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행복한 독수리 최강 한화 <9>

김응용 감독 야구 인생 최대 시련

by 김일주

한화는 2012시즌이 끝난 후 류현진의 MLB 진출과 박찬호의 은퇴로 선수층이 더 약해졌다. 2013시즌에도 유력한 꼴찌 후보로 평가받는 가운데 한화는 새로운 사령탑으로 김응용 감독을 선임했다. 김응용 감독은 주축 선수들의 이탈로 팀 전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어떻게 팀을 이끌 수 있을까? 명장 김응용 감독의 지도력이 과연 오랜 암흑기에 빠져있는 한화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한화를 구하러 온 해태 전설들


2012시즌을 최하위로 마친 한화는 ‘해태왕조 시대’를 이끈 감독이자 ‘KS 통산 최다 우승 (10회)’에 빛나는 ‘명장 중의 명장’ 김응용을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코칭스태프도 ‘해태왕조 시대’ 선수들로 채웠다. 타이거즈에서만 통산 홈런 207개를 친 강타자이자 ‘타이거즈 레전드’중 한 명인 김성한을 수석코치로 합류시켰다. 그리고 기아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또 한 명의 ‘타이거즈 레전드’인 ‘바람의 아들’ 이종범도 주루코치로 가세했다. 그리고 타이거즈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이대진까지 투수코치로 합류했다. 김응용 감독은 한화에 부임하자마자 이들에게 바로 연락해 다시 한 팀에 모이게 했다. 한화구단도 김응용 감독이 원하는 대로 코치진 구성을 허락하며 적극적인 지원을 했다. ‘강팀 문화’, ‘이기는 문화’, ‘승리 DNA'를 한화선수들에게 전수하겠다는 의도가 구단의 해태왕조 멤버의 감독과 코치 선임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화려한 코칭스태프에 비해 선수층은 지난해보다 더 약해졌다. 류현진의 MLB 진출뿐만 아니라 박찬호도 은퇴를 선언했고 또 다른 선발요원 양훈마저 군입대로 2년간 팀을 떠나게 됐다. 타 팀들과 비교해 팀 전력이 많이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 그나마 팀이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부분은 몇 개 없었다. 우선 투수 쪽은 2012시즌 마무리 투수로 부진했지만 선발투수 전환 후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재계약에 성공한 데니 바티스타가 2013시즌 선발로테이션에서 에이스로 기대 받았다. 그리고 김응용 감독이 투구영상을 보며 직접 선택한 좌완 투수 다나 이브랜드가 원투펀치로 활약하길 기대했다. 그 외 선발로테이션에서 유망주 유창식과 김혁민의 성장에 희망을 걸었다. 타자 쪽은 2년 만에 국내에 복귀해 여전히 뛰어난 활약으로 타선의 리더 역할을 한 김태균과 지난 시즌 다소 주춤했던 최진행의 부활을 기대했다. 그리고 군입대전 20홈런 이상 치며 팀의 거포로 활약한 김태완이 다시 팀에 합류했다. 김태균, 최진행, 김태완이 중심이 된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부활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1승이 너무나 어려운 김응용


김응용 감독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팀을 가을야구에 진출시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구단도 리빌딩과 팀 성적 둘 다 잡기 위해서 지난 시즌이 종료되자마자 새 사령탑 김응용 감독을 선임했었다. 하지만 팀의 객관적 전력은 너무 떨어졌고 시즌 전 각 팀 예상순위에서 한화는 부정적인 전망만을 받았다. 2011년 창단한 NC다이노스가 2013년부터 1군 리그에 합류하게 되면서 사상 최초로 9개 구단 체제로 정규리그를 맞게 된다. 한화는 NC와 함께 2약으로 꼽혔다. 유력한 꼴찌후보로 평가받는 가운데 김응용 감독의 가을야구 진출 발언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김응용 감독의 가을야구 진출 발언은 2가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한화 선수들에게 일종의 동기부여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수많은 패배 속에 어두워진 선수단 분위기를 밝게 전환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나온 말일 가능성이 높다. 야구계 전문가는 물론 팬들이 볼 때도 한화는 가장 강력한 꼴찌후보였다. 한화 선수단도 주변의 그런 평가들을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김응용 감독은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말고 선수들이 각자 자신감 있게 야구를 해달라는 뜻에서 사기진작차원에서 말했을 것이다. 또한 선수들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뜻도 들어있을 것이다. 야구는 멘탈 싸움이다. 아무리 좋은 전력을 가지고 있어도 한 순간에 집중력과 멘탈이 무너지면 패배하는 것이 야구이다. 좋은 재능을 가지고도 약한 멘탈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선수들이 꽤 된다. 선수들 사이에 패배의식이 많이 쌓였고 그로인해 무너진 멘탈과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매년 기대를 받고도 성적을 못내는 현상들이 반복됐다. 김응용 감독의 가을야구 진출 발언은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한 유망주 등 선수들의 무너진 자신감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의도도 담겨 있을 것이다.

