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행복한 독수리 최강 한화 <11>

2년 연속 꼴찌팀 감독 김응용의 초라한 퇴장

by 김일주

전년 최하위의 부진을 씻고 순위 상승을 다짐한 한화. 그러나 또다시 최하위. 특히, 김응용 감독은 지난해 사상 최초로 최하위를 기록한 데 이어 2년 연속 최하위를 경험하며 화려한 경력에 흠집을 제대로 냈다.


명장 김응용 실패를 경험하다


한국시리즈 10번 우승에 빛나는 명장 김응용 감독은 자신의 손으로 만년 최하위팀 한화의 암흑기를 끝내기 위해 감독으로 부임했다. 한동안 현장을 떠났다가 9년 만에 깜짝 복귀를 하자 야구계는 술렁였고 해태와 삼성을 거치며 오직 승리와 우승밖에 몰랐던 김응용 감독이 과연 최하위 팀 한화를 부활시킬 수 있을지 야구계는 큰 관심을 가졌다. 팀성적과 리빌딩의 임무를 맡은 김응용 감독은 최하위 한화의 반등을 자신했다. 부임하자마자 에이스 류현진의 MLB 진출을 쿨하게 허락했고 박찬호의 은퇴 등 주전 선수들의 이탈이 있었지만 김응용 감독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고 자신의 지도력이 한화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한화는 김응용 감독이 맡은 팀 중에서 전력이 최약체였다. 류현진이 떠난 후 2년 동안 10승 투수가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고, 각종 불명예 기록들을 KBO 역사에 새로 새겼다. 2013시즌 충격의 개막 13연패(KBO 역대 개막 최다 연패)를 당하며 일찌감치 제대로 된 순위싸움조차 해보지 못한 한화는 42승 1무 85패(승률0.331)로 꼴찌를 기록하며 9개 구단 체제로 치러진 프로야구에서 최초로 9위 팀이 되었고 구단 창단 최악의 승률까지 작성했다. 김응용 감독은 감독 생활 후 처음으로 최하위를 경험했다. 최하위의 굴욕을 경험한 김 감독은 구단에 FA 선수를 잡아달라고 요청했고 한화는 정근우와 이용규를 영입해 타선을 보강했다. 투수진들도 지난해보다 성적향상을 기대하며 반등을 노렸지만 또다시 최하위(49승 2무 77패 승률 0.389)를 기록했다. 9개 구단 체제로 치러진 마지막 정규리그에서 또다시 9위의 불명예를 쓴 것이다. 다음 해인 2015시즌부터 신생팀 KT위즈의 1군 참가로 프로야구는 10개 구단 체제로 전환한다. 한편 2년 연속 9위 팀 감독이 된 김응용 감독의 자존심은 제대로 무너졌고 화려한 경력에 큰 오점을 남겼다. 명장으로 평가받던 김응용 감독의 지도력에도 의문부호가 붙었고 팬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난도 받았다.


화려했던 코끼리의 시대는 끝


한편 한화는 2011년(6위)을 제외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최하위에 머물렀다. 2012년 승률 0.408(53승 3무 77패)를 기록한 후 두 시즌 연속 3할대 승률(0.331, 0.389)을 기록하며 퇴보한 모습을 보였다. 에이스 류현진의 공백이 가장 컸고 젊은 선발들의 더딘 성장, 허약한 불펜진, 투수진과 타선의 엇박자로 많은 패배를 기록하며 지독한 암흑기 생활을 계속 이어가게 됐다. 성적 부진에 김응용 감독은 마음고생이 심했다. 특히 2013년 개막 13연패에서 탈출해 시즌 첫 승을 올린 날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9년간의 공백을 깨고 다시 현장에 복귀해 화려한 감독 생활을 이어나가기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김응용 감독의 지도력은 현대 야구의 시대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선수 기용,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 승부처 상황 시 대처 능력 등에서 타 팀 감독들과 비교해 부족한 모습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9년간의 긴 공백기를 무시 할 수 없었다. 또한 김응용 감독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대표되는 리더십도 한화선수들한테는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물론 나이 들며 예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고 부임 초 캠프에서 젊은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어울리는 등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은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경험과 노련미가 부족한 어린 선수가 대다수인 한화 선수들에게 강력한 리더십으로 대표되는 고령의 김응용 감독이 부담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한편 김응용 감독은 비록 2년 동안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젊은 선수들에게 과감히 기회를 제공하며 한화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대표적으로 이태양을 토종 에이스로 성장시켜 국가대표 투수까지 되게 만들었고, 송창현, 유창식 등 다소 성적이 아쉬운 투수들에게도 인내심을 발휘해 꾸준한 등판 기회를 제공했고 하루빨리 한화의 미래로 자리 잡을 수 있게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타자 쪽에서도 김경언 같은 새로운 얼굴들을 주전급으로 키워냈고, 신인포수들에게 과감히 주전 마스크를 쓰게 하며 팀 리빌딩에 박차를 가했다. 당장의 성적욕심도 있었겠지만 팀 리빌딩에 신경을 쓰며, 젊고 가능성 있는 유망주들에게는 1군에서 많은 출전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감독은 결국 성적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는 자리다. 구단은 김응용 감독이 팀을 오랜 암흑기에서 벗어나게 하고 가을야구 진출을 시킬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라고 판단해 2년 계약을 했지만 김 감독은 2년 연속 최하위로 구단을 실망시켰다. 구단은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김응용 감독은 쓸쓸히 현장을 떠나야했다. 명장 김응용 감독도 끝내 못 살린 한화. 김응용 감독은 한화에서의 2년 감독 생활을 끝으로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다. 해태와 삼성에서 감독생활을 하며 최고 명장으로 불렸지만 한화에 온 후 명장의 이미지는 어쩔 수 없이 하락했고 팬들의 비난에 시달리며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명장에게 쓸쓸한 뒷모습을 안겨준 한화 선수들. 과연 한화의 다음 시즌은 어떻게 될까? 또한 한화를 이끌 새 사령탑은 누가 될 것인가?


한편 한화팬들은 시즌 종료 후 인터넷 청원영상을 제작해 차기 한화감독으로 딱 한사람을 원한다. 모든 한화 팬들이 그분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 과연 차기 한화 감독은 그분이 될 것인가? KBO에 큰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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