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행복한 독수리 최강 한화 <12>

야신의 복귀

by 김일주

9개 구단 체제로 치러진 2013년, 2014년 두 시즌 연속 9위팀이 된 한화. 그리고 2015년은 신생팀 KT위즈의 참가로 사상 최초 10개 구단 체제로 정규리그가 치러졌다. 기존팀은 물론 막내팀 NC에게도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한화는 2년 연속 50승 고지에 오르지 못한 최하위팀으로 낙인찍혔다. 어쩌면 사상 최초로 10위팀이 될 가능성도 보였다.

또 한 번의 굴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한화는 2014시즌이 끝나자마자 대대적인 팀 개편을 단행한다. 팀의 반등을 위해서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는 새 감독 영입이었다. 우선 지난 2년간 부진한 성적을 거둔 김응용 감독이 물러나고 한화의 새 사령탑 후보로 여러 인물이 거론된다. 한용덕 단장특별보좌관, 이정훈 한화 2군 감독, 이상군 코치 등 한화 프랜차이즈 출신들과 외부 베테랑 감독 출신들이 거론되었다. 구단은 새 감독 영입 문제를 놓고 다각도로 오랜 고민을 하며 팬들과 야구계의 궁금증을 불러 모았다.

2014년 10월 25일 한화는 한국 야구에 또 하나의 핫이슈를 일으켰다. 한화팬들 사이에서 SNS를 중심으로 청원영상을 제작해 한화의 새로운 감독으로 특정인물을 영입하라는 움직임이 단체로 일어났고 심지어 서울시 종로구 한화 본사 앞에서 한화팬 한명이 1인 시위운동을 하며 특정 인물을 영입하라는 움직임을 계속 이어간다. 한화 구단은 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팬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서 한화는 팬들이 원했던 단 ‘한사람’을 한화의 ‘제 10대 감독’으로 영입하게 된다. 그 주인공은 한국 야구의 대표적 명장이자 ‘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최고 지략가이자 ‘승부사’ 김성근 감독이었다. 김성근 감독에게 3년 계약(총액 20억원)을 안기며 팀 개편의 전권을 부여했다. 한화의 확실한 성적 반등과 분위기 반전을 원하는 독수리 군단의 큰 결단이었다.


약팀을 강팀으로 만드는 야신


바로 그날, 2014년 10월 25일 저녁, 한화는 구단 제 10대 감독으로 통산 1234승을 거둔 ‘야신’ 김성근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한다. 성적 향상을 위한 최고의 영입 카드였던 김성근 감독은 대다수 구단들이 모두 군침을 흘릴만한 최대어였다. 과거 성적부진으로 감독 교체를 단행한 구단들이 김성근 감독을 새 감독으로 영입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비시즌마다 김성근 감독과 접촉했다는 구단들이 있다는 소문도 흘러나오곤 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한국야구의 대표 명장이면서도 호불호가 가리는 대표적 인물이다. 하위권 팀을 강팀으로 탈바꿈시키는 최고의 지도력과 무명 선수를 스타로 키우는 능력 등에서는 최고였다. 특히 매경기 상대팀과의 승부에서 어떠한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치밀한 전략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술 및 경기운영, 상대의 흐름을 차단시키는 투수 교체 타이밍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반면 김성근 감독 특유의 강력한 카리스마, 독특한 야구 철학과 소신은 구단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안겨줘 영입을 망설이게 만들기도 했다. 실제로 과거 몇몇 구단들은 김 감독과의 불화로 계약 기간이 남은 상태에서 전격 경질시키기도 했다. 또한 김성근 감독은 자신이 맡은 팀 투수들을 선발과 불펜 가리지 않고 등판시키며 혹사논란을 일으켰고, 주전 타자들의 타격이 부진하면 경기 전후로 특타(특별타격훈련)를 시키는 등 훈련 방식에 있어서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어떠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약팀을 강팀으로 만드는 데는 아무도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다. 1989년 김성근 감독은 전년도 승률 0.319로 당시 가장 저조한 성적을 낸 태평양 돌핀스 감독을 맡아 부임 첫해 0.533의 높은 승률, 팀 순위 3위까지 끌어올려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또한 프로야구 역사상 최약체 팀으로 지목되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감독으로 부임해 1996년 새로운 역사를 선물했다. 1991년 창단한 쌍방울은 1995년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3번이나 꼴찌를 하며 만년 최하위팀 이미지를 굳혔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쌍방울의 팀 순위를 2위로 끌어올리며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1997년에도 쌍방울을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등 파란을 일으켰다.


