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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여산 Oct 22. 2022

어쩌다 여기 이렇게 오래

몇 년 전부터 나는 엄마와의 카톡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쌓아두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엄마와의 사소한 카톡 대화도 애타게 찾지 않을까 해서였다. 물론 엄마와 말다툼을 할 때마다 카톡방을 나가버리고 싶었지만 순간의 감정 때문에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게 더 싫었다. 그렇게 몇 년을 묵히다 얼마 전 대화 내용을 텍스트 파일로 변환했다. 평범한 일상톡을 기대하며 파일을 열어봤다. 카톡에 저장된 첫 대화는 6년 전의 것이었고, 내가 보낸 장문톡이었다. 우리는 또 같은 문제로 싸우고 있었다.

 



딸이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노릇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흔한 일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엄마는 그날 그날 아빠와 동생이 어떤 잘못을 해서 자신을 속상하게 하는지 나에게 모두 말했다. 오랜 시간 나는 그걸 잠자코 들었다. 엄마가 분출하는 감정과 이야기들을 습자지처럼 빨아들였다. 아빠가 싫었다. 엄마를 속상하게 하니까. 동생도 싫었다. 엄마를 울게 하니까. 몇 년 전 받은 심리 상담에서 이 이야기를 털어놓자, 상담 선생님은 물었다.




“그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내 안에 모인 엄마의 쓰레기들은 주기적으로 비워주어야 했다.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가 분기별로 감정을 터뜨렸다. 6년 전의 어느 날은 그 주기가 찾아왔을 뿐이었다. 엄마, 나는 내 삶만 살고 싶어. 6년 전 장문톡에서 나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3월 1일 자로 제주에 왔다. 게하 스탭임을 감안해도 이 정도면 꽤나 오래 있는 편이다. 3월까지만 해도 5월엔 돌아가야지 했는데 점점 7월엔 가겠지, 9월엔 가겠지 하다가 벌써 10월이다. 올해 안에는 돌아가려나,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있었어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그냥 어쩌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다고 대답한다. 꼬질이랑 놀고, 정원이 쓰다듬고 글도 쓰고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고. 제주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게스트하우스에 가만히 있어도 바쁜 데다가 제주에는 갈만한 곳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빵이 맛있는 카페든 걷기 좋은 숲이든. 게스트들이나 스탭들로부터 여기가 좋다, 저기가 좋다는 말을 듣고 휴무 때 다녀오면 금방 한 주가 지나간다.




게다가 내가 봐도 나는 제주살이 하기 최적의 조건이다. 취업도 이미 끝난 상황이고 대기 기간이 1년이나 되니까. 내년부터 일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기간제라도 해야 하지 않니라는 주변 어른들의 말도  귀로 흘릴 만한 심적 여유가 생겼다.  육지로 돌아가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제주살이 때문에  커리어가 심하게 단절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육지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집 생각이 아예 안 나는 건 아니다. 아무리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좋아도, 권태로운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 잠깐 생각해보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그러다 보면 집에 있을 때 내가 썼던 일기들이 생각나고, 혼자 숨죽여 울면서 잠들었던 많은 밤들이 떠오른다. 언제 큰 소리가 날지 몰라 조마조마하느라 몇 시간은 뒤척였던 밤들이. 최소한 제주는 누가 소리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지는 않을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어폰으로 집에서 나는 소리들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 그런 불안감을 잊을 수 있는 사치가 허락된 곳이다.




집을 도망쳐 나오던 시간이 있었다. 집에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기거나 내가 거기에 얽히게 될까 늘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밖으로 나가 적당한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며 카페 영업 종료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 30분 뒤면, 20분 뒤면… 하고 마음을 졸였다. 카페가 문을 닫으면 바깥을 한참 걸었다. 오랜 시간 걸으면 기분이 나아진다고 하던데, 내가 살았던 도시는 그저 지칠 뿐이었다. 신도시 특유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건물들과 지지대에 기대어 서 있는 가냘픈 나무들. 사람보다 많은 자동차와 필요 이상으로 밝은 도시의 불빛들은 위화감이 들뿐이었다. 기이할 정도로 쭉 뻗은 도로를 걷다 배낭을 멘 어깨가 못 견딜 듯이 아파오면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조식 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게스트들이 모두 퇴실하면 나는 이불과 베개커버를 세탁하고, 1층에서 침구를 개켰다.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리고, 이른 오후의 햇살이 테라스 너머로 들어왔다.  세탁한 빨래에서 섬유유연제 냄새와 햇볕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엄마는 꼭 그런 날 전화를 건다. 그냥 뭐하나 궁금해서 전화했어. 엄마가 말했다. 나도 엄마의 안부를 묻고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가장 많은 시간, 가장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은 어제 아빠와의 일이다. 그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였나 보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엄마는 전화를 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괜찮아. 이제 괜찮아졌어.”




엄마는 괜찮은 척하고 싶은 것이다. 엄마는 이제 감정을 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버리지 않는 척하는 방법을 배웠다. 아까의 기분 좋은 예감이 무색하게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육지에서의 고민들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왔다. 그 고민들이 내 것이 아님에도 마치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뒤를 바짝 쫓았다. 엄마는 그 전화가 내 하루를 어떻게 망쳤는지 모른다.




전화를 끊고 나는 빨래를 마저 개켰다. 곧장 씩씩대며 밖으로 나갔다. 게스트하우스 앞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뛰듯이 걸었다. 귤나무 밭과 군데군데 들꽃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한적한 시골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껏 미간에 힘을 주고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성큼성큼 걷다 보니 금방 바닷가가 보였다. 포구 바닥에 걸터앉아 밀려오는 파도를 보다가 옆으로 난 올레길을 따라 걸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늘 걷는 길이다.







언젠가 친구가 물었다. 제주의 뭐가 그렇게 좋아? 여기에선 10분만 걸으면 내 삶을 살 수 있다. 누군가의 말에 엎질러져 버린 것 같은 하루를 보낸 날에, 가족들은 알지 못하는 나의 산책로를 걸을 수 있다. 영업시간 따위 신경 쓰지 않고 하염없이 정자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다. 푸른 하늘 아래 반짝이는 파도를 보아도 되고, 지는 노을과 함께 음악을 들어도 되고, 별이 뜰 때까지 앉아 있어도 된다.




그럼 엄마가 버린 감정들도 잊히고, 집에 있었던 일들도 점차 멀어진다. 오직 나만 남는다. 제주에 있는 나.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보낸 하루와, 다른 누가 아닌 내가 느낀 감정만이 남는다. 그래서 문득문득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는 게 이렇게 가벼운 일이었나. 엄마의 고민, 아빠의 고민, 동생의 고민까지 모두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거였나.





아직도 나는 육지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육지라기보다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 사람들은, 특히 가족들은 내가 ‘제주도’라는 섬이 잘 맞나 보다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제주가 좋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만 들리는 고요가 좋고, 어떤 일이 있든 그 자리에 그대로인 하늘과 바다가 좋다. 바다는 가족들과 나의 삶을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명확히 갈라준다. 집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는 이곳에는 내 삶이 있다. 집에는 없는 나의 자리가, 다른 이의 감정과 무게를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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