둘째, 김응용 감독은 패배를 모르는 남자다. 그는 항상 승리만을 알고 승리의 길만 걷고 있었다. 2013년 한화 감독 부임 당시, 프로야구 역대 최다승 1위(1476승)의 주인공은 김응용 감독이었고 그의 앞에는 화려한 수식어들이 따라붙는다. 1983년부터 해태타이거즈를 지휘해 18년 동안 9번이나 우승시켰다. 그리고 2001년 삼성라이온즈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김응용은 이듬해 삼성에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기기도 했다. 통산 10회 우승의 최다승 감독 김응용은 항상 자신감이 넘쳤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녔다. 해태와 삼성의 개성 넘친 스타 선수들을 무리 없이 컨트롤하며 팀에 조직적으로 녹아들게 만들었다. 선수들이 개인플레이뿐만 아닌 팀플레이에도 집중할 수 있도록 스타선수들을 다루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아무리 개성 넘치고 야구 잘하는 슈퍼스타들도 김응용 감독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충성을 하며 팀을 위한 야구를 했다. 김응용 감독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응용 감독은 자신만의 강력한 리더십과 지도 방식이 한화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동안 몸담았던 해태나 삼성은 늘 이겼고 이번에도 그가 맡은 현재의 팀 한화가 분명 이겨나갈 것이라는 자신감이 김응용 감독 마음속에는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응용 감독의 생각과 다르게 한화는 이기는 팀이 아니었다. 팀의 객관적 전력은 김응용 감독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떨어져 있었고, 자신감을 상실한 선수들이 경기에 패배하는 일이 반복됐다. 시즌 전 NC와 2약으로 분류됐던 한화지만, 그래도 전문가와 팬들은 창단한지 얼마 안 된 신생팀 NC보다는 한화가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생팀 NC는 주축선수 대부분이 그해 프로에 데뷔한 신인들과 타 팀에서 방출된 무명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반대로 한화는 그래도 오랜 프로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여러 명 있었고 앞으로 한국야구의 미래가 될 수 있는 유망주들이 꽤나 포함되어있어 NC보다는 전망이 밝았다. 하지만 한화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듯 시즌 개막 직후 나락으로 떨어졌다.

