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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May 03. 2023

자빠뜨리는 것은 100% 자신 있어요.

단타 치기를 할 것이냐, 장투를 할 것이냐...

사법기관에서 반부패 업무를 하다 은퇴한 지인을 만났다. 두 사람 다 밥 생각이 없어서인지 인근 공원을 걸었다. 해가 스물스물 들어가며 호수에 빛을 잔뜩 뿌리고 간다. 그의 직업상 우리는 서로 일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까운 지인이라 하지만, 난 그가 마른 종이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와 대화를 하다 보면 마치 피의자가 된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언어의 뉘앙스에서 단서를 잡아내는 일을 오래 해서인지 난 그와 대화를 하는지 아니면 조서를 위한 문답을 하고 있는지 가끔은 자문해 볼 때가 있다. 날카롭고 건조하기만 그가 갑자기 말을 쑥 내뱉는다.     


은퇴하면 평생 일해왔던 지식과 경험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기도 했어요.”     

“......”     

“ 생각해보니 지난 세월 사람을 자빠뜨리는 일은 정말 100% 자신 있게 했었어요. 도울 길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죠.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니 맞아요. 저는 사람을 자빠뜨리는 일은 100% 자신 있어요. 지금도요. 그래서 사회에 제 지식을 쓰지 않기로 했어요….”     




어둠이 하늘에 번져가듯 내 마음에 잔잔히 번져간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렇게 길들여진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독고다이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일명 ‘조직’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의 공직생활에서 견뎌온 삶의 무게가, 한 인간으로서의 참회가 메아리처럼 가슴에 울리는 듯하다.      


그럼에도 언제나 자빠지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빠뜨리는 자는 자본과 권력으로 단타 치기에 능하지만 장투를 당하기는 어렵다. 약자가 가진 최대의 무기는 얻어맞으면서도 때를 기다리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이기게 되어있다. 다만 그 세월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이 얼마나 뼈에 사무치게 고통스러운지는 겪어본 자만이 알 것이다.   

  

자빠뜨리는 자와 자빠지는 자 사이엔 대부분 힘의 균형이 맞지 않고 의견충돌이 갈등의 골을 깊은 지옥처럼 만들어낸다. 힘 있는 자가 제거하고 싶은 자가 생각대로 자빠지지 않으면 대부분은 똘끼가 발현되어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고 견고한 악의 축’으로 변질하기도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갈등관리능력 또는 정치다. 정치는 참 좋은 것이다. 바른길을 가게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고 좋은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선조와 이순신 장군 생각에 깊이 빠져들었다.


선조는 왜 그리도 이순신 장군을 위협적으로 여겼을까. 전설처럼 진짜 이순신은 전쟁 후 사망했을까 아니면 봉화군 춘양면 갑옷골이라는 마을로 숨어들어와 15년이라는 시간을 더 살다 갔을까…. 충신 중의 충신인데 왜 이순신은 자신이 조정으로 돌아가면 죽임을 당하리라 생각했을까. 생각이 깊어졌다. 깊고 뜨거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세상만사가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인생 파도를 타며 일찌감치 배웠다. 이순신의 재능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고 조선 역사상 종6품에서 정2품까지 조선 역사상 초고속 승진을 시켜줬던 선조다. 그런데도 임진왜란 시 명으로 도망갔다가 전쟁이 끝나자 조선으로 돌아와 왕의 권위를 다지기 위해 살길을 모색했던 그는 국왕이라기보다... 그저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견고히 하기 위해 몸부림하는 그저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한 인간이었다.


 찌질하게 말이다. 이순신의 공을 원균의 공으로 넘기며 1등 공신을 추켜세우고 명나라 원병 덕분에 임진왜란에서 이겼다는 물타기 논리로 이순신을 부인했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충신 하나보다 더 중했다. 전쟁통에 나라를 버리고 내뺀 왕이니 충신 하나 버리는 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겠는가.     


조정의 정세를 모를 리 없는 이순신은 그런 선조와 세도가들의 속심을 알면서도 어떻게 조선을 위해 싸울 수 있었을까. 경외심이 인다. 후대는 선조를 쪼잔하고 비겁한 왕으로 평가를 한다. 나라가 백성이 어떻게 되든 오로지 자신의 영달이 최우선이었던 왕이니 말이다.     




선조와 같은 인물이 또하나 있다. 곧 6.25 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을 버리고 대전으로 내뺀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이승만이다. 서울-대구-대전-부산-목포-이리-대구 등 15일간 전국을 숨어다니며 그는 우리 대한민국을 무정부 상태로 만들었다. 우리 군이 서울을 수복하자 그는 인민군의 부역세력을 색출하고 숙청하여 자신의 권력 기반을 구축했다.      


선조나 이승만 대통령에게나 옳고 그름의 기준은 자신이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판단기준은 언제나 지속할 수 있는 권력인 듯 보인다. 칼자루를 쥔 자의 안전한 권좌. 그 권좌를 위협하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숙청과 제거의 대상이 된다. 이순신이 원균에게 정치를 잘했다면 어떠했을까? 이승만의 무정부계획을 반대하며 막아서는 정치인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아니 그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1항이다. 진실로 그러한가? 그러하기 위해 발전하는 과정이리라 나는 믿는다.  

   

생각해보면 선조나 이승만 전 대통령이나 이들의 선택은 지극히 나약해 대의를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권력을 쥔 자가 약자를 어떻게든 엮어서 자빠뜨리는 것 역시 자신의 권위를 견고히 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그래야 자신의 자리가 지속되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힘 있는 자라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 큰 힘을 가진 자에게 줄을 대어 권력을 구걸한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그도 참으로 나약하고 불쌍한 인간이다.  

    

평생을 남을 자빠뜨리는데 지식을 활용했다는 그의 고백도 약자를 자빠뜨리고 군림하려는 자도 모두가 연약한 인간의 단면이 아닌가 싶다. 인생이 고깃덩어리로 산다면 씨름선수나 스모선수가 가장 잘 살아야 하건만 인생은 고기 근수 값으로 사는 것이 아니니 우리는 법과 상식, 그리고 양심을 따르고 추구한다.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일까? 사랑이 매보다 강하다고 했다. 용서하는 자, 기다리는 자, 끝까지 가는 자가 진정 강한 자다.      


‘언제까지 맞고만 있어요?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데요?’

‘끝까지, 끝이 올 때까지!


라고 난 말해주고 싶다.

어둠이 가장 깊어야 동이 트니 고통 중에 얻을 수 있는 축복을 어서 캐내어야 한다.

자빠뜨리는 자들은 자빠져있는 자의 내면 깊이 잔잔히 올라오는 진정한 평안을 모를 것이다. 

씨앗도 겨울을 거쳐야 봄이 되면 발아가 잘 된다. 인생사 만사 이치가 그러하다.      

나는 강자도 약자도 아니다. 그러나 힘으로 누르는 비겁한 인생이기보다 기다려주고 그런 자빠뜨리기 선수 강자라도 용서하며 사랑하며 가기를 원하는 그러나 잘 되지 않는 평범한 인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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