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숫대 털어 정리하고, 고추 말리고, 남은 채소 거두고... 춘양 할매
가을이면 꼭 가봐야 할 여행지, 꼭 먹어야 할 음식, 꼭 들어야 할 음악, 꼭 봐야 할 영화 등 '꼭'이라는 잇템들이 방송이나 SNS에 소개된다. 그렇다! 보면 가고 싶고, 먹고 싶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이런 계절에는 뭘 먹어야 좋나요?"
"먹긴 뭘 먹어! 특별한 게 있나? 자기가 평상시 좋아하는 것, 자주 먹는 것! 그것 맛있게 즐겁게 먹으면 되지 뭐가 있나?!"
무 썰듯이 툭 내뱉으신다. 여장부 영동철물 안주인의 명답이다. 그렇다. 평범 속에 비범함이 있고, 일상 속에 특별함이 있다. 어디를 가나 가을은 아름답고 먹을 것도 풍부하다. 뚝배기도 장맛도 좋은 '이왕이면 다홍치마'의 계절이다.
그러나 흙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우리 춘양 사람들은 나이가 젊으나 늙으나 누구나 같은 템포로 박자를 맞추어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볕이 좋을 때 이 일을 해내야만 한다.
때는 경로우대도 없다. 기다려주지 않으니 지체없이 쉼없이 가을을 지나 겨울을 가는 길목까지 한달음에 누구든지 달려가야 한다. 적어도 우리 춘양에서는 그렇다.
옥수수를 따낸 대를 바짝 잘라 잘 말리기 위해 서로 얼기설기 엮이게 만들어 움막으로 짓는다. 다 마르면 털어서 남은 옥수수를 따고 잎과 줄기는 잘게 썰어 옥수수와 함께 겨우내 소여물로 먹인다.
9월 25일. 아침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아침 기온은 7도이다. 시내를 중심으로 사방팔방이 일감으로 가득 차 있다. 마을 한 켠 넓다른 언덕배기 밭 자락에 움막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춘양에서의 세 번째 가을임에도 이 움막들은 무엇인지 왜 있는지 왜 만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과거에 본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세 번째 가을이 돼서야 움막이 어디에 쓰려고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옥수수밭에서 바싹 마른 옥수수를 수확하느라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뜨거운 햇살에 잘 마른 옥수숫대를 탈탈 털기만 해도 옥수수가 바닥에 '투두둑' 떨어진다. 잘 마른 옥수수 껍질이 쉽게 벗겨져 금세 개나리꽃처럼 샛노란 황금 옥수수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겨우내 소들이 먹을 양식이다.
옥수수를 어느 정도 수확하면 뿌리까지 바짝 자른 옥수숫대들을 얼기설기 엮어 움막으로 짓고, 한 열흘씩 바싹 말린 후에 덜 딴 옥수수들을 마저 털어내고 소여물로 창고에 쟁여둔다. 파란 하늘과 강렬한 색감의 대비를 이루는 브라운 바탕의 황금빛 옥수수가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하겠지만, 그 아름다움은 옥수수를 따서 껍질을 벗기는 수고와 땀방울이 없이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거저 얻어지는 것이 있으랴.
마을 한쪽에선 고추 말리는 냄새가 진동한다. 윙윙 돌아가는 건조기 소리도 겸해서 말이다. 빨간 고추는 수확을 서너 번 한다. 서리가 내리기 전 서둘러야 한다.
윗동네 박씨 할매는 아들 바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다 그렇다 하지만 박씨 할매는 특히나, 아들 바라기다. 여든이 넘으셨어도 잘 생긴 아들내미 피부 그을리며 농사짓는 게 안쓰럽다며 자정이 넘도록 불을 환히 밝혀 놓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고추를 솎아내신다.
다 손질한 고추가 건조기에 들어야 한 막이 끝난다. 밤새 그렇게 일하시고도 아침이 되면 밥숟가락 놓기가 바쁘게 아들이 새벽에 수확해 온 고추를 손질해서 툇마루에 널어놓고 또 솎아내기를 하신다.
