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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승 Sep 21. 2022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우리 모두도 그 길을 간다. 그 누구 한 사람 예외 없이. 죽음으로.

2022년 6월 17일, 뉴스다. 대강의 내용이다. ‘응급실 의사가, 환자 보호자로부터 상해를 입었다. 다행히 의사는 중상을 피했다. 낫으로 의사 목 뒤쪽을 찢었다. 응급실에 심정지 상태로 도착한 아내가 사망하였다는 이유다. 사망자와 보호자 모두 노년이었다. 보호자는 구속되었다.’      


참---. 차마 말하기가 그렇다. 다른 글(김남주 ‘시’ 인용)에서 ‘낫’이 사용되었다는 문구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상세한 내용은 보도가 되질 않아서 알 수는 없다. 추론일 뿐이다. 노년의 남편이 환자인 노년의 아내를 병간호하는 와중에 발생한 일로 예상한다. 애꿎게 의사가 피해를 보았다.      


[“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그런 것 같아요---.” 2016년 9월,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 중년 남성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신고했다. 89살 남편 정수천씨가 86살 아내 이일자씨를 목 졸라 숨지게 한 뒤 자신은 수면제 30알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실패한 뒤 경찰에 체포되어 가며 혼잣말로 “임자, 잘됐어---. 이제 나도 죽어야겠어” 나지막이 읊조렸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노동, ‘간병살인’이었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우리 사회가 보듬어야 할 간병 가족들의 이야기>(유영규 외 지음)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죽음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이미 정해졌다. 사람마다 죽음에 이르는 기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좋아하기만 할 일도 아니다. 슬퍼서 당장 죽을 것처럼 생각하고 삶을 포기할 일도 아니다. 죽음을 생각한다면. ‘Memento Mori!’      


난, 1990년 5월에 결혼했다. 부모 네 분 모두 별세했다. 아버지(1921년생, 1995년 별세), 장모님(1932년생, 1998년 별세), 어머니(1926년생, 2001년 별세), 장인(1921년생, 2012년 별세)이 그분들이다. 네 분 모두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결국은 질병으로 별세했다. 별세하기 전의 과정도 유사했다. <아픔-입원-퇴원>, 이런 과정이 네다섯 차례 반복되었다. 남들 가족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특이한 예도 있겠지만.      


부모님이 아프면, 가족 모두가 괴롭다. 직장이든, 사업장이든, 가정이든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초긴장 상태다. 병간호에 대한 정신적/육체적 부담도 있지만, 그동안 부모님께 불효했다는 마음으로 더 괴롭다. 그래서 사람인가 보다.      


부모님과의 사별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가족 간의 불화도 그중 하나다. 유산 상속 등 재산에 관한 일도 있고, 형제간 우애 등에 관한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동안 쌓였던 해묵은 감정들이 폭발하는 때도 있다. 부모님이 별세해서 슬프지만, 이에 더해 가족 서로 간의 마음에 상처가 깊어지기도 한다.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 어느 정도 들어봤을 거다. 가톨릭의 ‘죽음 체험 避靜(피정)’이다. ‘棺(관)’에 들어가는 일종의 죽음 체험이다. 난,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체험해보고 싶다. 체험자들이 말하는 대강이다.


‘관에 들어가기 전, 마음이 찹찹하다. 관에 들어간다. 관 뚜껑이 덮인다. 살짝 뚜껑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암막이 뚜껑 위를 덮는다. 깜깜하다. 관 안으로 갖고 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뿐이다. 5분 정도 있다. 관 밖으로 나온다. 알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5분의 체험일 뿐인데, 그들의 마음이 전달된다. 죽음, 정말 알 수 없다. 실제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 있다면,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신이 이렇게 만들었으니, 또는 사람 자체가 이런 존재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엊그제(2022년 6월 15일), 연관 스님이 73세로 별세했다. 암 전이가 발견됐으나,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곡기도 끊고 마지막에는 물도 마시지 않았단다. 생명 평화운동에 앞장선 스님이었다. 연관 스님은 죽음을 이렇게 받아들인 거다. 그 마음을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다.      


부모님이 아프셔서, 직접 간호하거나 그리고 요양원에 모신 친구들이 있다. 간혹 그 친구들과 부모님에 관해 대화한다. 마음이 정말 아프다. 네 분의 부모님 별세 과정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하니 그 심정이 절절히 다가온다. 눈물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친구의 심정이란!      


친구 이야기다. 인지장애로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 뵈러 갔다. 뵈었더니, 이젠 아들을 따라 집에 가고 싶어 하신다. 어머니를 모실 수 없는 현실이다. 이후로 어머니 뵈러 가기가 더 힘들어졌다. 어머니의 말이 마음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슴을 헤집어 놓기 때문이다.      


[간병을 위해 직장도 그만둬야 할 판이지만, 하루하루 의료비 부담은 쌓여 가고, 경제적으로 현실을 감당할 능력은 점점 줄어든다. 여기서 오는 절망감과 경제적 압박은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 된다.     

25년간 ‘식물인간’ 아들을 돌보던 아버지가 집에 불을 지르고 함께 숨진 사건을 담당한 소방관은 “발견된 시신은 한 구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꼭 끌어안은 채 한 몸처럼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전성원)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다. 부모님 병간호에 마음만 갖고선 힘들다. 경제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병간호하는 가족이 절망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다. 사회적 보장이 절대적으로 더 강화돼야 할 이유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가 절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도 그 길을 간다. 그 누구 한 사람 예외 없이. 죽음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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