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1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허물인생(2)

내 머릿속 가장 깊은 곳의 기억

by 강도르 Mar 28. 2025

뇌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

브런치 글 이미지 1

 1990년 어느 겨울, 나는 경남의 작지 않은 섬에 있는  내 고향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어디인지 아는 그 병원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나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복한 상황에서 계획적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앞으로 적어 내려 갈 내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알 수 있겠지만, 크게 중요한 사실은 아니므로 지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다른 이야기라고는 했지만 사실 시간선에 의한 서술일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옛날은 언제일까?

질문에 대답을 해보려고 해도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시간선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또렷한 기억만을 정리해서 보자면, 큰 언덕 위에 위치한 5층짜리 아파트, 그리고 가로로 죽 늘어선 아파트 단지 사이로 똑같은 글자로 '은아'라고 써진 아파트였던 것은 확실하다.

그 아파트의 입구는 굉장히 넓은 광장처럼 되어 있었지만, 아파트 뒤쪽으로 돌아가면 음산한 기분이 들어 주춤하게 되는 공간이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빨랫줄들이 질서 있게 늘어서서 굉장히 평화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는 것 정도일까?

항상 "엄마!!"라고 크게 외치는 내 목소리를 따라 아파트 4층 높이에서 엄마의 얼굴이 나타나 손을 흔들어 주곤 했었는데, 그것이 곧 내 마음이 안정되는 방법이었을까, 음산한 그 아파트 뒤쪽을 탐험하면서 두려움을 이겨냈던 방법이었던 것 같다.

어딘지 모를 그 장소를 열심히 훑어 다니고,무당개구리 서식처를 습격하여 잡아왔던  

"활발한 아이였다"

단순하게 정의하면 내 어린 날은 특별하진 않았지만, 나를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움직였던 아이였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내 허물

 나의 어머니는 내 어린 날을 말하고자 할 때 절대로 빼먹지 않는 말이 있다.

"너무 힘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힘들었다고는 설명하시지 않았지만

"만신에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녀서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어머니도 수다스러운 분이셨기에, 남에게 나를 설명을 하건, 내 어린 시절을 나에게 설명하건

절대로 빠지지 않는 말씀이라서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이쯤 되면 또 이 말을 하겠지, 짐작을 할 정도니 긴 말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의 힘들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낀 감정은 좋지 않다.

사랑받고 자란 아들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말을 할 때의 표정과 기분, 그리고 나를 보는 눈은 그 상황과 말을 하는 대상에 따라 달랐지만

나를 키우느라 힘들었고, 그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어린 시절 사진은 항상 해맑은 사진으로 웃고 있었고, 밝은 표정으로 역동적인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투성이었다.


 어렸을 때 들었던 그 대사와는 달리 아마 나 또한. 사랑스러운 순간은 있었을 것이란 걸 유추할 수 있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나보다 3살이나 어린 여동생은 나를 두고 골목대장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온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신나게 뛰어놀고는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는 말을 하곤 했다.

온 동네 아이들 속에는 물론 여동생도 포함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어지럽게 놀았던 거 같은 기억이 든다.

복도식 아파트 전체를 내달리며 술래잡기를 하거나 숨바꼭질을 하였고,

어떤 때는 축구공을 뻥뻥 차대기도 했으며, 공사장 자재 정리를 위해 남겨둔

철골 구조물을 비밀 아지트처럼 쓰기도 했다.

 골목대장이라는 말은 꽤 들어맞는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공상과 상상

이렇게 활발한 하루를 보내는 어린아이였지만,

항상 책을 읽는 데는 게을리하지 않았던 거 같다.

책은 어린 시절 활동과 활동 사이의 공백 속에서 내 행동의 추진제가 되는 좋은 재료들이었고,

공상을 돕는 역할이었으니까.

 

 어린 나의 멘토는 '삼총사'에 나오는 달타냥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반복해서 읽었던 거치곤 지금 기억나는 것은

달타냥과 삼총사가 칼을 하늘에 모으고 있는 장면과 책의 표지 그리고 하이라이트였던

달타냥이 검술 실력을 뽐내며 악당을 물리치는 장면뿐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전형적인 남 자아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모험과 우정을 동경하는 마음은 아마 책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멋진 모자나  장난감 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뭔가 기다란 물체를 보면 집어 들고 싶고 휘두르고 싶었던 것은 달타냥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내게는 이동의 자유가 없었고, 한정된 내 방에서의 자유는 오로지 공상과 상상이었다.

달타냥이 내 어릴 적 모험과 동경의 대상이었다면,  우주는 내 상상의 벗이었다.  

내 방의 창문을 우주선의 캐노피 삼아 우주선을 조종하는 흉내를 내는 놀이는 심장을 뛰게 할 만큼 즐거운 상상이었다.

그리고 어디서 뭘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책상 위에서 독서대 같은 것으로 조종석을 이쁘게 꾸며 놓고, 우주에 관한 그림책을 통째로 펼쳐 놓고는 '이제 도착하는 곳은 화성입니다' 같은 소리를 홀로 지껄이고 있었던 거 같다.

 우주선을 타고 외계인들과 총싸움을 하는 상상은 스릴 그 자체였고, 입으로 알 수 없는 총성을 흉내 내는 것도 도파민이 분비되기엔 충분한 일이 아니었을까, 다짜고짜 찾아온 옆집 동생은 오자마자 곧바로 내 우주선의 조수석 파트너가 되어 내 공상과 상상에 동참되어야 했다.



일요일 연재
이전 01화 허물인생(1)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