김성근 감독은 LG트윈스에서 명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 번 다지게 된다. 2001년 감독대행을 거쳐 다음 해 정식 감독이 된 김 감독은 당시 약체 전력으로 평가 받던 LG를 2002년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키는 기적을 선보였다. 비록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상대 전적 2승 4패로 열세에 그치며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 LG였지만, LG는 부족한 전력에도 매경기 명승부를 연출했고 ‘LG 대 삼성’의 2002년 한국시리즈는 한국프로야구사 최고의 한국시리즈 중 하나로 야구팬들에게 기억됐다. 그리고 당시 삼성 감독을 맡아 우승을 차지했던 김응용 감독은 “야구의 신과 대결하는 것 같았다.”고 말하며 상대팀 김성근 감독을 극찬했다. ‘야신(야구의 신)’이란 별명은 그 당시 김응용 감독의 발언으로 생긴 것이었다. ‘야신’이란 별명을 얻으며 명장의 길로 접어든 김성근 감독은 2007년 SK와이번스 감독을 맡은 이후 2010년까지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번의 통합우승(2007~2008, 2010)을 이끌며 SK왕조 시대를 열며 감독으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야신에게 갈등과 경질은 필연?


김성근 감독은 화려한 경력과는 별개로 감독 인생에서 꽃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본인이 맡은 팀을 단기간 내에 강팀으로 만드는 지도력은 모든 구단과 야구인들이 인정하지만, 독특한 야구철학과 소신, 승부에 대한 강한 열정과 냉정함, 그리고 강력한 카리스마 등을 가진 김성근 감독은 KBO 역대 감독 중에서 가장 개성이 강하고 자신의 주관과 색깔이 뚜렷한 지도자다. 이러한 성격은 김성근 감독 자신에게 그동안 큰 장애물이 되었고 그가 가는 팀에서 항상 프런트와의 갈등을 빚어냈다. 김 감독은 프런트의 현장 간섭을 극도로 꺼리는 대표적인 지도자다. 본인이 있었던 팀마다 선수단 전권을 부여받길 원했고, 1군과 2군 전체 선수단 관리 및 팀 운영 방향과 전지훈련 장소 선택 모두 감독의 권한과 권리라고 주장하였다.


팀에서 차지하는 김성근 감독의 영향력은 당연히 웬만한 에이스나 간판선수 이상으로 강력했고, 김성근 감독의 야구 철학은 구단 사장과 단장을 비롯한 프런트와의 갈등 요소로 작용했다. 과거 LG트윈스를 비롯해 김성근 감독을 경험한 몇몇 구단들은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도 불구하고 감독의 강력한 영향력에 부담을 느껴 계약을 더이상 연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2011년 8월 중순 SK와이번스는 한창 1위 싸움을 하는 중요한 상황에 김성근 감독을 경질시키며 야구계 최대 핫이슈를 일으켰다. 팀에 우승을 안기고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둬도 구단의 눈 밖에 나면 감독은 언제든 소속팀에서 해고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건이었다.


이기는 야구가 보고 싶은 한화팬


김성근 감독이 한화 감독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2014시즌 종료 후 감독교체를 진행한 몇몇 구단 모두 성적 반등을 위해 김성근 감독을 새 사령탑 후보로 고려했지만 소통과정에서의 어려움 등을 예상하며 영입을 주저했다. 한화 역시 과거 2012년 시즌 종료 후에도 김성근 감독을 새 사령탑 영입 후보로 접촉한 적이 있지만 조건이 안 맞아 무산됐었다.


