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출산과 이사, 해외 이사까지..

아이들과 함께 나보다 이사 많이 한 사람이 또 있을까?

by 미니멀 사남매맘

’미니멀라이프‘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건 2012년이었지만 전업주부가 되어 마음에 새기게 된 건 2015년 이다.

아이를 낳고 나니 더 불어난 짐들 때문에 검색하던 중에

'멋진롬'님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덕분에 ‘미니멀라이프’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블로그의 글들을 하나씩 읽어내려가며 반성하고 나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겠다며 다짐을 했다.


때마침 2016년 8월, 남편 일자리를 따라 중국에 가서 살게 되었다.

21개월, 6개월 아이들과 함께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가자고 다짐했다.

최소한으로 챙긴다고 챙겼지만 전날 늦게까지 영업하는 마트에 가서 기저귀를 대량구매 했다.

아무래도 중국이다보니 '기저귀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깨지 못해서였다.

기저귀, 분유 등 아이들 용품이라 꼭 필요하다며 챙기다 보니 짐이 점점 많아졌다.

크고 작은 박스 26개를 배편으로 보냈다. 미리 챙겨놓지 못해 결국 자질구레한 물건들까지 다 담았다.

도착해서 바로 사용할 물건들은 캐리어 6개에 가져갔다.


이미 우리가 지낼 집에는 가구와 이불, 식기 등이 준비되어 있어서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짐이 도착하려면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그 물건들이 없어도 살 수 있었다.

간소하게 살다 보니 오히려 물건들이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 짐은 도착했고 급하게 꾸역꾸역 챙겼던 짐들을 풀며 한숨이 나왔다.

'뭘 이리도 많이 가져왔는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해외 이사를 통해 물건들을 정리하고 많이 비워냈다.

그러나 초심을 잃고 중국에서 3년 정도 지내는 동안 처음 가져갔던 짐의 두 세 배 정도 늘어났다.

아이가 둘이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일삼으며 '국민육아템'이란 건 다 구해봤다.

어린 아이들이 잠들면 물려받은 장난감과 책들을 정리하기 바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외로움 느낄 틈도 없이 항상 집 안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그 와중에 산후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아이들 재우고 정리하고 운동을 했다.

두 번째 산후다이어트도 64kg에서 47kg로 성공해 가던 시점에 셋째가 생겼다.

32개월 이후 임산부는 비행할 수 없어서 그전에 다시 귀국해 생활했다.

남편과 몇 개월을 떨어져 지내다가 남편이 출산 앞두고 휴가받아 2주일을 함께 보낸 후 또 다시 떨어져 지냈다.

산후조리를 하고 셋째 70일 정도쯤 다시 중국에 갔다.

짐들을 옮기는 과정에서 수화물 용량이 초과되어 추가요금이 발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3년 넘게 지내는 동안 참 많이도 한국과 중국을 오갔다.

그때마다 '아이들이 셋이나 된다'는 핑계로 많은 짐들을 챙겨서 이동하곤 했다.

남편과 사이가 너무 좋은 나머지(?) 생각지도 못하게 셋째 7개월 때 넷째를 선물받았다.

셋째까진 계획했는데 넷째는 상상도 못해 당황스러웠다.

그러던 중 중국에서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한 겨울 이사는 혹독했다. 추위와 싸워야 했다.

다행히 아이들을 봐주셔서 이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사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코로나로 중국 전역이 봉쇄되어 가고 있을 때 비자 연장하러 귀국했다.

남편만 비자를 겨우 받아 중국으로 돌아가고 남은 가족 넷은 한국에서 지내게 되었다.

코로나가 점점 심해져 하늘길이 막혀 7개월 정도 남편과 생이별을 했다.

친정부모님께서 건강하셔서 감사하게 나와 아이들과 몇 달간 함께 해주셨다.

한국에서 전세 만기로 또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해서 집을 알아보고 한 여름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계약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어 바로 계약할 수 있었다.

남편 없이 아이들 셋과 함께하는 이사는 마라맛이었다.

만삭의 몸으로 이삿짐 정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일을 마무리하고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엔 중국에서 배편으로 보낸 짐을 기다리며 ‘그 짐들 없이도 잘 살고 있는데 짐이 안 왔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출산 예정일 일주일 앞두고 중국짐이 도착해서 또 한숨을 쉬며 만삭의 배를 붙들며 허리보호대를 차고 짐을 정리했다.

미니멀라이프를 알긴 알았지만 실천하지 못해 많은 짐무덤 속에 파묻혀 지내게 되었다.


이사 온 집에서도 ‘책육아’를 하겠다며 중고판매로 나눔으로 많은 책들을 임산부의 몸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코웃음이 난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22살 때부터 마흔살인 지금까지 총 12번의 이사를 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결혼 후 한국에서 중국으로.

일본, 중국에서 지내면서도 이사를 했었다.

그렇게 많은 이사를 했음에도 늘 후회하면서도 당연하다는 듯 항상 많은 짐과 함께했다.

미니멀라이프를 알았어도 실천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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