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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승 Sep 20. 2022

 유언.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반드시 살아야 한다.

순조로운 인생 과정은 일반적으론 이렇다. 태어날 때 아기는 운다. 부모를 비롯한 가족은 아기가 태어난 걸 축하하면서 기뻐서 웃는다. 죽을 때 당사자는 소망을 믿기에 웃는다(?). 남은 가족은 안타까움에 슬퍼서 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가. 태어날 때 아기는 운다. 부모를 비롯한 가족은 아기의 탄생을 기뻐하지 못한다. 죽을 때 당사자는 두려움에 떨며 운다. 남은 가족은 짐을 덜었다는 기분으로 웃는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어떤 삶이길래 태어날 때부터---. 태어나는 거야 당사자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살아가야 하는 건 제대로 살아가야 할 거다. 그래야 죽을 때, 가족도 슬퍼서 울 거다. 사람답게 잘 살아야 할 하는 까닭이다.     


위 내용은 운영했던 학원에서 ‘사람답게 잘 살아야 한다.’라는 교훈으로 중고등학생들에게도 말했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아주 가까이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죽음’이란 말을 자기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말처럼 듣던 학생들이 나중에는 나름 숙연해 있다. 죽음이란 그만큼 모두에게 무겁게 느껴지는 화두이다.     

2022년 6월, 장로회신학대학원 주선애 교수가 별세했다(98세). 주선애 교수는 별세하기 일주일 전까지 건강하게 활동했다. 대한민국 개신교 부흥과 그리고 기독교 교육에 큰 역할을 했다.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도 수많은 제자가 신학교와 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제자 중 한 명인 (높은뜻 숭의교회) 김동호 목사가 弔辭(조사)를 했다. 근데 내용은 조사가 아니라 祝辭(축사)였다. 주선애 교수의 삶을 잘 알고 있는 김동호 목사는 주선애 교수의 별세가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복이라고 했다. 주선애 교수가 살아온 삶을 살폈을 때, 주선애 교수 별세는 (김동호 목사 자신이 부러워할 정도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이라는 거다. 자신이 죽었을 때, 누가 와서 조사가 아닌 축사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조사를 맺었다.      


2001년 11월, 엄마 길운월 권사가 별세했다(75세). 나와 엄마의 관계를 아는 형제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태승이는 엄마가 돌아가시면, 아마 엄마와 함께 있겠다고 땅 파고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런 엄마가 별세했다. 슬픔을 어찌 형언하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지금까지도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로 기억한다. 길병원에서 장례예식을 했다. 추모객들이 가장 많이 모인 날, 형들에게 제안했다. 여러 의미를 담아 ‘찬송’하자고. 그날 삼 형제가 추모객들 앞에서 함께 불렀던 찬송가다. 내가 선곡했다.     


[(1절) 참 즐거운 노래를 늘 높이 불러서, 이 세상 사는 동안 주 찬양하겠네. 축복의 산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나 건너갈 요단강 뚜렷이 보이네.      

(후렴) 참 아름다운 노래 늘 높이 부르세. 하늘의 소망 주신 주 찬양하여라. 참 아름다운 노래 다 함께 부르세. 하늘의 기쁨 주신 주 찬양하여라.     

(2절) 참 즐거운 노래를 늘 높이 불러서, 내 영혼 구원하신 주 찬양하겠네. 땅 위의 성도들이 부르는 노래에 저 하늘의 천사들 다 화답하겠네.     

(3절) 참 즐거운 노래를 늘 높이 불러서, 만 왕의 왕 되신 주 나 찬양하겠네. 거룩한 하늘 노래 들려올 그때에 참 그립던 주님을 반가이 대하리.]     


이 곡은 (조금 빠르게) 부르는 경쾌한 찬송이다. 큰 형은 멜로디를 그리고 성가대 지휘했던 (나와 작은 형)이 ‘화음’을 넣으면서, 즐겁게(?) 찬송했다. 천국의 소망이 있기에 곡은 즐겁게, 엄마를 이 땅에선 이제는 뵐 수 없다는 슬픔에 눈에선 눈물이---그렇게 (웃프게) 찬송을 마쳤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대저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 위에 광대하시며 주의 진실은 하늘에 미치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108편 1절~5절).’     


<유언>     

(남편, 아버지인)

나는 이미 죽었다. 그래서 죽는다.      

(혹, 고마운 것이 있었는데, 표현하지 못했다고)

미안해 말라.     

(더 이상의 것들을)

기대 말라.     

(부족한 것은 내 능력 밖이니)

이해하라.     

(모든 것은)

뜻대로 가노니.     

(이 세상에서도)

행복해라.     

다시 만나길.     

2021. 02. 28. 이태승.     


가족(아내, 아들, 딸)에게 위 내용처럼 유언/공개했다. 법적으로 유효한, 재산(유산) 건이 포함된 상세한 유언장은 아직 작성하지 않았다. 조만간 작성할 예정이다. 사랑의장기기증본부에 2005년과 2022년 각각 死後(사후) <안구와 장기기증> 그리고 <조직기증>을 서약/제출했다.      