한화의 성적에 상관없이 변함없는 응원과 아낌없는 애정을 보낸 팬들도 이제 더 이상 한화의 무기력하고 지는 모습에 지쳐버렸다. 한화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팬이 존재하는가 하면 일부 팬들은 SNS와 인터넷 영상을 제작해 단체 행동을 통해 구단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팬들이 구단에게 원하는 건 ‘이기는 야구’, ‘한화의 승리’다. 그리고 이기는 야구를 위해서는 김성근 감독이 한화의 감독으로 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한화 구단도 결국 성적 반등의 필요성을 강력히 느꼈고 팬들의 간절한 염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김성근 감독이 한화의 제 10대 감독으로 선임됐다. 한화 구단은 10월 24일 오후 김성근 감독에게 연락을 했고, 다음날 25일 김성근 감독은 한화와의 첫 만남에서 구단의 진정성에 마음을 열며 곧바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며 한화감독으로 부임했다.


최고의 성적을 내는 감독이자 동시에 여러 논란을 만들며 호불호가 가리는 대표적 감독. 만약 야구팬들에게 김성근 감독이 과연 좋은 감독인지 묻는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눠질 것이다. 맡는 팀마다 단기간에 강팀으로 바꿔놓는 뛰어난 지도력으로 팬들한테 큰 지지를 받으며 웬만한 스타 선수 이상으로 큰 호응과 인기를 얻는 김성근 감독. 매경기 승리에 대한 강한 열망과 상대팀에게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철저한 전략을 구사하며 팀을 승리로 이끄는 모습과 승부에서의 냉정함으로 상대팀 팬들한테는 원망을 듣는 김성근 감독. 지옥훈련이 연상될 만큼 선수들에게 지나친 강훈련과 특타 및 혹사 논란을 불러일으켜 비난을 받는 김성근 감독. 프로야구 역대 감독 중에 김성근 감독만큼 팬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감독이 있었을까? 김성근 감독만큼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감독이 있었을까? 아니면 김성근 감독만큼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감독이 또 있었을까?


매순간 김성근 감독의 판단과 결정, 선택은 팬들과 야구계의 주목을 받았다. 좋은 감독의 기준은 명확하지는 않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김성근 감독이 좋은 감독 혹은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야구팬들에게 김성근 감독이 ‘이기는 감독’, ‘팀을 승리로 이끄는 감독’인지 묻는다면 대답은 한가지일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오직 팀을 강하게 만들고 승리로 이끄는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젠 한화팬들도 꼴찌에서 벗어나 이기는 야구를 무척 보고 싶었고, 그들에게는 김성근 감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10월 28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김성근 감독의 취임식에 약 50여 명의 한화팬들이 찾아와 김성근 감독을 환영했다. “김성근 김성근”, “야신 파이팅”을 외쳤다. 야신과 함께하게 될 한화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야구 역사에 과연 어떤 스토리를 써내려 갈 것인가?


한편 김성근 감독은 전력 보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구단에게 FA영입을 요청했다. 특히 투수진이 불안한 한화는 FA 시장에 나온 투수 3명을 새롭게 영입하며 선발과 불펜 보강에 성공했다. 독수리 군단에 새롭게 합류한 3인방은 권혁, 송은범, 배영수였다. 한화에 합류한 이들은 각각 저마다의 이유로 원소속팀과의 재계약이 결렬됐고 한화로 이적하며 새로운 야구인생의 출발점에 섰다. 세 선수는 한화로 이적한 대표적인 이유로 “김성근 감독과 함께 야구가 하고 싶었다.”며 감독의 커다란 영향력을 손꼽았다.


FA 투수 3인방의 영입으로 스토브리그의 정점을 찍은 한화 이글스. 그리고 코칭스태프 구성에도 대규모 변화가 일어났다. 이글스 프랜차이즈 출신 정민철, 송진우, 장종훈 등 10명이 대거 빠져나간 대신 12명이 새롭게 가세했다. 김성근 감독을 옆에서 보좌할 수석코치는 고양 원더스에서 함께 했던 김광수 코치를 선임했다. 그리고 SK와이번스 시절 김 감독과 여러 차례 우승을 일군 김재현이 부름을 받고 타격코치로 합류했다. 이 외에도 니시모토 다카시(투수 코치), 쇼다 고조(타격 코치), 후루쿠보 겐지(배터리 코치), 다테이시 미쓰오(수비 코치) 등 다수의 일본인 코치들을 영입하는 등 한화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야신’ 김성근 감독을 중심으로 새롭게 태어난 독수리의 힘찬 날개짓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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