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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정아 Jan 23. 2024

산을  좋아합니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생각해 보니 어렸을 적부터 산 근처에서 살아왔고, 어느 곳으로 이사를 가도 늘 가까운 곳에 산이 있었다. 사춘기 시절도 산에게 의지했다. 뒷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내 고민들을 나무와 새들과 이야기했다. 미친 X처럼 비칠까 봐 (솔직히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던 듯) 사람들이 보이면 입을 꾹 다물었다.

푸르름이 좋았고,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도 좋았다. 그냥 마음이 갔다. 언제나 나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고, 한결같이 내 편인 것만 같은 숲이 좋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의 계절마다 다르게 옷을 입는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느릿느릿 산책하듯 걷는 숲길이 좋았다. 남편과의 데이트도 등산이었고, 프러포즈도 한라산 꼭대기에서 받았을 정도로 나와 남편은 산을 좋아한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 맞다! 나는 산을 좋아하고 숲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수원으로 이사 와서도 한 동안 광교산 한 자락을 매일 같이 산책하듯 다녔다. 코로나가 한참일 때도 아이들과 도시락 싸갖고 다니며 아이들과 추억을 쌓았다.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억지로 끌고 간 그곳에서 만나는 풍경은 아이들의 환호성을 어김없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나무와 풀은 물론 곤충과 벌레, 나뭇가지 사이로 바쁘게 달리기 하는 청설모를 눈에서 놓칠까 정신없이 따라다니기 바빴다. 아카시아 혹은 이름 모를 나뭇잎을 한 장씩 뜯어가며 '사랑한다, 사랑 안 한다'를 즐겁게 외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어떻게 이런 행복한 기억을 까마득히 잊고 지낼 수 있었지?' 스스로가 의아했다.

한 겨울의 제주의 푸른 숲을 눈에 담으며 천천히 걷다 보니 튼튼한 두발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기억해 주었다. 역시 몸은 기억하나 보다.


작년 한 해 앞으로 내달리기만 했던 나의 시간에 잠시 속도를 줄이고 숨을 고르게 만들어 준 숲길 덕분에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퍽퍽하고 지쳐갔던 마음에 윤기가 흐르듯 생기가 돌았다. 산은 나에게 위로이고 에너지이다. 이 매서운 추위가 지나가면 다시 광교산을 올라야겠다.

기다려, 광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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