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희망
광화문 하늘에 노을이 비꼈다. 노을의 마지막 빛들이 거대한 빌딩의 외벽 창들에 부드럽게 부딪쳤다가 천천히 사위어갔다. 끝의 노을빛에 더더욱 자줏빛으로 빛나는 교보빌딩 23층 대산홀에서 나는 김훈작가를 직접 만났다. 작가의 신작에세이집 “허송세월”의 출간기념 강연회에 운 좋게 당첨되었다. 강연 전에 사회자가 말했다. 이 강연회에 1,200여 명의 신청자가 몰렸다고 한다. 300명의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하였으니 4대 1의 경쟁률로 당첨된 것이라 했다.
흠모하여 마지않는 작가를 등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야기는 두말할 것 없고 표정과 몸짓, 손짓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고 듣고 지켜보았다. 장편소설 “칼의 노래”를 시작으로 하여 작가의 모든 소설과 산문집들을 읽고 또 읽었다. 어느 소설의 뒤에 남긴 글을 잊을 수가 없다.
“문장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
문장의 그 무슨 마력과 괴력이 이토록 글로써 내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고, 그 글들의 세계 속으로 내 몸을 끌어당겨 이 현실과, 저 글의 세상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들고, 밤새 그 속을 헤매게 만드는 것인가.
글을 읽으며 내가 상상했던 신비스러운 작가의 모습은 너무나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여생의 시간을 혼자서 지내려고 한다고, 그리고 스스로 헐거워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광화문 하늘에 사위어가던 노을을 생각했다. 그리고 작가가 노을을 닮았다고, 아니 작가의 말이 노을빛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강연도중에 진실로 작가는 해질 무렵의 시간을 제일로 좋아한다고 말했다. 젊어서 많이 마시던 술을 늙어서, 몸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못 마시니 세상이 너무 환하고 선명해서 싫다고, 해질 무렵의 그 시간처럼 황혼의 빛이 감도는 그런 때가 좋다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 청중도 작가가 웃을 때마다 큰소리로 따라 웃었다.
왜 육필원고를 고집하는가는 질문에 작가는 연필로 글을 쓸 때 나의 글이 몸으로 육체를 밀고 나가는 것을 느끼며, 이 육체감이 없으면 글을 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 육체감을 상상해 보려고 잠시 눈을 감았다. 감이 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물었다. 선생님이 쓸 수 있는 단어의 한계에 대해서, 작가는 말했다. 젊었을 때엔 사전에 있는 단어는 다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미친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말들은 웃자라서 걸러내서 버리니 쓸 수 있는 단어는 한 음절 단어와 원초적인 명사와 동사뿐이라고 말했다.
“달, 별, 산, 강, 물, 꽃, 밥, 똥, 쓰다, 먹다, 누다, 자다, 빻다, 하늘, 바다, 노을”
너무나 순한 우리의 이 모국어를 외래어로 말하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다고, 모국어는 세상이 보이는 귀한 언어라고 표현했다. 강연회 도중에 똥에 대한 얘기가 자주 나와 청중은 웃었고 작가는 이제 똥 얘기는 그만하자고 했다.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밥이고, 인간이 제일 혐오하는 것은 똥인데, 이 둘은 인간의 하나의 소화계통으로 들고 난다고, 밥은 각자 먹지만 똥은 한 곳으로 모인다고, 그 모이는 똥의 흐름은 장엄하기까지 하다고 말하며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밥벌이의 지겨움에 못지않게 똥 처리의 중요함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작가의 말을 들으며 한 음절 단어와 원초적인 명사와 동사들을 속으로 하나하나 읊어보았다.
그리고 작가는 쓰기가 머뭇거려지는 단어는 “사랑”이라는 단어라고, 이 두 글자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부재와 결핍을 드러내는 꼴이 될 것 같아서 겁 많은 본인은 쓰기 저어했던 것 같다고 덧붙여 말했다. 생각해 보니 누구나 흔히 쓰고 시도 때도 없이 올리는 이 단어를 작가의 글에서 거의 본 기억이 없다. 사랑을 말하기가 겁이 난다는 작가는 노을을 닮아있었다.
작가의 사랑이란 단어이야기를 들으며 며칠 전 은사(恩師)와 함께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오래도록 바라보며 섰던 제주도의 어느 바닷가 수평선의 해넘이를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그날 나는 사랑의 부재와 결핍을 견디다 못해 은사를 찾아 홀연히 제주도로 갔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진종일 은사를 향해 그 부재와 결핍으로 적막했던 내 몸과 마음속의 언어들을 끝없이 쏟아내고 바닷가에서 은사와 함께 석양을 바라보며 공허한 마음에 사랑을 채우려 했던 것이었을까.
민속박물관에 놀러 가기를 즐긴다는 작가는 어느 날 파주의 어느 민속박물관에 갔다가 전쟁 때 쓰던 군용 철모에 긴 손잡이를 연결한 똥바가지를 보았다고 한다. 순간 참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참호 속에서 전사한 병사의 넋이 생활용 도구로 변해서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며 비참했던 전쟁의 고통을 생활로서 극복해 나가는 인간세상의 모습에 대해 “생활은 크구나” 이렇게 여섯 글자로 썼다고 작가는 마지막 말을 마쳤다.
목이 마른 지 생수병을 들어 물을 여러 번 마셨다. 그리고 연탁으로 나올 때 메고 나온 흰 에코백에 앞에 놓고 말하던 몇 장의 원고지와 생수병을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자 쓴 머리 뒤쪽으로 은색의 머리카락이 흘러나와 있었다. 퇴장하는 작가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며칠 전 바라보고 섰던 제주도 어느 바닷가 하늘의 황홀했던 노을빛과 물빛이 아득히 반짝이며 사랑과 희망을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울며 서있었다.
살아가는 동안에 사랑과 희망은 말하여질 것인가.
2024년 8월 4일 일요일. 숨 막히게 무더운 날에 신관복 쓰다.
사랑의 부재와 결핍으로 인한 나의 속사포같이 쏘아대던 끊임없는 말을 진종일 들어주신 전연숙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함께 서서 오래도록 바라본 제주도 그 바닷가의 노을 비낀 하늘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