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행복한 독수리 최강 한화 <10>

어둠 속에서 빛난 유일한 태양

by 김일주

2014시즌 개막을 앞둔 한화는 희망에 가득 찼다. 이용규와 정근우의 국가대표 테이블세터 합류와 외국인 타자 피에, 토종 거포 김태균과 최진행 등으로 구성된 타선은 지난 시즌보다 파워와 기동력 등 전술적으로 다양해지며 상대투수들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지난 시즌 나름 쏠쏠한 활약을 한 바티스타와 이브랜드의 재계약을 포기하면서까지 외국인 투수 2명을 모두 교체하는 등 한화는 투타 전력을 새롭게 다지며 2014시즌 반등의 기대감을 품게 했다. 그러나, 스타급 선수 몇 명이 가세했다고 해서 달라질 한화가 아니었다. 한화는 여전히 승수자판기로 전락하며 시즌초반부터 힘겨운 레이스를 이어나갔다. 개막전을 기분 좋게 승리했지만 매달 승리보다 많은 패배를 기록하며 시즌 초반부터 순위싸움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어둠 속을 해매이던 독수리 군단에도 태양이 비추었다. 2010년 데뷔 후 직전 시즌까지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던 한 젊은 투수가 5월 초부터 한화의 무너진 선발로테이션에 합류해 에이스로 도약했다. 그 주인공은 140Km대 후반의 강력한 직구를 던지는 1990년생 젊은 우완 파이어볼러 이태양이었다.


첫눈에 이태양에 반해버린 김응용


김응용 감독이 한화의 지휘봉을 잡고 처음 선수들을 지도한 2012년 서산 마무리캠프. 당시 한화 마무리캠프에는 김 감독을 흐뭇하게 하는 투수 한 명이 있었다. 김응용 감독은 그 투수만 보면 하루가 재밌고 행복했다. 기자들한테도 이 투수와의 친분을 드러내며 애정표현을 적극적으로 했었다. 투수 이태양이었다. 순천 효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0년 한화에 5라운드 (전체 36순위)로 입단한 이태양은 2012년 딱 1경기 불펜으로 나와 2이닝 3실점을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김응용 감독은 마무리캠프에서 이태양의 발전가능성을 보고 많은 관심을 보였다. 키 192cm 장신투수이기도 이태양은 김 감독이 선호하는 덩치 있고 키가 큰 튼튼한 체구를 지닌 선수였다. 김응용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다. 개성 강하고 야구 잘하는 슈퍼스타급 선수들도 그 앞에서는 쩔쩔 매고 얌전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태양은 김응용 감독과 같이 커피를 마시는 등 김 감독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다가가 감독의 질문에 잘 대답하고 조언을 듣는다. 김 감독도 그런 이태양이 대견스러웠는지 부임하자마자 그에게 적극적으로 기회를 주며 주축선수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김 감독도 이태양과 관련해서는 유독 부드러운 감정을 드러냈다. “어떤 걸 물어봐도 넉살좋게 대답한다.”며 이태양의 당당함에 칭찬을 드러냈고 “몸도 좋고 잘될 것 같다. 한번 친구로 사귀어 보려고 한다.”고 이태양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


정민철처럼 되고 싶은 청년 이태양


이태양은 한화 입단 후 ‘자신의 롤모델은 정민철 코치님’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정민철은 한화의 레전드이자 KBO 통산 최다승 2위(161승)에 올라있는 명투수 출신이다. 이태양은 정민철 코치처럼 훌륭한 투수가 되기 위해 신인시절 때부터 열심히 땀 흘리고 훈련하며 기량을 갈고 닦았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이태양은 2012년 1경기 불펜으로 나와 2이닝 3실점만 기록했고 2013년에도 승리 없이 3패 방어율 6.23을 기록하며 혹독한 프로생활을 경험하고 있었다. 입단 당시 키 192cm의 장신이었지만 체중은 89kg으로 비교적 마른 체형의 그는 프로 초창기에는 힘 있고 빠른 공을 던지지 못했다. 직구 구속이 130km 초중반밖에 안 나왔던 이태양은 1군에 정착하기까지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이태양은 김응용 감독 부임 후 혹독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100kg까지 몸무게를 늘렸다. 10kg이상 체중이 증가한 이태양은 구속도 상승시켰다. 140km후반의 빠른 직구를 던질 수 있게 된 이태양은 김응용 감독의 눈도장을 받으며 2013시즌 많은 등판 기회를 받게 됐고 시즌 후반기에는 퀄리티스타트도 기록하며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4년 개막을 앞두고 한차례 시련을 겪었다. 1군 스프링캠프에서 컨디션 난조와 실망스런 경기 내용을 보여 캠프 도중에 2군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태양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2군에서 정민철 코치의 집중 지도와 조언을 받으며 기량을 다시 향상시켰고, 체력훈련까지 독하게 하면서 투구기술과 몸의 체력을 향상시키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다시 1군에 합류한 이태양은 놀라운 모습들을 연일 보이며 한화의 새로운 에이스로 자리 잡게 된다.