3월 30일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린 날, 한화의 개막전 상대는 롯데 자이언츠였다. 9회초까지 5대4로 앞서고 있던 한화는 마무리 투수 안승민이 한 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5대6으로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다 잡았던 경기를 놓친 허무함이 컸는지 한화는 다음날에도 9회에 5대5 동점 상황에서 끝내기를 허용하며 이틀 연속 롯데에게 5대6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가뜩이나 얇은 선수층 속에 이길 수 있는 게임을 놓친 한화는 이후 무섭게 패배를 쌓게 된다. 4월 2일~4월 4일 기아와의 주중 3연전에서 싹쓸이 패배를 당했고, 주말 넥센과의 경기에서도 승리하지 못하며 개막 7연패의 늪에 빠졌다. 4월 9일~4월 11일 삼성과의 주중 3연전마저 스윕패를 당한 한화는 개막 10연패까지 빠지게 된다. 반면 신생팀 NC는 개막 후 긴 연패를 끊고 4월 11일 창단 첫 승을 거두었고, 유일하게 1승도 올리지 못한 구단으로 한화만 남게 됐다. 그 이후 NC는 조금씩 승리를 쌓아가며 꼴찌 한화와의 게임차를 벌렸고, 여전히 긴 침체에 빠진 한화는 4월 12일~4월 14일 LG와의 주말 3연전 마저 싹쓸이 패배를 당하며 개막 13연패에 빠졌다. KBO 최초로 개막 후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13연패에 빠진팀은 한화가 최초다. 대표적인 약체팀이었던 과거 삼미 슈퍼스타즈나 쌍방울 레이더스도 개막 13연패까지는 가지 않았기 때문에 한화의 개막 최다연패 13연패는 야구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만약 류현진이 한화에 계속 남았다면 13연패 근처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특급에이스 한 명의 공백이 팀 전체를 흔들어 놓은 악몽의 시간들로 기억됐다. 하지만 아무리 에이스 한 명이 빠졌고, 시즌 전 최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받긴 했어도 프로구단이 개막 후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13연패를 한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팀의 객관적 전력이 많이 약한 건 사실이다. 김응용 감독의 지도력도 과거 오래전보다는 많이 약해졌다. 2004년 삼성 감독을 끝으로 현장을 떠나있었던 김응용 감독은 9년 만에 다시 복귀했고, 그 긴 시간동안 현장 감각이 많이 떨어졌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응용 감독이 뛰어난 명장인 것은 야구계에 몸담고 있는 누구나 인정하지만 현장을 떠나있었던 지난 9년 동안 한국야구는 여러모로 많이 변했다. 프로야구 수준은 높아졌고 그 사이 새롭고 유능한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며 프로야구는 더욱 더 치열한 세계가 됐다. 김응용 감독의 용병술과 지도 스타일도 현대 야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한화의 개막 13연패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또한 김응용 감독이 시즌 준비과정에서 한화의 팀 전력과 선수들의 개인 능력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시즌 전 냉정하게 진단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13연패 기간 동안 김응용 감독은 연패를 끊기 위해 무리한 투수운용을 보였고, 몇몇 투수들은 혹사 논란에 시달렸다. 그 과정에서 감독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팀은 깊은 수렁에 빠졌고 김응용 감독의 명성과 자존심도 무너졌다.


그리고 4월 16일 화요일 한화는 NC를 상대로 6대4로 이기며 마침내 개막 13연패를 끊고 시즌 첫 승을 거뒀다. 경기가 끝난 후 승장 인터뷰에서 김응용 감독은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통산 1476승에서 1477승이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고, 김응용 감독은 1승이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김 감독은 방송 인터뷰에서 “저는 20년 이상 감독을 해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에 얼떨떨합니다.”라며 1승의 소감을 말했다. 그동안 팀의 연패 속에 힘들었던 순간들이 그의 말 속에 들어 있었고 늘 그에게 어렵지 않던 1승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승리 소감 인터뷰를 보며 느낄 수 있었다. 이후 한화는 NC와의 남은 2경기마저 승리해 3연승에 성공하며 긴 침체기에서 잠시나마 벗어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개막 초반 긴 연패 탓에 4월 승률 0.263 (5승 1무 14패)를 기록하며 저조한 모습을 보였다. 그 이후 5월에는 승률 0.375(9승 15패)를 기록하며 조금은 나아진 모습을 보였지만, 다시 6월과 7월에 각각 월간 승률 2할 대에 그치며 팀은 시즌 초반부터 일찌감치 순위싸움에서 멀어진 채 최하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최초 9위팀 한화 이글스


한편 시즌 초부터 한화의 지독한 부진이 이어지는 동안, MLB에서는 류현진이 연일 승리 소식을 대한민국에 전했다. 특히, 2013년 5월 29일 류현진은 LA에인절스를 상대로 9회까지 2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의 완벽한 투구로 완봉승을 거두며 괴물 같은 활약을 미국에서도 이어갔다. 한화는 류현진의 맹활약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 류현진의 빈자리를 많이 아쉬워했다. 김응용 감독도 류현진의 완봉승 소식을 전해 듣고 축하와 동시에 에이스의 공백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김 감독은 “한화에 와서도 류현진이 있어서 행복할 줄 알았다. 류현진만 믿고 왔는데 딴 곳에 가버렸다.”며 에이스 류현진의 이적으로 인한 공백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한 류현진의 완봉승 소식과 관련해 “조금 봤다. 현진이가 잘 던지더라. 여기서도 그렇게 열심히 던졌다면 안 쫓아냈을 텐데.”라는 농담으로 류현진의 맹활약에 흡족함을 드러내는 한편 류현진의 공백으로 한화가 처한 어려운 현실을 표현했다. 김 감독은 “확실히 에이스가 있는 팀이 편하다. 이빨이 하나 부러지면 그 옆에 있는 이가 같이 부러지지만 어금니 역할을 하는 이가 하나 있으면 다른 투수들도 함께 산다.”며 그동안 한화 내에서의 류현진의 존재감이 어떠했는지 비유하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 암흑기를 거치며 최하위를 반복했던 한화지만, 류현진이 나온 날에는 강팀들과의 대결에서도 우위를 점하는 등 승리하는 날이 많았다. 팀의 연패를 끊거나 혹은 연승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든든한 에이스 역할을 한 류현진. 그런 그를 보유했던 한화는 그러나 올해는 류현진이 빠지면서 개막 13연패 등 시즌 내내 계속되는 무기력한 패배를 반복하며 결국 또다시 꼴찌를 차지했다.


