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무너질까 두려운 날들
6·25전쟁이 막 끝난 뒤, 거리엔 여전히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상이용사로 돌아왔고, 전장에서 총상으로 다쳐 다리 불구자가 되었다.
가난과 불안, 그리고 끝나지 않은 싸움이 우리 집의 공기였다.
나는 늘 두려웠다.
집이 무너져버릴까, 그 안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릴까.
우리 집은 척박한 땅 위의 밭 같았다.
그 밭엔 새싹과 독초가 함께 자랐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흙은 갈라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 틈새를 뚫고 올라오는 건 언제나 억세고 독기를 품은 풀들이었다.
그 속에서, 다섯 아이가 연약한 새싹처럼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날마다 서로를 향해 독을 품었고, 그 숨결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빛깔을 잃어갔다.
오빠와 언니는 눈만 뜨면 집 밖으로 달아났다.
밤이 깊어야 돌아왔고, 돌아오면 늘 야단을 맞았다.
그들은 바람과 어둠 속에서 숨을 쉬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게 집은 떠날 수 없는 뿌리였다.
내가 없는 사이 집이 무너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남았다.
어른들의 싸움을 말리고, 갈라진 틈을 봉합하고, 꿰매는 것이 나의 몫이라 믿었다.
그들의 목마름을 채우려 애쓰며, 늘 눈치를 보았다.
할아버지는 무기력했지만, 내가 웃어주면 기운이 났다.
“우리 방실이가 노래만 불러도 힘이 나.”
나는 그렇게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할머니는 부지런했다.
매일 같이 대가족의 이불을 뜯어 빨고, 기워서 다시 덮었다.
눈이 어두워진 할머니 대신 나는 바늘귀에 실을 꿰었고, 시장에선 짐을 나누어 들었다.
여름엔 시원한 콩물, 겨울엔 뜨끈한 국밥을 함께 먹으며 “참 착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 말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이불 같았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 “죽지 못해 산다”고 했다.
크고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 종일 장사로 몸을 갈아 넣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쓰러지지 않도록, 살아갈 힘을 잃지 않도록 나의 숨과 마음을 보탰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고, 존재의 무게였다.
그러나 아이였던 나는, 엄마를 괴롭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필요까지 채웠다.
그 모습은 형제들에게 아첨처럼 보였고,
그래서 나는 미움을 샀다.
이 이야기를 쓰다 보니 눈물이 흐른다.
눈물 속에는 두려움, 책임, 사랑,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이 뒤섞여 있다.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마음을 태워 가며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