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에는 자기소개와 함께 이론으로 클래스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한 권씩 교수님이 직접 쓴 수업교재를 받았다. 책에는 프랑스법령에 따른 잼에 대한 설명과 역사, 그리고 재료들에 대한 이야기, 교수님이 잼을 만들면서 익힌 노하우들이 적혀있었다. 교수님은 원래 베이커리쪽을 하다가 망해서 잼 쪽으로 우연히 시도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챔피언까지 됐다고 소개했는데 나 역시 베이커리카페를 하다 망해서 다른 길을 찾다가 온 거라 약간 동병상련의 마음이 갔다. 이론강의를 통해 현재 프랑스 잼의 트렌드와 앞으로 어떤 식으로 변화해 갈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잼 트렌드를 알게 되면서 나는 좀 더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프랑스 잼은 만드는 스타일이 여러 가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3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첫 번째 스타일은 자연에서 난 천연재료들만 이용해서 만드는 전통 스타일로 이건 스테판 교수님이 추구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 스타일은 내 일본 스승님 방법인데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잼 장인인 크리스틴 페흐베흐의 방법으로 크리스틴만의 색깔을 담아 새롭게 만든 스타일이다. 세 번째 스타일은 화학적으로 뽑은 펙틴을 이용해서 만드는 스타일로 보통 공장에서 많이 사용한다. 나 같은 경우는 기존에 크리스틴 페흐베흐의 방법으로 잼을 만들고 있었기에 프랑스 전통 방법의 천연적인 재료만 사용하는 방법을 추가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 교수님과 대화를 통해 놀라운 열정도 배울 수 있었다. 교수님은 1년에 300가지의 새로운 잼을 만들어 본다고 하셨다. 다양한 과일로 그 과일의 향을 최대한 살리면서 자연 그대로의 맛을 내는 데 많은 연구를 하시는 듯 보였다. 교수님이 한 일화를 들려주셨다.
한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사장님이 최고 좋은 품질의 과일들만 보여주셨다고 했다. 교수님이 다른 품종의 과일들도 보여달라고 하자 과일가게 사장님은 의아해했다. 왜 품질 좋은 과일들이 아니라 쓰고 과육도 별로 없는 품종들을 보여달라는지 말이다.
교수님은 다양한 과일의 품종을 다뤄보고 싶었던 것이다. 각각의 개성 있는 과일들의 품종을 통해 그 과일 자체는 맛이 떨어질 수 있지만 다른 과일이나 첨가물을 이용해 새로운 맛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름 이쪽 분야에서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먼 타국에서 열정을 더 불태울 수 있게 하는 불쏘시개를 만났다.
2시간 정도의 이론 시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첫 작업은 루바브를 손질하는 일이었다. 루바브는 국내에서는 흔하지 않은 채소다. 최근에 몇몇 농장에서 재배를 시작해 판매하기는 하나 극소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생소한 식물이다. 프랑스에서는 이 루바브를 잼을 만들 때 정말 많이 사용하는 데 이번 수제 잼 전문 클래스에서도 루바브를 활용한 레시피가 많았다. 나 역시 루바브를 다뤄본 적이 없었다. 한 번 냉동 루바브를 사용했을 뿐 실제 루바브는 여기 프랑스에서 처음 봤다.
수강생들이 다들 루바브 줄기를 하나씩 잡고 손질하기 시작했다. 나도 옆에서 루바브 줄기를 하나 집고 곁눈질로 다른 수강생들이 어떻게 손질하고 있나 살펴봤다. 곁 껍질을 과도로 제거하고 1cm 정도로 툭툭 썰고 있는 걸 확인하고 그제서야 나도 손질을 시작했다. 손질하며 생각보다 풀 향이 많이 나는 이 채소가 잼을 만들 때 어울릴지 긴가민가했다.
재료 손질이 끝나자 그 다음 순서로 교수님은 레몬을 끓여 펙틴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셨다. 이 펙틴이라함은 과일이나 채소에 들어있는 물질로 잼의 질감을 만들어 주는 다당류이다. 보통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펙틴 가루를 이용해서 잼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근데 이걸 직접 만드는 것이다. 사실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더 들지만 오로지 자연에서 나는 재료만을 이용하는 자연 친화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것이 프랑스의 대체적인 생각인 것 같다. 이를 볼 수 있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마트를 가면 알룰로스, 스테비아 등 대체당을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그리 흔하게 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