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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로사 Jul 20. 2024

여름의 맛

나의 여름을 구원해 준 감자와 옥수수

고구마처럼 

달지도 않고

호박이나 가지처럼 

무르지도 않으면서  

   

싱겁지는 않은 

담담하고 차분한 

중용의 맛  

  

하지 무렵 라디오에서 이해인 수녀님이 쓴 ‘감자의 맛’이라는 시를 소개해 줬다. 나는 바로 감자 10kg을 주문했고, 감자의 맛을 느끼며 여름을 보내고 있다.      


여름은, 내게 ‘중용의 맛’을 알려 준 감자의 계절이다. 개구리가 목청껏 개굴개굴 울어대는 여름밤, 뽀얀 속살이 포슬포슬하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감자와 사랑에 빠졌다.     


새만금 간척지에서 자란 ‘수미 감자’는 간을 안 해도 간이 딱 맞는다. 주먹만 한 감자를 솔로 박박 닦아 압력솥에 넣는다. 물은 자박자박 도토리 키만큼 붓는다. 타지 않을 정도의 수분만 필요하다. 뜨거운 불맛을 보여주니, 추가 요란하게 딸랑딸랑 춤을 춘다. 한소끔 식히고 감자 맛을 본다. 아니 여름을 맛본다.    

 


여름이 되면 나는 감자 전도사가 된다. 직장에 감자를 삶아 가서 여름의 맛을 전파한다. 오늘은 좀 여유 있게 담는다. 제일 먼저 만나는 분께 맛보기로 감자를 선물할 마음에 들뜬다. 행운의 주인공은 뜻밖의 선물에 놀라워했다. 

“이게 웬 감자야?”

“여름엔 감자죠! 여름 맛 좀 보세요!”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감자를 나눈 내가 더 행복한 순간이다.     


여름 제철 음식으로 사랑받았던 감자가 바닥을 보일 때쯤, 우리 집 현관 앞에 옥수수 한 자루가 도착한다. 여름이 절정에 다다랐다는 것은 옥수수를 보면 알 수 있다. 바야흐로 옥수수의 계절이다. 나는 괴산 대학옥수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정엄마의 고향이 괴산이다. 엄마는 괴산의 자랑거리 대학옥수수가 한창 나올 때면 잊지 않고 보내주신다. 나는 엄마 덕분에 일찌감치 대학옥수수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괴산 대학옥수수는 단맛을 내는 뉴슈가(설탕)가 필요하지 않다. 가장 안쪽에 있는 껍질 몇 개와 옥수수수염을 이불처럼 덮어준다. 팔팔 삶은 옥수수를 바로 꺼내지 않고 뜸을 들인다. 딱딱하기만 했던 옥수수가 말랑말랑한 사고의 과정을 거친다. 구수하고 담백하며 쫀득거리는 옥수수의 맛이 탄생한다. 여름의 맛이다.    

 


옥수수를 삶다 보면 그 열기에 땀이 폭포수처럼 터진다. 집안이 찜통으로 변한다. 한여름 숨 막힐 정도로 뜨거운 공기에서 옥수수를 수확하는 농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짐작해 본다. 한 김 식혀 냉동실에 여름의 맛을 보관한다. 집안을 한증막으로 만들어 버린 옥수수 삶기 대작전이 수고스럽지만, 식구들이 좋아하는 옥수수로 냉동실을 가득 채우면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여름이 그리울 때 잘 녹여 나의 여름을 나누어야겠다.     


싱겁지 않고 담담하며 차분한 중도의 길을 가는 수행자 같은 감자. 

구수하고 담백하며 쫀득쫀득한 맛을 내기 위해 말랑말랑한 사고의 시간이 필요한 옥수수.

둘이 닮은 것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희박한 유사성을 찾아보는 유연한 사고를 해본다. 


슬기로운 여름 생활을 위해! 

너무 덥다고 차가운 것만 찾기보다 감자와 옥수수에서 찾은 중용의 맛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의 여름을 구원해 준 감자와 옥수수처럼. 

더위 때문에 지친 그대들에게 여름의 맛을 전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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