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봉그깅
김녕의 한 포구. 제주의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모두 제각각. 안내받은 대로 모두 츄리닝에 운동화 같은 편한 옷차림이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모임장님은 오늘의 봉그깅 장소로 우리를 안내했다. 여기서 봉그깅이란 ‘줍다’는 뜻의 제주 사투리 ‘봉그다’와 ‘플로깅’의 합성어로, 쉽게 말해 바다 쓰레기 줍기다. 맞다. 오늘 우리는 쓰레기를 줍기 위해 모였다.
“여기 테트라포트 사이로 한 명씩 들어가서 주우시면 돼요.”
네? 거기로 들어가라고요? 어리둥절한 사람들에게 모임장님이 아예 한 명씩 자리를 지정해준다. 여기 한 분, 여기 한 분 들어가시면 돼요. 구멍 사이사이로 조심조심 발을 디디며 내 자리로 내려갔다. 막상 들어가 보니 내 어깨쯤 되는 높이다. 엥, 딱딱한 돌바닥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트리스처럼 푹신푹신하다. 몇 번 밟아보니 바닥에서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난다. 마스크를 뚫고 구리구리한 악취가 콧구멍으로 들어온다. 내 발 밑에 쌓인 하얀색 조각들은 돌이 아니었다. 모두 스티로폼 부스러기였다.
“모임장님. 이거 그냥 제가 밟고 있는 거 다 퍼 담으면 되나요?”
이게 진짜 다 스티로폼이 맞는지 두리번거리던 내가 외쳤다. 저 멀리서 모임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맞아요. 어차피 다 스티로폼이라 그냥 퍼 담으시면 돼요!”
우리는 일상 속에서 환경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배운다.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처럼. 나도 육지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런 방법들을 실천했겠지만 이곳은 제주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 조금만 걸으면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는 이곳에서는 육지에서보다 조금 더 쉽게 해 볼 수 있는 일이 있다. 바로 해양 쓰레기 줍기, 다른 말로는 봉그깅이다.
봉그깅만큼 사람을 뿌듯하게 하는 게 있을까. 봉그깅은 내가 환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감각을 가장 강하게 받을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이 빨대를 주움으로써, 거북이의 콧구멍에 빨대가 들어가지 않았고, 지금 내가 이 비닐봉지를 주움으로써 물고기가 흔들리는 비닐봉지를 먹지 않을 수 있었다. 봉그깅은 즉각적이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바다에 곧장 영향을 끼친다. 파도에 쓸려나갈 뻔한 페트병을 달려 나가 간신히 건져냈을 때의 뿌듯함이란. 나는 방금 바다로 흘러나가는 미세 플라스틱 하나를 덜어낸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허리를 굽히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간다. 몸에 스티로폼 조각을 뒤집어쓰고, 옷에는 폐플라스틱에서 흘러나온 알 수 없는 오물이 묻었지만 개의치 않는다. 지금은 내 앞에 보이는 쓰레기 하나 더 줍는 게 더 중요하니까.
“저희 이제 슬슬 정리할게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모임장님이 외쳤다. 이렇게 주웠는데도 아직도 쓰레기가 많아요. 사람들이 말했다. 아쉬움 반 조급함 반으로 우리는 마대자루를 묶었다. 팽팽하게 들어찬 마대자루를 들어 올려 한 곳에 모았다. 어디서 발견했는지 자루에 들어가지도 않는 큰 양철통과 그물도 있었다. 모임장님이 덧붙였다.
“사실 모든 포구가 다 이런 상태라고 보시면 돼요. 그런데 저희는 그중에서 밀물 썰물에 영향받지 않고, 깊이 같은 것도 고려하고 해서, 가장 안전한 곳을 골라서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진행하는 거예요.”
태어나 이렇게 많은 스티로폼 더미를 처음 보았는데 모든 포구가 다 이런 상태라니.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주울 수 있는 곳보다 그렇지 못한 곳이 더 많다며 모임장님은 설명했다.
제주에 있는 시간 동안 나는 봉그깅 활동에 여러 번 참여했다. 테트라포트, 모래사장, 현무암 해변가 등 장소는 물론 기상 상태도 매번 달랐다. 맑은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때도 있었지만 갑자기 부는 비바람에 바람에 쓸려오는 바닷물을 맞은 적도 있었다.
봉그깅은 장소나 날씨를 불문하고 언제나 많은 체력을 요한다. 돌 사이에 끼인 쓰레기를 빼내고, 밧줄을 끊고, 수없이 몸을 굽혔다 일으키기 때문이다. 봉그깅 끝나고 주변에 다른 곳도 구경하고 카페도 가고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가도 막상 끝나면 녹초가 된다. 카페고 뭐고 일단 빨리 씻고 집에 가서 자고 싶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봉그깅을 한다. 올라온 게시물들을 보고 갈 수 있는 날짜가 있는지 일정을 맞춘다. 몸이 지치고 힘들어도 그만 둘 수가 없다. 누군가와 함께 쓰레기를 주울 수 있다는 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경이로운 일임을 안다. 육지에 있을 때는 계속 살펴야만 했다. 정말 바다에서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보고 마음 아파하는 건 나뿐인가. 바다 쓰레기를 주우려고 하는 게 유별난 건가.
제주에서 봉그깅을 하면서 알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이렇게 바라만 볼 게 아니라 직접 해보자며 모임을 운영하는 행동력을 갖춘 사람들이 있었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은 많았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도 믿었다. 그래서 함께 쓰레기를 줍고 무거운 마대자루를 옮기고 서로에게 박수를 보낸다. 오늘 주운 쓰레기가 비록 아주 적은 양일 지라도,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다고. 함께라는 감각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봐, 나는 생각했다.
제주에서 봉그깅을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준비물은 일단 인스타그램 계정.
1. 관련 계정들을 팔로우하고 봉그깅 일정을 확인한다.
훨씬 더 많은 계정들이 있겠지만 일단 내가 팔로우하는 계정들은 다음과 같다.
디프다 제주 @diphda_jeju
플로그 @p_log_thurs
세이브제주바다 @savejejubada
2. 게시글을 통해 봉그깅 일정을 확인한다.
3. DM이나 네이버 폼 등 각자 양식에 맞추어 신청하고 신청 장소로 모이면 끝.
봉그깅을 하다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참여해도 되냐고 묻기도 한다. 그럼 어떤 경우든 모임장님이 반갑게 환영해주신다. 한두 사람의 도움이라도 큰 힘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혹시 봉그깅하는 사람들을 본다면 용기 내어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저도 같이 해도 될까요?”
혹시 이렇게 단체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쓰레기를 줍고 싶다면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마대자루를 구한다.
해양쓰레기의 경우 일반 쓰레기와 다르게 처리된다. 그래서 일반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아닌 마대 자루에 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대는 읍면사무소에서 받거나 철물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2. 안전한 장소에서 봉그깅을 한다.
'위험할 것 같으면 그냥 줍지 마세요.' 모임장님의 명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주울 쓰레기는 슬프지만 차고 넘친다.
3. 마대자루를 한 곳에 모은 다음 안전신문고에 신고한다.
안전 신고 유형 선택에서 기타 안전, 환경 위험 요인을 선택하고 내용에 “해양쓰레기 수거해주세요”라고 기재한다.
가끔 마대가 삭을 때까지 수거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혹시라도 쓰레기 양이 너무 적을 경우 수거가 더 늦어질 수 있으니 최대한 많은 인원이 가서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수거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