2014시즌 프로야구에 태양이 뜨다


시즌 개막전 2군에서 컨디션을 끌어올린 뒤 4월초 1군에 합류한 이태양은 1번의 선발등판을 가졌지만 주로 불펜에서 공을 던졌다. 그러나 기대했던 두 명의 외국인 투수와 국내 투수들의 부진으로 이태양은 5월 9일부터 선발로테이션에 합류했다. 선발투수 이태양은 놀라운 활약을 보이며 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5월 9일 기아전에 선발 등판한 이태양은 7.1이닝동안 109개의 공을 던져 4피안타 1볼넷 6탈삼진 무실점의 강렬한 투구를 보였다. 5월 15일 삼성전에서도 6이닝 2실점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자신의 입지를 서서히 넓혀간 그는 6월 들어 데뷔 첫 승을 올리는 등 최고의 활약을 보이며 에이스로 불리게 된다. 6월 한 달간 총 5경기 3승 1패 35.2이닝 방어율 2.52를 기록한다. 특히 6월 달 등판한 5경기 모두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고 그중 4경기는 퀄리티스타트 플러스(7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선보였다.


6월 달 한화에서 선발승을 거둔 투수는 이태양 단 한 명뿐 이었고 이태양은 에이스 대접을 받게 됐다. 그리고 이태양은 놀라운 이닝 소화와 많은 투구 수를 기록하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강철 체력과 강한 정신력을 맘껏 보여줬다. 6월 27일 삼성을 상대로 8이닝 3실점 승리투수가 됐던 경기에서 이태양은 8회까지 공 117개를 던졌고 9회에 등판을 자처했다. 비록 최형우한테 홈런을 허용하며 완투에는 실패했지만 8이닝 동안 125개의 공을 던지고 내려갔다. 코칭스태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9회에도 등판을 했던 이태양은 당시 상황과 관련해 “난 투구수가 120개 넘어도 젊어서 그런지 힘이 떨어지지 않는다. 당시엔 더 던질 힘도, 자신도 있었다. 그리고 기존의 내 투구수를 뛰어 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정민철 코치님께서 만류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더 던지겠다고 말씀드린 것이다.”고 밝혔었다. 이태양은 6월 매경기마다 많은 투구수를 기록했다. 6월 1일 SK전 7이닝 113개, 13일 NC전 7이닝 117개, 21일 LG전 7이닝 120개, 그리고 6월달 마지막 등판 삼성전 8이닝 125개의 공을 던지며 뛰어난 체력을 발휘했다.