특히 시즌 전 같은 2약으로 분류됐던 신생팀 NC는 리그 7위로 깜짝 돌풍을 보여줬다. 한화는 9개 구단 체제 최초로 9위 팀이 되는 굴욕을 떠안았다. 42승 1무 85패(승률 0.331)의 저조한 승률을 기록한 한화는 투타 모두에서 힘을 전혀 쓰지 못했다. 공격부문에서는 팀타율 0.259(8위) 팀출루율 0.343(8위) 팀장타율 0.348(9위) 팀홈런 47개(9위) 팀도루 70개(9위) 팀득점 480(9위) 등 7위 이상을 기록한 부문이 하나도 없었다.


시즌 전 김태균, 최진행, 김태완을 중심으로 한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부활을 기대했던 한화지만, 이들의 시너지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팀홈런 전체 꼴찌였고 무엇보다 두 자릿수 홈런 타자가 김태균 한 명밖에 없었다. 팀 내 최다홈런타자였던 김태균의 시즌 홈런 수는 고작 10개에 불과했다. 타율은 0.319를 기록하며 정교함을 뽐냈지만 팀에서 김태균에게 바라는 것은 시원한 한방과 장타였다. 김태균은 장타 실종과 함께 경기출장수도 101경기 출전에 그쳤다. 일본 시절부터 안고 있던 고질적 허리통증 때문에 김태균은 한국에 와서도 고생을 했고 8월말 장기결장을 해야 했다.


타선의 거포 역할을 기대했던 최진행의 장타력 실종도 팀에게는 많이 아쉬웠을 것이다. 2010년 32홈런(전체2위)을 치며 새로운 토종 거포 탄생을 알린 최진행은 이후 해마다 홈런수가 감소했는데, 2013년은 홈런을 8개밖에 치지 못했다. 시즌 첫 홈런이 개막 한 달이 지난 5월 2일에 나온 최진행은 오른쪽 무릎 통증을 안고 경기를 치렀다. 무릎 통증의 영향 때문인지 타구에 힘을 제대로 싣지 못한 최진행은 시즌 내내 장타력을 선보이지 못했다. 결국 9월 초 시즌을 일찍 마감하고 곧바로 수술을 받기도 했다. 비록 타율은 정확히 3할을 치며 정교함에서 많은 발전을 이뤄낸 최진행이지만, 팀에서 바라는 것은 3할 타율보다도 5번 타순에서 많은 타점과 30개 가까이 홈런을 치는 것이다. 이 외에 타선에서 또 한 명의 해결사 역할을 기대했던 김태완은 군제대하고 복귀한 첫 시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군입대 전 20개 이상 홈런을 쳤던 김태완은 그 해 홈런 3개, 타율도 0.229에 그치며 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투수 쪽에서도 무기력한 모습이 보였다. 팀방어율 5.31(9위) 선발방어율 5.76(9위) 구원방어율 4.81(8위) 등 류현진의 빈자리가 느껴진 투수쪽이었다. 1선발 투수 데니 바티스타는 150km의 강력한 구위를 바탕으로 143.2이닝 동안 150개의 탈삼진(전체4위)을 기록하며 상대타선을 압도했지만, 다소 기복 있는 모습으로 에이스로서의 안정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바티스타는 총 29경기에 나와 7승 7패 방어율 4.20을 기록하며 한화가 기대했던 확실한 에이스의 모습은 보이지 못했고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덩치 큰 신인 송창현 등장, 마무리 송창식 투혼


