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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승 Aug 29. 2022

외로움은 인생에 있어서 기본값이다.

-변할 수 있다. ‘혼자, 나 편하게 사(죽으)니까 정말 행복하다’로.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더 절실히 느낀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혼자 사는 친구가 점점 많아진다. 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외롭다’라고 자주 말한다. 젊어서는 친구들과 ‘외롭다’라는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다. ‘외롭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도 각자 마음에 닿는 느낌은 차이가 있을 거다.      


‘인간은 혼자 살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더 절실히 느낀다.’ 혼자 살 수 없어서 외로움을 느낀다. 혼자 살아야 하기에 외로움을 느낀다. 인생에 있어서 삶과 외로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외로움을 원천적으로 없앨 수는 없다. 인간 존재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生老病死(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외로움도 피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묻나 마나다. 외로움도 받아들이는 거다.      


生(생)과 死(사)는 어찌할 수 없다고 해도, 老(로)와 病(병)은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한계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균형 있는 영양 섭취와 적당한 운동 등을 통해, 어는 정도 조절이 가능하다. 외로움도 각자 노력 여하에 따라서 ‘조절’이 가능하다는 거다. 나만 아는 비법(?)을 공개한다. 우선, 인간은 그 누구도 결국은 ‘혼자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거다. ‘혼자’라는 그 사실이 기본값이라는 거다. 그런 인정은 ‘나만 외롭다’라는 감정을 무뎌지게 한다.      


이후에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거다. 취미를 즐기는 거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좋아했던 일도 있을 거고, 또는 새롭게 찾아낸 취미도 있을 수 있다. 호기심을 갖고 살피면, 뜻하지 않게 자신에게 ‘딱’ 맞는 재미있는 게 발견될 수도 있다. 그걸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는 건 의미 없을 거다. 난, 독서를 좋아한다. 하루 평균 네다섯 시간 책과 신문 등을 읽는다. 독서는 思考(사고), 感情(감정), 認知(인지) 형성에 크게 영향을 준다. 지금의 날 이루고 있는 모든 것 중에서 ‘八割(팔할)’은 독서로부터 얻은 거다. 나 자신의 실체적 모습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독서를 등한히 하는 사람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권한다. 제발, 무엇이든지 읽어라! 제발! 혹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부터 글자를 익혀서라도, 독서 좀 하시라(그토록 간절하다). 독서 하는 당신에게 큰 변화가 있음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을 거다. 인지장애[癡呆(치매)]를 예방하고, 우울증을 치료하기도 한다. 독서 하는 순간, 세상이 달라진다.      


과장이 아니다. 당신이 어떤 사유로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독서를 즐기는 사람일 거다. 어떤 경지에 이르려면 독서를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정치가든, 기업가든, 종교인이든, 예술가든, 스포츠 선수든, 연예인이든---. 인류 역사에 존재하는 인간 삶 전체가 책을 통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살짝 엉뚱한 데로 빠졌다. 단지 독서의 유익함을 이야기하려던 게 아니다.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이겨내는 방법을 말하려던 거다. 좋아할 만한 일을 찾아 거기에 몰입하라는 거다. 외로움을 ‘잠시’라도 잊게 한다. 이후에 그 ‘잠시’를 늘려가면 된다. 독서를 취미라고 말했지만, 내게는 사실 생존에 가깝다.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난 벌써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또 다른 취미다. 2005년부터 나름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운영하던 입시학원을 그만두고부터다. 그전까지는 겨우 라면 끓이기나, 이것저것 다 넣고 밥 볶는 거 정도만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요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건, 당연지사다. 시작한 요리는 엉터리였지만 근데도 계속했다. 몇 번의 실패가 있었음은 말해 무엇하랴. 인터넷을 통해 배운 조리법 그대로 했다. 식구들이 ‘맛있다’라고 말을 하면, 진짠 줄 알고 믿는다. 그래야 기분이 좋다. 그냥, 그렇게 요리를 시작했다.      


그동안 잘한 선택을 내게 꼽으라고 한다면, ‘요리했다.’라는 걸 빠트릴 수 없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이다. 요리에 있어서 즐거움은 나중이다. 먼저는, 먹고사는 존재인 자기가, 스스로 자기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방편을 지녔다는 거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살기 위해서 요리했다면, 요리 후에는 당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복이 뒤따라 온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이다. 자신이 스스로 요리해서 ‘살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밑바탕인 든든한 행복감이다. 자신이 요리한 음식을 식구들이 함께 나누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얻는 행복감은 덤이다.      


마지막으로는 ‘걷기’다.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걷는다. 아니, 일부러 시간 내서 걷는다. 운동하지 않으면, 육체의 건강은 빠르게 약해진다. 건강을 잃고 나서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두 번의 큰 수술을 겪은 ‘경험자’로서 말한다. 아프면 무척 고생한다. 나이 들어서 아프면 더 고생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아파 누워서 호흡만 유지한다면, 인생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거칠게 말하면, 그런 상태라면 그냥 죽는 게 더 좋지 않겠는가. 자신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비롯한 자기와 연관된 사람 모두를 고생시키는 거다. 건강할 때 건강 유지에 힘쓸 일이다. 아팠을 때 외로움은 더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독서, 요리, 운동을 말했다. 꾸준히 한다.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시작한 게 아니다. 그냥, 한 거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들이 지금까지 나를 살게 했(한, 할 거)다.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면 지나친 말일 수 있다. 분명한 건 이들이 확실히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거다. 외로움을 잘 알지 못하게 한다. 내가 ‘외로움’에 관한 본질을 정확히 알지 못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로 나타난 지 오래됐다. 고독사의 이유도 여러 가지다. 고독사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으나, 단순하게 말하면 ‘혼자 살다가 혼자 죽는 거’라 할 수 있다. 극한 외로움 속에서 살다가, 그렇게 죽는 거다. 상상만 해도 두렵기까지 하다. 혼자 있을 때의 외로움이란! 누구는 죽는 거보다 외로움이 더 무섭다고 한다. 외로움은 그토록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권력 또는 돈 또는 명예, 심지어 가족 등이 있든지/없든지 인생은 결국 혼자다. 그러기에 혼자라는 그 자체만으로 외롭다고 하지 말길 바란다. 인생은 원래 혼자임을 인정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며 살라는 말이다.      


먹고 사는 부분과 육체 건강 그리고 정신 건강에 관계된 일이라면, 설사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조건 해야만 한다. 내게는 요리와 걷기 그리고 독서가 그것이었다. 무조건 해야만 하는 그것들이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는, 아니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아니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온 세계 사람 모두가 아는 비법 아닌 비법이기도 하다. 그런 비법을 깨닫고 실천한다면, 당신 스스로가 이렇게 변해갈 수도 있다. ‘혼자 사니까 외롭다’에서 ‘혼자, 나 편하게 사(죽으)니까 정말 행복하다’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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