한편 KBO에 새로운 젊은 우완투수의 등장을 알린 이태양은 야구계 전체의 주목을 받게 된다. 소속팀 김응용 감독은 “이태양이 지금 선발투수 중에 가장 믿음직하지 않냐?” “그 정도로 길게 던져주니 우리 팀 에이스가 맞다”며 이태양을 에이스로 인정했다. 7월 초 양상문(당시 LG)감독은 “이태양은 이미 궤도에 오른 투수” “그 정도 구위라면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라며 높게 평가했다.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명장 김성근(당시 고양원더스)감독도 “모처럼 한국 프로야구에 좋은 오른손 투수가 나왔다.”며 이태양을 주목했다. 그리고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이태양이 합류할지의 여부가 야구계의 뜨거운 핫이슈로 자리 잡게 됐다. 그동안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양현종 등 좌완투수들이 국제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반면 우완투수는 윤석민 외에는 딱히 좋은 활약을 보인 투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이태양이라는 젊은 우완의 등장은 소속팀 한화뿐만 아닌 한국야구 전체에 큰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최고 구속 140km후반대의 직구와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 상대의 타이밍을 뺏는 커브, 원바운드로 절묘하게 떨어지는 포크볼 등 이태양은 가진 구종이 많았고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이닝이터 역할까지 충실히 소화하며 국가대표 우완투수의 꿈에 점점 다가서게 된다. 비록 이태양은 날씨가 무더운 7월 한 달 동안에는 5경기 23.1이닝 1승 3패 방어율 9.26의 부진한 성적으로 6월 달 좋았던 상승세가 한풀 꺾이며 잠시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8월에 4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행진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8월 27일까지 시즌 7승째를 기록하며 팀 내 다승 1위를 달렸고, 퀄리트스타트 12개를 기록하며 리그 토종 선발투수 중 퀄리티스타트 공동 2위(외국인 투수 포함 전체 공동6위)를 달렸다.


마침내 이태양은 2014년 8월 15일 아시안게임 최종엔트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국가대표가 꿈이었던 그는 국민들께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리며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그리고 9월에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중국과의 준결승전(2014년 9월 27일)에서 2대2 동점상황이던 5회 두 번째 투수로 나와 4이닝 1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되어 한국의 결승진출에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한국은 결승전까지 승리하며 금메달까지 따는 기쁨을 누렸다. 병역혜택까지 받은 이태양은 앞으로 공백기 없이 오랫동안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고 소속팀 한화에게도 이태양의 병역혜택은 큰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에이스로 도약한 이태양과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게 된 한화는 이태양의 존재가 팀의 미래를 더욱 밝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10월초 다시 팀에 복귀한 이태양은 3경기를 더 등판하고 2014시즌을 마무리했다. 총 30경기(26선발) 7승 10패 153이닝 방어율 5.29를 기록했다. 아쉽게도 7월달의 슬럼프(방어율 9.26)와 10월 3경기(방어율 12.71)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영향으로 방어율은 5점대로 높았고 승리도 7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냉정히 보면 강력한 1선발 에이스 기록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번시즌 부진한 몇 경기들을 제외하고는 이태양은 컨디션이 좋을 때 팀을 이끌어가는 에이스다운 모습을 선보였다. 6월 5경기 모두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고 특히 이 기간 7이닝 이상 던진 것이 4번이었을 만큼 이닝이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시즌 중 퀄리티스타트 14번을 기록한 이태양은 안정된 투구내용을 보이고도 타선의 부족한 득점지원과 불안한 불펜진 및 수비 실책 등으로 승리를 못 챙기는 경우가 많았다. 14번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한 경기에서 승리는 단 6승밖에 거두지 못했고 패하거나 노디시전으로 물러난 경우는 총 8번으로 많았다.


하위권 팀 에이스들이 주로 겪는 현상들을 이태양도 똑같이 겪었던 것이다. 과거 한화에서 소년가장 역할을 했던 류현진도 이런 현상들을 수차례 겪어봤다. 하지만 이태양은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경기에서도 이닝을 많이 끌고 가며 본인은 많은 승리를 챙기지 못해도 팀의 승리를 위해 앞장섰고 투구수 100개를 넘겨도 다음 회에 또 등판을 자처해 에이스로서의 책임감을 다하는 모습에서 ‘한화시절 류현진’이 연상되기도 했다. 시즌 마무리를 앞두고 김응용 감독은 이태양에 대해 “여기 와서 생긴 친구가 이태양이다. 태양이는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 어려움을 겪어봤기 때문에 앞으로 자기 관리만 잘하면 된다. 내년부터가 중요하다. 겨울에 너무 놀지 말고,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애정 어린 조언과 격려, 그리고 ‘친구’라는 단어까지 쓰며 이태양의 활약을 극찬했다. 그렇게 이태양은 독수리 군단의 2014년을 빛낸 태양이 되었다.