그리고 물에 씻어 건조기에 마지막으로 넣으면 끝난다. '따고, 씻고, 말리고' 그렇게 한 사이클이 몇 날 며칠 이어진다. 고추 씨앗이며 꼭지며 불그스레한 물이 섞인 수고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흐른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다. 그래도 박씨 할매는 힘든 내색 한 번 안 하신다. 아들이 걱정할까 봐 그런지 힘드시지 않냐는 나의 인사에 하나도 힘 안 든다고 하신다. 아들내미는 할머니의 박카스다. 끊임없이 '다듬고 씻고 널고' 하는 일인데 어찌 고되지 않겠는가. 사랑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고추 말리기가 한창인 어느날 퇴근길에 박씨 할매는 내 손을 잡고 마당에 데려가 오이를 따가라 하신다. 올해는 이제 오이 구경은 못 한다면서 말이다. 노각 대여섯 개와 세월의 연륜이 느껴지는 푸른 오이 두 개를 얻었다. 노각을 바라보자니 마음이 뭉클해진다. 봄나절에 세상에 나와 장마에 땡볕에 그리고 10도 이상 확 떨어진 추위까지 쓴맛 단맛 다 보았을 것을 생각하니 말이다.
상갓집 눈물이 내 설움 반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다. 만물이든 인생이든 다 그와같이 그러하다. 연단을 받은 오이씨의 껍질은 매우 두껍고 과육도 매우 단단하다. 시절을 잘 견뎌준 우리 오이에게 칭찬과 위로를 건네본다.
춘양의 리듬을 느끼며 눈치코치로 지금 해야 할 일을 배운다. 나 역시 서너 평 텃밭에 아직 생존 중인 채소들을 수확한다. 풀인지 채소인지 구분도 안 갈 만큼 방치했지만 창조주 8할, 채소들의 몸부림 1.9할, 그리고 씨를 뿌린 0.1할 정도의 노력이 근사한 결실을 만들어냈다.
봄에 씨뿌려 거둔 바질 몇 포기, "보이짱"이라는 품종의 희한하게 맛있는 단호박 세 알, 땅콩과 대추 몇 알, 방울토마토 몇 개, 가지 대여섯개, 맨드라미 몇 포기, 그리고 시기를 놓쳐 늙어버린 애호박. 바구니에 한 가득이다. 맨드라미는 씨를 털어내고 차로 마실 수 있다.
참! 아름답다. 신비한 창조주의 조화다. 이 계절이 지나고 나면 다음 계절이 올 때까진 만날 수 없는 이들이겠지? 그저 한낱 먹거리라고도 하겠지만, 저 풀밭에서 생명력을 내뿜고 살아준 이 채소들의 '존재 자체'에 가슴이 뭉클해진 나는 작은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곧 끝나겠지 했던 코로나가 어느덧 3년을 넘어가면서 우리의 일상은 많이 바뀌었다. 예상치 못했던 재앙으로 경제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소상공인들도 있고 직장을 잃은 이들도 많다. 되돌아보면 꿈결 같은 시간이자 진실로 우리가 처음 겪어보는 세상이다. 일상의 소중함을 그 어느 때보다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가을 꼭 해야 할 일! 그것이 감사는 아닌가 한다. 한 여름철 천 원에 대여섯 개 했던 저 흔하디 흔한 연한 오이가 껍질이 뻐시다 못해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벌어진 노각이 될 때까지 견디며 인내해 왔던 그 시간들을 생각할 때, 화폐의 가치로만 오이를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귀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흔한 오이 같은 인생이 바로 우리 자신들 아니던가?
지구촌 인구가 약 75억이고 그중 대한민국 인구는 5천만이다. 모래알같이 작은 인생들이다. 그러나 각각의 인생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하고 귀한 삶인데 우리는 자신 스스로조차도 귀하게 여기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았다. 코로나든 경제의 고통이든 삶의 시련이든…. 예상할 수도 때론 감당할 수도 없었던 일들을 견뎌왔고 지내왔던 우리 자신들 아닌가! 지금도 존재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기적이며 감사다.
올 가을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애써 온 자신에게 칭찬과 격려를, 곁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사랑을 그리고 이 아름다운 계절과 가을을 창조하신 창조주에게 조용한 감사의 고백을 드려보면 어떨까. 세상에 하나뿐인 나, 내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어디서 힘을 얻고 용기를 얻으랴.
덧붙이는 글 | 감사의 일천번제를 드린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 되었습니다. 감사는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원하는 것을 얻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일이 풀리지 않아도 고통스러워도 생각해보면 감사할 것이 참 많습니다. 왜요? 지금 이 순간 존재하니까요.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듯 인생은 항상 겨울만 있지가 않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인생은 '배고픈 애벌레' 처럼 결국 나비가 되기 위한 과정인가 봅니다. 이 가을 자신과 가족, 친구, 그리고 이웃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함께 전해볼까요? 먼저는 이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