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1
또다시 주황색 기운. 어김없이 찔러오는 쨍한 햇빛과 여백 따윈 찾아볼 수 없는 내 왼쪽 가슴. 더 욱여넣으려 해봐도 더 이상 채워지지 않는 네 줄의 결기. 여유는 개나 줘버리자는 못난 패기가 한 해의 절반쯤에서 온몸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거지 같은 보상심리는 어쩌면 인간을 서서히 갉아먹는 허기 같은 것이 아닐까. 몸을 바짝 일으키기 위해 요구되는 큰 결심들, 이 무형의 조각들은 필시 내 안의 또 다른 뜨거움일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뜨거움들은 모두 악랄한 짐승의 입김, 그리고 몸속을 가득 채워나가는 병든 타인의 침방울. 한여름의 장마는 온통 불쾌함으로 얼룩지고, 거북한 세상의 침 냄새가 우리들의 코끝을 찌르고 저 멀리 달아난다. 결국엔 자기혐오로 귀결되는 레퍼토리는 이제 유흥성을 잃었고, 난 그저 따가운 햇빛을 따사로운 햇살로 읽는다.
구린 이빨 소리를 예쁘게 삼키는 방법, 그리고 일부분을 내 멋대로 흘리는 스킬 또한 현란함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 나태와 증오가 묻은 머리맡을 포기하는 선택 또한 응당 요구되는 삶의 이치. 그렇게 내 육체는 다시 역정의 신음을 뱉어낼 뿐이다.
조용한 밤중에 신발을 질질 끄는 자들은 이런 내게 아무런 고통을 선사하지 못한다. 거센 빗소리만이 두드릴 수 있는 내 고막과 부동의 감정들. 온종일 바닥에 머무는 그들의 비명과 한탄은 이젠 나란 놈에게도 퇴짜를 맞는다.
이른 아침마다 장맛비가 창문을 마구 때리고, 애꿎은 발목은 다시 시큼시큼 아려온다. 다행히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무언가 기분이 더럽다. 좀처럼 감정이 제어되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 네 줄의 결기이려나. 감정을 추스르는 데에 쓰일 기력이 충분치 못한 듯하다. 이젠 좀 지쳤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지도. 아침마다 튀어나오는 죽음 암시는 오후쯤 돼서야 자기혐오로 끝을 맺는다. 그런 말을 뱉어야만 하는 나 자신을 비로소 경멸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어느새 다정함을 잃은 빨래들. 옷가지들은 모두 색이 바랬고, 무엇보다 까칠함을 잔뜩 티 내는 탓에 여간 불편한 사이가 아니다. 우아하기는커녕 그저 지겨울 뿐인 고독의 춤사위. 이제는 두 귀를 막는 행위조차 귀찮고 따분하다.
뜨거움 속 따뜻함은 개뿔. 역겨움이 충만해진 자아는 뜨거움을 따가움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지겨운 아침을 거부할 때의 불쾌함과 얼추 맞먹는, 결국은 그저 얼른 해치워야 할 과업에 불과한 것들. 호가로운 마을과 혼자만의 파티 따위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단잠에 빠지는 것은 대체 어떤 기분일까. 여태껏 나는 그 단어의 존재 자체를 잘 알지 못했다. 몰배려의 늪에서 빠져드는 잠은 사실상 잠깐의 눈 감음일 것이다. ‘눈 감다’의 의미는 ‘목숨이 끊어지다’와 ‘남의 잘못을 알고도 모르는 체하다’로 나뉘는데, 물론 내 수면은 후자의 성격이 강하다. 한데 차라리 ‘잠깐의 끊어짐‘이 더 낫지 않을까. 아무래도 ‘척’은 감정 소모의 시간으로 전락하기 마련인데, 짐작건대 외딴 인간들의 대부분은 꿈에서만이라도 고독을 요한다.
그 아무도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으며, 그 어떤 이도 누런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시간. 그러나 아직도 내게 새벽은 새카만 봉지로 가려 놓은 배설물에 불과하다. 그 누가 다시금 투박한 짐승의 발소리를 낼지 아무도 모른다. 어두운 공간을 좋아하게 된 데에도 다 이유가 있던 게지. 여기서만큼은 누군가의 면상을 그리 선명히 보고 싶지 않은 거다.
이 안의 모든 얼룩과 곳곳에서 솟아나는 괴리들. 이곳의 모든 존재는 분명히 거짓 더미 속에서 거친 숨을 뱉는다. 처연하게 써내려 온 내 이야기가 떨치지 못한 그들의 냄새를 정의한다. 치가 떨리는 작년의 문장들이 예기치 못하게 몸 곳곳을 찌르는 중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찮은 주변의 몸짓에 쉽게 찔리지 않는다. 경멸과 분개로부터 시작해 인고의 단계를 힘겹게 거쳐온 인간은 이제야 비로소 ‘단념’에 들어섰다. 어쩌면 이것도 이전과 같은 ‘눈 감음‘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네 줄의 결기는 생각보다 굳세고 흔들림이 없어서 더 이상 하찮은 것들에 놀아나지 않는다. 그들의 입안에 찌들어 버린 냄새마저도 내 콧구멍은 완곡히 거부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눈알에는 분노가 들끓는다. 이건 우연히 거울을 봤을 때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차츰 내 몸은 헤엄치는 물고기의 형상을 닮아간다. 이제 더 이상 바보 같은 모서리 속에 갇힌 시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슬슬 옆자리의 누군가가 떠난다. 물론 내 친구는 아니고, 어떤 초췌하면서도 복에 겨운 듯 보이는 사람들. 그렇게 하나둘 이곳을 황급히 도망쳐 나간다. 그저 나보다 일찍 숨을 참고 있었던, 두 볼에 헛바람이 잔뜩 들어가 있던 이들. 그동안 머금고 있던 역겨움의 건더기들이 떠나가는 입에서 천천히 쏟아져 나온다. 그 토사물의 색깔은 그 어떤 녹물보다 진한 초록색이다.
요즘 들어 감정 기복이 심하다. 어쩌면 마음이 심히 조급한 것일지도, 아니면 또다시 우울을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희망이 가득 차 있지만 적잖은 괴로움이 이따금 나를 반기고, 가시지 않는 외로움이 밤마다 덩어리째 만져진다. 곳곳에 가시가 돋아 있는 휑한 늪 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지만, 그래도 슬며시 비치는 해방감의 견적이 더 큰 탓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이곳에서 어떤 존재일까. 어쩌면 누군가에겐 썩어 빠진 정신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인간, 혹은 그저 뜨거운 햇살을 주저 없이 반기는 사람. 정작 나 자신은 꽤 오랜 기간 이름 석 자를 통째로 잃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다시금 찾아온 여름이 한 인간을 위로한다. 가만 보니 뜨거운 햇살의 호소가 지금의 내 결기를 닮았다. 분명 초겨울의 누군가가 이곳은 여름 다음 겨울이라 했었지. 그럼 이번 여름만 버티면 겨울. 그 하얀 두 글자에 절망을 담기 전에, 얼른 녹색의 건더기들을 다 토해내야만 한다. 닿지 않는 무언가의 빛을 주워 먹는 삶은 이제 곧 막을 내리는 것이고, 청춘의 의미를 고뇌하는 짓마저도 이젠 소용이 없어질 것이다. 물론 아직은 한참 멀었거니와, 사실 당장 많이 지쳐 있는 탓에 앞이 썩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두려움이 내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했고, 네 줄의 결기는 더러운 장맛비에 쉽게 꺾이지 않는다. 하나도 둘도 아닌, 무려 네 겹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