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은 훈장 6

기록되지 않은 훈장 6

by 김효숙

낙동강 전선이 흔들리던 그 시기, 아버지는 제주도 훈련소를 마치고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아직 스무 살을 갓 넘긴 초년병이었다. 군복도 군화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흙먼지 속으로 내던져졌다.

고지는 불타고, 하늘은 연기로 덮였으며, 땅은 포탄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부대 간부들이 하나둘 전사해 쓰러졌고, 그 속에서 아버지는 어느새 임시 간부병사로 임명되었다. 아직 명령을 내릴 자격도, 죽음을 감당할 각오도 서 있지 않았지만, 전투는 멈추지 않았다.


“진격하라!”

포성이 귀를 찢고, 전우들의 신음이 바람을 타고 스쳤다.

그때 바로 옆에서 함께 뛰던 전우 한 명이 포탄 파편에 맞았다.

순간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그러나 눈앞에 쓰러진 병사는 터져 나온 내장을 부여잡은 채 손을 허우적거리며 애원했다.

“살려줘… 데려가 줘…” 아버지는 그의 눈을 보지 못했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전우를 보내는 가슴 아픈 마지막 이별의 총성은 전우의 목숨이 깃든 슬픔의 울림이었다. 한편으로는 전사들이 자신을 버티며 싸우는 전쟁의 방식이었다.


그 한 발을 쏜 뒤, 아버지는 남은 병사들을 이끌며 또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걸음마다 전우들의 숨소리와 죽음의 속삭임이 발밑을 기었다.

그날 아버지는 처음으로 인간의 무게를 마음 깊이 느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한 사람의 삶은 수많은 숨과 피 위에 서 있다는 진실을.

그 무게는 군복의 흩어진 주름에도, 흙 먼지에 뭍은 유성 탄흔에도, 전장의 자기 자리에도 견고히 배어 있었다.


포성과 함성 사이, 진흙과 연기로 뒤덮인 전장은 살아 움직이는 지옥이었다.

흙먼지가 호흡 속으로 들어와 폐를 찌르고, 몸은 무너져 가는 진지 위에서 불안정하게 버티고 있었다. 주변의 누군가가 외치면, 그 울린 목소리는 먼 산울림처럼 퍼져 돌아왔다. 발에 밟힌 낙엽, 비틀거리며 흔드는 군모, 흘러내리는 땀방울—모든 것이 긴박했다.


그때, 아버지는 갑자기 느꼈다. 온몸이 전우들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총탄이 스치고 포탄이 지면을 찢으며, 다가오는 적의 그림자가 코앞에 드리워지는 가운데. 사방이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듯, 오히려 벽이 없는 광야 속에 던져진 듯한 공포와 책임이 밀려왔다.


총성이 멎었을 때, 그들은 살아 있었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하늘을 향해 비명을 질렀다.

그 전투 후, 아버지는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 훈장은 전우의 눈빛과 함께 아버지의 가슴속에 묻혔다.

아버지는 자주 이를 악물었고, 밤마다 손끝이 떨렸다. 누구도 모르게,

아버지 안의 전쟁은 오래도록 끝나지 않았다.


임시 간부로 잠시 전선에 나갔던 아버지는 곧 공병대로 재배치되었다.

대구 인근의 야전 기지에서 짧은 기간 공병 훈련을 받았고, 이후에는 ‘전투 공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최전선에 투입되었다.


공병대의 임무는 단순한 보수 작업이 아니었다.

폭격으로 무너진 다리를 잇고, 철조망을 걷고, 포탄이 떨어진 고지의 길을 다시 열어야 했다. 그러나 포성이 멎지 않는 땅에서, 그 일은 곧 전투 그 자체였다.

공병대는 총을 놓을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싸우며 길을 만들었고, 길 위에서 다시 싸워야 했다.


1953년, 휴전 협상이 오가는 와중에도 3.8선 부근의 교전은 멈추지 않았다.

전쟁은 끝난다 했지만, 총성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철원 부근 고지전에 투입되어 있었다.


수류탄과 포탄이 빗발치던 그날, 하늘이 찢어질 듯한 굉음 속에서 아버지는 폭발의 충격에 날아가 쓰러졌다.

파편은 등판과 팔, 다리, 몸 곳곳에 깊게 박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버지는 전우들의 시신 더미 속에 덮여 버렸다.


얼마나 흘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는 어둠과 피 냄새 속에서 정신을 잃은 채 간신히 숨을 붙잡고 있었다.

피비린내와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시체더미 속, 구더기들이 아버지의 상처 위를 기어 다녔다. 그 속에서 아버지는 살아 있었다.

정신은 깨어났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죽음의 장막을 찢고 생으로 돌아오는 신호가 된 오직 한쪽 발가락만이, 아주 미약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때 들려온 의무병들의 발소리. “이건 다 시체야… 수습해.”

그 말이 들리자, 아버지는 있는 힘을 다해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 미세한 움직임 하나가 죽음과 생존의 경계를 뒤집었다.

“살아 있다! 이쪽에 병사 한 명이 살아 있다!”

그 외침과 함께 아버지는 시체 더미 속에서 끌려 나왔다.


수류탄 파편이 등판 여기저기와 팔다리에 주로 박혀, 치명상은 피했다는 것이다.

군의관은 “기적”이라고 했다. 철원 전선에서 부상당한 아버지는 야전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1953년 5월, 후송 명령을 받고 육군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파편이 온몸에 박혀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심하게 손상되어 수차례 절단 위기를 넘겼다.

그로부터 3년 동안, 아버지는 육군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반복했다.

끝내 오른쪽 다리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해, 목발을 짚은 채로 1956년 제대했다.

그때 아버지는 아직 스물여섯 살이었다.


낙동강 방어전에서 아버지가 받은 훈장은 실전에서 직접 수여된 것이었다.

기록이 남지 않아 공식 문서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날 아버지의 피와 용기가 새겨진 훈장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가치를 알지 못했다.

어린 오빠의 손에 쥐어진 훈장은 장난감이 되었고, 어느 날 엿장수의 손으로 건너갔다. 전쟁의 피와 눈물이 깃든 증표가, 평화로운 일상 속 아이의 장난감으로 변했다가 사라짐은 ‘전쟁의 기억이 잊혀져 가는 과정’의 축소판과도 같다.


아버지는 훗날 보훈 심사에서 공적을 증명할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급수 판정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급수 등급 심사 때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원망하며 화를 냈다. 어머니도 억울함과 분노를 삼키지 못한 채, 한탄을 섞어 맞받아쳤다.

두 분의 다툼은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생존과 명예의 증거가 사라졌다는 커다란 상실감이었을 것이다. 그 훈장은 그냥 쇳조각이 아니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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