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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Sep 12. 2023

"대추 보고 안 먹으면 늙니더"
이 말의 의미

각자 해석은 달라도 몸에 좋은 대추... 많이 먹고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영하로 떨어질 것 같은 날씨 속에서도 언제나 따사로운 햇살은 존재한다. 전쟁의 고통 중에도 잠간의 휴식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매서운 추위와 폭풍우가 몰아쳐도 365일 지속 되지는 않는다. 하루 24시간이 찰나의 순간인데도 하늘의 색도 구름의 모양도 기온도 계속 변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한국의 시베리아로 불리는 봉화 춘양의 낮 기온이 24도를 넘어설 만큼 볕이 강하고 더없이 투명하고 맑은 날이다. 집집마다 마당엔 호박고지, 고추, 땅콩, 호도 등이 널려 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요즘 낮엔 얼굴 보기가 도통 힘들다. 마지막 나락을 베어 말리고 방아를 찧고, 깨도 털어야 한다. 과수 농가들은 홍로와 양광 품종을 모두 출하하고 요즘 핫하다는 황금사과인 시나노골드 수확에 한창이다. 일손이 부족하니 동네 할매들 총출동이다. 

일손을 거들고 싶어 시나노골드 한 바구니를 따니 '아서라' 말린다. 사과 흠집나면 안 하니만 못하다며 그냥 옆에 앉아서 벌레먹은 사과나 깎아 먹고 놀다 가라고 하신다.

어르신들이 일하는 틈에서 먹고 노는 것은 참 불편한 일이지만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것이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받든다. 노란 컨테이너 상자에 앉아 시나노골드, 곧 '황금사과' 한 입에 하늘, 바람, 그리고 햇살을 모두 담아본다. 이 순간 시간이 모두 멈춘 것 같은 평온함이 밀려온다. 




가지가 찢어지도록 열린 대추
                     

땅만 바라보는 대추 꽃할매네 대추가 땅만 바라보다 결국 떨어졌다 ⓒ 다아름


유난히도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도톰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초록잎 뒤로 빨간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대추다. 다산의 상징답게 가지가 찢어지도록 열었다. 그러나 대추가 주인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듯 손길이 없다.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대추열매 수확은 아예 순위에도 없는 듯하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해도 다 끝내지 못할 농사일들이 태산이니 말이다. 어차피 때 되면 바닥으로 떨어질 것인데 그때 주워담고 따도 늦지는 않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마실 나온 어르신들이 토실토실하게 살이 여문 대추를 보고 하나씩 따 드신다.



대추 보고도 안먹으면 늙니더!



수확한 대추 때깔이 곱고 빛나는 먹음직스러운 대추다ⓒ 다아름



우리 꽃할매네 대추도 땅만 쳐보다본다. 봉화 춘양에 여행을 온 동기와 함께 대추 따기에 도전을 한다. 가시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대추는 그렇게 따는 종이 아닌 듯했다. 대추나무 키도 높고 말이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떨어진 대추를 줍던 중 장난기가 발동한 내 동기는 어디서 찾았는지 쇠고랑으로 대추가지를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한다. 


"후두둑..."


순간 하늘에서 대추비가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대추 융단폭격에 머리통이 아픈 것도 잠시, 바닥에 한 가득 떨어진 대추를 보니 행복하다. 이렇게 대추는 훑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또 같은 말씀을 하신다.


"대추 보고 안 먹으면 늙으니 하나 먹니더(먹어요)."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바닥에 대추알 천지인데 대추 몇 알 못 나눠 먹을 것도 없었다. "어머니, 이쁘고 좋은 거 따 드세요" 하며 바닥에 떨어진 대추 대신 나무에 달린 대추를 따 드린다. 





그럴듯한 속담 풀이

주워담은 대추 후두둑 떨어진 대추들을 주워담는다 ⓒ 다아름



동기에게 어르신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묻는다.


"너 '대추보고 안 먹으면 늙는다'는 말 들어본 적 있니?"


"그거?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지! 대추 한 알로 조선 시대엔 점심을 때웠다잖니!"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루 세 끼를 먹은 지가 얼마 안 되잖아. 100년도 안 되지. 그러니 조석이라고 해서 아침저녁만 먹었어. 특히 조선시대에는 한 끼에서 두 끼 정도 먹었고, 양반이라 해도 세 끼가 아닌 두 끼를 먹는데 지금처럼 배부르게 먹는 정도가 아니었지.


아침을 정식으로 먹고 점심은 간단히 새참 정도 먹거나 건너띄거나 하고 저녁은 보통 죽을 먹고 끝내. 그런데 아무리 체면이 중한 양반이라도 배가 고픈데 허기를 달래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 당이 풍부하고 영양가 높은 대추 한 알을 점심으로 먹으며 배고픔을 달랬던 거지. 양반도 허기가 지는데 종이나 일반 백성들은 오죽하겠니?"