며칠 전(2022년 7월 19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힌 <사전의료의향서>를 제출했다. 현재의 생각으론 <법적 유언장>만 작성하면 기본적으로 죽음을 대비한 ‘준비 서류’는 다 된 거 같다.      


지금 쓰고 있는 <유구유언>도 죽음을 대비한 서류 중 하나다.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면, 죽음은 한결 쉬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틈을 타서 부탁한다. 남은 가족은 내가 죽었을 때도 위에 적었던 ‘참 즐거운 노래를’ 찬송하라. 슬픈 곡은 절대 하지 말라.)     


위 유언을 공개한 다음 날(3월 1일), 우연히(?) 읽은 내용이다. 슬라보이 지제크 글이다. 칼럼 제목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그 일부를 발췌하여 그대로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파멸을 향하여/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독일 밴드 람슈타인) <달라이 라마> 중.   이는 프로이트가 ‘죽음 충동’이라고 부른 것의 가장 순수한 형태다. 이는 죽음 그 자체를 추구하는 충동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삶’을 고집하려는 반복 강박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아무 의미도 없는 말) 얼마나 오래 살든 결국에는 모두 죽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를 뻔하지 않은 말로 만드는 윤리적 차원이 있다. 우리는 죽기 전까지 그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에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반드시 살아야 한다.’”


요즘 주변에서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어떤 친구는 심지어 ‘죽고 싶다’라고 한다. 호르몬의 영향인가, 상황이 힘들어서 그런가, 하여튼 전체적인 분위기가 침울한 거 같다. 내가 우울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반드시 살아야 한다.’ 그 삶의 과정과 형태야 여하간, 반드시 살아야 한다.     


세상은 우리 삶을 고달프게 만들고, 자꾸만 우울의 상자에 가두려는 거 같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자유의 나’로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自決(자결-self determination)이다.      


삶도 죽음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것이 삶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끌고 가는’ 삶이다. 외부의 어떤 힘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죽음도 삶의 일부로, 삶도 죽음의 일부임을 깨닫고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다. 그게 召命(소명)이자 使命(사명)이다.      


광고다. 2022년 11월 5일(토) 16시, 제1회 <유구유언 還(환)-葬(장) 잔치>가 있다. 장소는 안성시 일죽 당촌길에서 열린다(상세 주소 생략). 환-장 잔치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길태승 還甲(환갑)과 살아생전 葬禮式(장례식) 그리고 <유구유언> 출판을 축하하는 잔치다. 예전엔 환갑잔치도 장례식도 모두 집에서 했다.     


예약받는다. 1인당 5만 원을 축하금으로 입금하면 된다. 입금 확인되면 출간된 명저 <유구유언> 2권을 앞서 받을 수 있다. 음식 준비 때문이다. 잔치는 1박 2일로 열린다. 실컷 즐기고 웬만하면 도중에 귀가하라. 더 놀면서 축하하고 싶으면 밤새 하면 된다. 보통의 장례식은 삼일 장 아닌가. 라이브 음악, 초대 가수 그리고 음식이 준비된다. 축하금에는 명저 2권(1권 정가: 15,000원) 대금과 음식값 그리고 숙박비까지 포함된 거다. 친한 사람들이니까 저렴하게 하는 거다.      


부의금 아니다. 축하금 더 내는 건 환영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비할 사람은 아예 사절이다. 돈 자랑, 자식 자랑할 사람도 사절이다. 자랑질하는 놈은 나 혼자로도 충분하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명저를 완독하고 참석해야 한다. (외우지는 않아도 된다. 독후감도 필수 사항이 아니다. 당신 흉보는 내용은 나올 수 있다).      


가족을 포함한 친인척 중에서도 환갑이 지난 사람은 절대 사절이다. 이길태승 아래로만 모이는 거다. 윗분 앞에서 ‘장례’ 운운하는 건 도리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참석하고 싶은데 만일 돈이 없다면, 고민하지 말고 와라. 그럼 된다. 대신 풀 뽑으면 된다. 앞마당에 풀 엄청나게 많다. 그런 게 주체적인 삶이다. 많이들 참석해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대화도 하며 노래도 하며 맘껏 즐기길 바란다. 그날 무대에 섰던 사람(팀) 중 으뜸상 10만 원, 버금상 5만 원, 버금딸림상 3만 원씩 제각각 준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에서 퀴즈도 낼 거다. 한 문제당 1만 원씩 준다. 10문제가 준비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놀 거다.)     


제2회 <유구유언 환-장 잔치>도 예정됐다. 두 번째 책이 출간되는 해에 있다. 두 번째부터는 환갑이 아니라, 살아생전 장례식이 또 돌아왔다는 의미의 ‘還(환)’이다. 제3회 환-장 출판잔치도 예정됐다. 세 번째 책이 출간되는 해에 있다. 제4회 환-장---. 진짜 換腸(환장)하겠다.      


이길태승 ‘죽기 전까지’ 환-장 잔치는 계속 열린다. 나 죽으면 오지 말라. 장례식도 없다. 부의금 받지도 않는다. 내가 죽은 후, 한 달쯤 후에 아들과 딸이 내 소식을 전할 거다. 모두 재밌게 살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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