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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송 Oct 30. 2022

할머니가 여기서 제일 세

가족 내 힘의 논리

요즘 아이 중심의 육아 트렌드에서도 권위가 있는 부모는 중요하게 여겨진다. 권위적인 부모와 권위 있는 부모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권위를 가진 부모가 되는 건 강조되고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친절하고 상냥한 부모인 동시에 권위를 가지기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 순간 아이보다는 우리 부부가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때가 많았다.

권위는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에서 세워지며, 부모가 직접 아이에게 가르치고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직장생활을 하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주양육자가 부모에 대한 권위를 인정해주고 가르쳐야 한다. 엄마 아빠와 지내는 시간보다 조부모나 이모님 등 주양육자와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아이는 주양육자에게 의존하고 주양육자의 사고에 영향을 받게 된다. 주양육자가 부모에게 보이는 태도는 부모의 권위를 세워줄 수도 깎아내릴 수도 있는 핵심 역할을 한다.

왜 이렇게 사설이 길었냐면 할머니가 봐주시는 우리 아이의 경우, 할머니의 생각이 아이에게 투영되어 나타날까 노심초사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생일을 맞아 시댁에서 다 같이 모였다. 남편이 초콜릿 케이크를 좋아하여 시누이가 초콜릿 케이크를 사 왔다.

아이는 케이크를 보더니 흥분했다. 돌부터 촛불 부는 것은 자주 해보던 아이라 케이크에 촛불을 꽂기만 하면 벌써 후후 부는 흉내부터 내는 아이였다. 아이에겐 달콤한 케이크보다 타오르는 촛불이 더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두 돌이 안되었을 때라 케이크를 많이 먹여보지 않았다. 더욱이 초콜릿 케이크는 말이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빠의 생일 축하합니다. 박수!!!”

아직 두 돌 전이라 말이 트이기 않았고 노래를 엄마 아빠가 셀프로 신나게 불러주었다.

초에 불을 3 정도는  켜고 끄면서 여러 번의 생일 축하 노래  케이크를 먹을 시간이 되었다.

아이에게 케이크를 먹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너도 먹어볼래? 이제 이런 거 먹어도 괜찮아”라면서 아이에게 권유하셨다.

아이는 엄마 아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한번 먹어봐도 괜찮을 것 같기도 했지만 우리의 표정을 보더니 머뭇거렸다. 엄마 아빠가 권하지 않는다는 걸 다 아는 듯했다.

남편이 “왜 그래? 굳이 먼저 먹겠다고도 안 했는데!”라고 어머니께 핀잔을 주었다.

어머니는 “언제까지 안 먹이면서 키우니? 이런 날에는 좀 먹이고 그래야지!”하며 고집을 부리셨다. 워낙 군것질을 좋아하는 시댁이라 아이에게 이것저것 먹여서 나는 이미 뿔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이전에 과자나 주스를 권할 때 나는 이미 “싫어요 어머니. 그건 정말 안돼요.”라고 강하게 여러 번 거절했었다.

아이가 고개를 저으면서 혼란스러워하자 그때 어머니가 갑자기 초콜릿 케이크를 한 조각 포크로 뜨시더니

“괜찮아! 먹고 싶으면 먹어도 돼. 여기서 할머니가 제일 세”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할. 머. 니. 가. 제. 일. 세. 다. 고.?

힘이 제일 센 것은 아닐 테고 지금 엄마 아빠보다 할머니 말이 더 세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인가.

나는 초콜릿 케이크를 먹이려는 어머니의 행동도 충격이었지만 할머니가 제일 세다고 아이에게 말하는 것이 더 충격이었다.

할머니가 부모보다 어른이라 공경하고 마땅히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할 대상은 맞지만 저것은 부모보다 더 위에 있으니 내 말이 더 우선이라는 걸 아이에게 강요하는 격이 아닌가.

단언컨대 부모보다 할머니가  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를 키워준 할머니일지언정 평생 아이를 책임지고 키울 사람은 부모이기에 아이에게 부모는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오히려  상황에서는 “할머니는 주고 싶지만 엄마 아빠가 아직은 안된대. 그럼 할머니도 엄마 아빠 말을 들어야 .”라고 부모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것이 보통 상식적인 할머니모습 아닌가.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내가 상식적인 수준을 너무 높이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특히나 엄마를 인정하지 않는 할머니에게 너무나  기대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결국 초콜릿 케이크를 한입 먹었고 생각했던 맛과 달랐는지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아직 초코의 진한 달콤함을 느끼기엔 너무 어렸나 보다. 난 아이가 초콜릿 케이크를 먹은 것보다 할머니가 더 세서 엄마의 말이 할머니 말에 묻혀도 된다고 생각할까 봐 그게 더 아찔하고 두려웠다.

 사건 이후 지금도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엄마 아빠가 너를 가장 사랑하고,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이 아이를 위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센” 말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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