한편 생각지도 못한 신인투수가 등장하며 2013시즌 최하위 속에 한화팬들을 잠시 설레게 한 일도 있었다. 2013시즌 전 베테랑 강타자 장성호와의 1대1 맞트레이드로 롯데에서 온 대졸 신인(제주국제대 출신) 송창현이었다. 181cm 100kg의 거구이자 좌완투수인 송창현은 트레이드 당시만 해도 큰 주목을 못 받았고 5월 중순 1군에 처음 등록됐을 당시에도 2군에서 방어율이 7점대로 높았다. 그러나 김응용 감독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덩치 큰 선수를 좋아하는 김 감독은 야인시절 송창현을 대학시절부터 지켜봐왔고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베테랑 장성호를 보내고 신인 송창현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진행하며 야구계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김응용 감독은 송창현의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었고 팀의 미래를 위해 송창현에게 과감히 선발 기회를 주었다. 송창현은 데뷔 첫해 팀의 중용을 받으며 선발투수로 10게임 이상 기회를 얻는 등 총 30경기(선발 14경기)에 등판했다. 2승 8패 82.2이닝 방어율 3.70을 기록하며 선발투수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최하위의 전력 탓에 좋은 투구내용을 보이고도 비록 많은 승수를 올리지 못했지만 방어율이나 피안타율 등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새로운 선발투수의 탄생을 알렸다. 젊은 선발투수의 등장은 팀의 미래를 한층 밝게 하기에 충분했다.

불펜투수 송창식의 투혼도 빼놓을 수 없다. 시즌 전 마무리투수로 낙점한 안승민이 단 한 개의 세이브도 올리지 못하는 부진을 보이자 한화는 시즌 중 송창식에게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겼다. 송창식은 마무리 보직에서 안정적 모습을 보이며 20세이브를 따냈다. 그리고 총 57경기에 등판해 71이닝을 소화하는 등 많은 이닝을 던지며 혹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부상으로 인해 7월이 돼서야 뒤늦게 합류한 박정진의 컨디션 난조와 부진, 그 외에 불펜에 믿을만한 투수가 부족한 한화의 팀 상황이 한 몫 했다. 송창식은 등판 때마다 투혼을 불사르며 4승 6패 20세이브 방어율 3.42로 든든한 활약을 선보이며 독수리 군단의 핵심 필승조로 자리를 굳혔다.


이용규, 정근우 국가대표 테이블세터 영입


2013시즌 최하위를 기록한 한화는 FA시장에서 대어급 타자 2명을 영입한다. 허약한 타선 때문에 2013시즌 내내 고전했던 한화는 국가대표 주전 중견수 이용규(4년 67억원)와 주전 2루수 정근우(4년 70억원)를 영입하는 과감한 행보를 보이며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9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해 꼴찌를 하며 자존심을 구긴 김응용 감독은 타선의 전력보강 필요성을 느꼈고 한화는 계약 마지막 해를 남겨둔 김응용 감독에게 국가대표 강타자 둘을 선물하며 확실한 지원을 해줬다. 국가대표 중견수이자 1번타자 이용규는 언제든 3할을 칠 수 있는 정교함과 뛰어난 출루와 도루 능력에 심지어 상대투수의 투구수를 많이 늘리는 일명 ‘용규놀이’로 대표되는 특기까지 가져 팀타선에 끈질김과 정확성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됐다.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는 뛰어난 수비센스와 공격에서도 빠른 발과, 악착같은 모습, 언제든 3할 타율을 칠 수 있는 정교함에 작은 체구에도 장타력까지 있어 투수 입장에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자다. 이용규와 정근우의 테이블세터는 상대 투수에게는 공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2014시즌은 각 팀마다 외국인 타자 한명을 포함한 외국인 3명을 보유하는 제도가 생기게 된다. 한화는 외국인 타자로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외야수이자 정교함과 파워를 두루 갖췄고 강한 어깨와 넓은 수비 범위에 빠른발까지 지닌 중장거리형 타자 펠릭스 피에를 영입하며 타선 전체에 장타력과 기동력이 상승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과연 2014시즌 한화는 한층 빠르고 강력해진 타선으로 지난 시즌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팬들의 기대도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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