"그래도 점심에 그저 대추 한 알로 허기가 채워지나...?"


"점심은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말이잖니. 즉, 먹었다는 마음의 표시만 할 만큼 아주 간략하게 먹는 시늉만 하는거지. 먹을 것이 없으니까."


그렇다. 점심은 불교에서 유래한 단어로 수도승들이 명상을 하다 허기가 지면 마음에 점을 찍듯 먹었던 음식이다. 조선시대 정사에 점심이 등장한 것은 태종 6년때이다. 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각 관청에서의 점심을 폐했다. 그렇다고 오늘같은 점심은 아니고 일종의 다과 정도였다. 


조선 순조때 실학자 이규경은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2월부터 8월까지 일곱달 동안만 점심을 먹고,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는 9월에서 이듬해 정월까지는 점심을 폐하고 조석을 먹었다고 했다.


정조 때 학자 이덕무의 <앙엽기>에도 한끼에 5홉씩 하루에 한되 조석을 먹는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왕이나 양반들이 지금같은 점심을 먹었고, 하급관리나 종들은 양반들이 물린 상에서 먹다 남은 음식으로 해결을 했고, 대부분은 아침에 먹다 남은 음식을 간단하게 먹는 정도로 해결을 했다.


그것도 노동을 하는 날에나 먹을 수 있는 특식이었다. 농한기에는 노동을 안 하니 그 새참마저도 먹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지금처럼 삼시세끼를 먹은 것이 100년도 안 되는 일이나 근대화, 산업화가 되면서 간식의 형태인 새참이 발달되어 오늘날의 점심이 된 것이다. 


"양반도 먹기 힘든 점심인데 마을 곳곳에 주렁주렁 열린 대추를 하나씩 따먹는 굶주린 백성들을 보고 혼낼 수는 없었겠지. 그러니 배 고파서 대추를 따먹는 백성들이 남의 물건을 탐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게 양반들이 만들어 낸 말이 아닐까?"





대추 한 알로 달랜 배고픔

먹음직스러운 대추 영양성분이 풍부하다는 대추, 때론 마음의 점을 찍는데 사용되었다는 대추. 할머니, 할아버지! 대추드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 다아름


꿈보다 해몽이라고 내 동기의 자신감 있는 설명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소위 대추 한 알에 담긴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던 것은 아닐까? 대추 보고 안 먹으면 늙는다. 그러니 꼭 먹어야 한다는 말인 거지. 그렇게 어려운 서민들의 사정을 먼저 알고 배려해 주었던 거지."


"물론 욕심이 족제비같은 사대부들은 대추 한 알조차도 아까워 나누려하지 않았겠지? 그러나 그런 말이라도 있으면 배고픈 노비나 백성들이 '대추 보고도 안 먹으면 늙는대요' 하며 한 알 따먹는 것을 매정하게 나무랄 수가 없었을 것 같아. 배고픔과 늙지 않고 오래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니까."


우리 마을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대추보고 안먹으면 늙니더'라는 말씀을 하시며 대추를 드신다. 


"대추가 달고 영양가가 많잖아. 차로 달여 먹으면 피부도 고와지고. 그래서 시집 오면 신랑들이 많이 먹였지. 나 시집 왔을 때는 시어마이, 시아바이 모시고 형제들 치다꺼리하느라 먹을 것이 많이 부족했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일 하고 낮에는 밭일하고 하루종일 궁뎅이 땅에 댈 시간이 없었다 아이가. 젊은 나이에 시집을 왔는데 폭삭 늙어버리니께... 


그러다 한번은 시어마이가 본 거야. 그러니 울 남편이' 대추보고도 안 먹으면 늙니더' 하는 거 아닌가. 그런 뒤로 울 시어마이 내가 대추 따먹고 해도 아무 말 안 한다. 당신 아들이 늙은 여자랑 사는 것보단 젊고 건강한 색시랑 사는 것이 좋잖아. 옛날에는 먹는 것도 다 시어마이 눈치봤지! 지금이야 먹을 게 넘쳐나지만서도."


듣고 있으시던 마을 어르신이 한 말씀 거드신다.



"대추는 정력제야. 혼사때 아들 딸 많이 낳으라고 대추도 주지만, 실제 대추는 부부사이를 좋게하거든. 남자가 대추를 마다하면 그 땐 밤에 볼일 없다는 거지! 그래서, 남자가 늙어도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꼭꼭 대추를 일부러 챙겨먹었지. 하하하! 그리고 마누라도 먹이면 좋아. 여자들이 나이가 들면..." 


허기도 달래고, 피부도 고와지고 고등어같이 파딱거리는 성격도 고래처럼 느긋하게 만들고, 또 힘도 좋게 하는 이 대추는 팔방미인이 맞다. 



덧붙이는 글 | 대추 한 알에도 어려운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콩 한 쪽도 나눠먹는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생각이 나네요. 함께할수록 기쁨이 커진다는 것은 참으로 진리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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