돈을 벌어 오라고 한다. 아내의 돈으로 인력거를 사게 됐지만 어쨌든 주인공은 자신의 인력거를 사서 끌게 된다. 하지만 아내가 아이들 났다가 죽자, 아내의 장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인력거를 팔아야만 한다. 세 번째로 일어섰으나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낙타샹즈> 소설책을 직접 읽지 않고, 교과서에서만 <낙타샹즈> 요약본을 공부한 학생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소설에서는 이 후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만 역시 실패하고 인생을 폐인으로 살게 된다.


대학교 학생들에게 소설 <낙타샹즈>의 주제 즉 교훈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대학교 1, 2학년 학생들은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낙타샹즈>를 공부하면서 선생님에게 배웠는지, 주인공이 어리석어서 주변 사람에게 속아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됐다며, 사람은 열심히 공부해서 현명해져야 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조금 나이가 많은 대학교 3, 4학년은 다르게 말한다. 자신들이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렸고, 부귀를 누리는 건 하늘의 뜻에 달렸다(生死有命,富貴在天).’ 는 문자를 쓰면서 안 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안 된다고 답했다. 또 부모님이 이야기해주었다며 ‘세상 모든 일은 정해져 있어서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大家都是命,半點不由人).’는 말도 했다. 위의 두 글귀는 모두 중국 처세술 책 <증광현문>이라는 책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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