한화를 웃고 울린 행복한 피에


2014시즌 한화 타선의 히트상품은 외국인타자 펠릭스 피에였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외야수 피에는 중장거리 유형으로서 타격의 정확성, 기동력 그리고 뛰어난 외야 수비 실력을 선보였다. 특히 피에는 수비 때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를 종종 선보였고 승리를 향한 열정과 승부욕을 드러내며 최하위에 처진 한화의 침체된 분위기를 살리고자 노력했고 팬들은 열정이 넘치는 피에를 좋아했다. 하지만 열정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때로는 팀 분위기를 저해시키는 돌출 행동들을 하며 황당한 사건도 많이 연출했다.


4월 16일 기아와의 경기에서 피에는 팀 수비 중 엉뚱한 행동으로 김응용 감독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이날 한화의 선발투수 케일럽 클레이는 경기 초반 대량실점과 주자들을 계속 내보내며 4회 무사 1∙2루 위기 상황에 놓였다. 그 순간 경기가 잠깐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견수 피에가 갑자기 마운드로 다가오며 투수 클레이에게 무언가 말하다가 경고 조치를 받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피에는 “클레이가 흔들리고 있었다. 어디 아픈 것 아닌가 싶었다.”며 “누군가 해야 할 행동이었다. 급한 마음에 마운드까지 갔다. 나쁜 의도는 없었다.”며 동료 걱정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보통은 투수가 흔들릴 경우 투수코치나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가 상태를 살피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다. 하지만 피에는 상식 밖의 행동을 보이며 이날 야구장에 있던 양팀 선수단과 관중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김응용 감독은 “피에가 왕이고, 임금이다. 혼자 다 하려고 한다.”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5월7일 LG전에서는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대한 불만으로 배트와 배팅 장갑을 거칠게 내던지며 심판의 퇴장 조치를 받았고, 다음날 벌금 50만원과 엄중 경고를 받았다. 6월 15일 NC전에서는 1회부터 한화가 7실점으로 무너지자 중견수 수비를 보던 중 자신의 글러브를 내팽겨 쳤다. 피에는 동료들의 실수로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즉각 불만을 표출하는 일이 잦았다. 열정이 넘치는 피에는 “난 지는 게 너무 싫다. 승부욕이 강해 나도 모르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이날 자신의 행동에 대해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피에의 지나친 승부욕은 또다시 폭발하며 코치와의 언쟁으로까지 이어졌다. 6월 29일 삼성전에서 한화가 큰 점수차로 뒤진 7회 피에는 수비에서 실수를 하고 덕아웃에 들어왔다. 가뜩이나 실수로 심기가 불편한 피에는 자신의 실수를 지적한 강석천 코치와 언쟁을 펼치며 덕아웃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팀 분위기를 해친 피에는 경기 후 김응용 감독의 지시로 구단 버스로 이동하지 못하고 따로 이동했다. 그리고 피에는 강석천 코치와의 언쟁에 대해 서로 오해를 풀며 “내게 최고의 코치”라며 자신을 낮추기도 했다.


피에는 지나친 승부욕과 그로 인한 돌출행동으로 악동으로 불렸다. 그러나 사실 마음만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8월 13일 피에는 아버지가 루게릭병을 앓아 가정형편이 어려운 야구 꿈나무 소년의 집을 직접 방문해 장학금을 전했다. 소년에게 캐치볼 약속까지 한 피에는 8월 27일 그 약속을 지키며 최고의 추억을 선사했다. 또한 소년은 피에에게 편지를 전했고 피에는 이 편지를 받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피에 선수에게서 진심이 느껴졌다.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 고마움을 전했고, 피에도 “나도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이다.”라며 감사함을 드러냈다. 야구장 밖 피에의 따뜻하고 순수한 모습을 나타낸 사건이었다. 이 외에도 피에는 장난기 넘치는 행동으로 팀 동료들을 웃게 만들었다. 어느 날 경기를 앞두고 갑자기 감독석에 앉아 김응용 감독의 동작을 흉내 내 덕아웃에 큰 웃음을 선사한 적도 있었다. 감독이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 피에는 김 감독의 의자에 앉아 인터뷰를 하는 등 국내선수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피에는 김응용 감독을 흉내 내는 행동을 여러 차례 선보이며 4차원다운 개성을 뽐냈다. 피에는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다. 친한 사람들과 좋은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다.”라며 덕아웃의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좌충우돌한 행동으로 동료와 팬들을 웃게 하고 때로는 지나친 승부욕으로 팀 분위기를 해치며 동료들과 어색한 시간도 보냈고, 야구장 밖 선행으로 한 소년에게 기부금을 전달하며 캐치볼을 같이 하는 따뜻하고 순수한 모습을 보이는 등 한화팬들에게 진한 추억을 남긴 피에는 2014시즌 한화의 최고타자였다. 피에는 119경기 타율 0.326 145안타 17홈런 92타점 9도루 출루율 0.373 장타율 0.524 OPS 0.897 득점권 타율0.315의 화려한 기록들을 남겼고 중견수로서 뛰어난 수비까지 선보였다. 팀원들도 피에에 대한 좋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한화 외국인 통역은 시즌 중 “경기 때 보이는 모습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가까이서 보면 정말 착하고 책임감이 큰 선수”라고 돌출행동을 감싸며 피에의 인간성 있는 모습을 칭찬했다. 또한 통역은 “솔직히 피에가 정말 귀엽다. 마치 내 아들 같을 때도 있다. 나중에 결혼하면 그런 아들을 낳고 싶을 정도”라며 피에를 가족처럼 아끼는 모습도 드러냈다. 한화 주장 고동진은 “피에처럼 열정적인 외국인 선수는 처음 본다. 오히려 그런 마음이 고맙다.”며 경기 중 글러브를 내팽개치며 팀분위기를 어수선하게 했던 피에를 격려하기도 했다. 또한 피에의 열정 넘치는 행동에 대해서도 “우리 선수단은 피에의 행동으로 화나지 않았다. 피에를 잘 알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에는 굉장히 이기고 싶어 하고 도미니카 특유의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보통 용병들은 몸이 좋지 않으면 아프다고 경기를 쉬려 하는데 피에는 참고 뛴다.”며 피에가 팀을 생각하는 선수라고 강조했다. 팀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열정이 넘쳤고 늘 승리하기를 원하는 피에였다.


삼미를 뛰어넘은 역대 최약체 한화 마운드


한화가 2014시즌도 최하위(49승 2무 77패 승률 0.389)를 한 가장 큰 이유는 허약한 투수진이다. 선발(6.40)과 구원(6.29) 모두 방어율 최하위(6.35)를 기록하며 2009년부터 7년 연속 방어율 최하위를 이어갔다. 거기에 또 하나의 굴욕적인 기록을 남겼다. 프로 원년(1982년) 삼미가 기록했던 역대 최악의 팀 방어율(6.23)을 뛰어넘는 불명예를 새롭게 작성했다.


당시 한화투수진의 문제점을 분석해보면 몇 년간 팀에 입단한 대형 선발 유망주 투수들의 성장이 지지부진하며 선발 한축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이들은 매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확실한 자신의 보직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운 시간들을 보냈다. 불펜진에서는 베테랑 좌완 박정진과 우완 송창식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불펜진이 두텁지 못한 팀 사정상 박정진과 송창식은 마무리, 셋업맨, 추격조, 롱릴리프 등 다양한 역할을 지속적으로 소화했다. 이 둘은 다른 팀 불펜 필승조들 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잦은 등판과 투구는 부상우려, 혹사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시즌이 거듭될수록 많은 피로가 쌓이며 결국 부상으로 좋았던 구위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불펜진에 이 둘을 대체할 투수가 부족했고, 한화는 접전상황마다 이들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점점 구위가 떨어지고 어떻게든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불펜진의 버팀목 역할을 하려 했지만 체력 저하로 힘겨운 모습을 연출했다.

한화 마운드의 문제점을 다시 정리하자면, 류현진이 MLB로 떠난 이후 외국인과 국내 투수들의 동반 부진 및 한 경기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해 줄 선발투수들의 부족. 한정된 불펜 자원과 베테랑 투수들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인한 체력적 한계와 부상이 왔다. 한화는 선발과 불펜 모두 초토화가 되었고 2014시즌까지 7년 연속 방어율 최하위를 기록하는 동시에 안타깝게도 삼미를 뛰어넘는 역대 최악의 방어율이란 불명예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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