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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멀 사남매맘 Jun 19. 2023

6인 가족 19평에서 미니멀라이프 시작하다

아이가 많을수록 평수와 상관없이 미니멀라이프

나에겐 무려 4명의 아이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31살부터 37살까지 4번의 임신, 출산을 반복했다.

아이가 많아질수록 집의 크기도 점점 커져갔다.

신혼집은 남편이 살던 6평 원룸에서 남편이 키우던 고양이까지 함께 생활했다.

남편의 짐으로 이미 꽉 차 있던 원룸에 내 짐까지 합쳐지니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집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곳이라고는 현관입구부터 세 걸음 정도 되었을까?..

침대, 세탁기, 건조기, 붙박이장, 수납장,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 등을 놓고 사용하다 보니 집안은 물건으로 가득 찼다.

첫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14평 투룸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원룸에 '짐이 왜 이렇게 많냐'는 이사업체 분의 핀잔을 듣기도 했다. 

원룸에 살다가 와서 14평 집이 한 없이 넓은 느낌이었다. 

임신 중기를 지나 말기로 가고 있을 때여서 밤마다 화장실이 너무 멀다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연년생으로 둘째까지 출산하며 14평 집도 물건들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국민육아템’이라는 것들로 집이 도배가 되어갔다.

14평 집 역시 발 디딜 틈 없이 되기 마찬가지였다.

국민육아템으로 가득 채웠던 14평 거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급하게 남편 일자리를 따라 타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때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머리를 망치로 한대 두들겨 맞은 듯 했다.

‘물건을 적게 가지고도 삶을 살아갈 수 있구나, 많은 물건들이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되는구나' 생각했다.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까지 봉사활동으로 다녀오며 집 잃고 가설주택에 사시는 분들을 봤으면서 아직도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살아가는 내가 참 한심하구나..’ 등등 머릿속에 온통 ’ 미니멀라이프‘라는 단어로 가득 차게 되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미니멀라이프'는 잊은채 이사업체에서 짐을 꾸리고 있는데도 자잘한 짐들을 욱여넣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아 전날 기저귀도 마트에 가서 다량 구매해서 일단 다 넣어 배편으로 보냈다.

다른 분들에 비하면 적게 가지고 간 거라는데 크고 작은 26박스의 짐을 보냈다.


미니멀라이프 실천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요즘엔 그때의 나에게 돌아가 얘기해주고 싶다.

“그 물건들 없이도 타국에 가서 잘 지내지 않았니? 다 챙길 필요 없어!, 기저귀 사재기 하지 마!, 자질구레한 물건들 다 안 넣어도 돼!”

타국으로 이사 간 이후에 배편으로 보낸 짐들이 오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는데 오히려 '그 짐들이 안 왔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 물건들 없이도 충분히 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국에선 24평, 셋째 출산 후 35평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미니멀라이프라는 단어가 가슴에 크게 새겨지지 않아서였는지 물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아이가 많아서 어쩔 수 없지..' 하며 포기하며 물건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코로나 초기 때 비자를 받으러 잠시 귀국했다가 하늘길이 막혀 다시 못 가게 되었다.

35평 집에 있던 모든 물건들을 놓아둔 채 갑작스레 귀국하게 되고 남편만 겨우 비자를 받아 다시 가서 일했다. 6개월 뒤에 넷째 출산일 임박해서 귀국했다.

그동안 타국에 있는 짐들 없이도 아주 잘 살았다.이렇게 잘 지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 잘 지냈다.

한국에서 다시 작은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19평에서 5명이 알콩달콩 살을 맞대며 살아갔다.

넷째 만삭 때도 책육아를 하겠다며 책 나눔 받아오고 중고거래 해와서 거실 한쪽 벽을 책장과 책으로 가득 채워갔다.


넷째 출산 열흘 앞두고 35평에 있던 짐들이 배를 타고 건너와 19평 집을 박스로 가득 채웠다.

남편이 정리하고 올 시간도 없이 바빴어서 쓰레기까지 다 실어왔다.

그 짐이 오던 날의 막막함은 잊을 수 없다.

만삭의 몸으로 복대까지 차고 한창 더운 8월 말에 땀 흘리며 박스 하나씩 열어가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35평 짐과 19평 짐이 합쳐지니 가관도 아니었다.

연식 있는 아파트라 베란다가 많아 베란다 3개를 가득가득 채웠고 방들도 짐으로 가득 찼다.

좁은 집이 더 좁아졌다.

넷째 출산 열흘 전 35평 해외 짐 도착

넷째 출산 후 집안일 하랴 코로나로 가정보육 하랴 신생아와 밤마다 씨름하며 많은 짐들 속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결국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다.

이겨내 보고자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해보았지만 마음이 잘 다스려지지 않았다.

내 마음 구석 깊은 곳에서 ‘미니멀라이프’라는 단어가 꿈틀거리며 나에게 말을 건네왔다.

“지금이야 얼른 넷째 어린이집 보내고 시작해 시작해!!! “

코로나 걸릴까 두려워서 넷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얌전히 집에 있다가 어쩌다 한번 놀러 온 친구에게 전염되고 말았다.

대가족이라 순차감염되어 보건소를 5번을 갔고 격리기간도 길어졌다.

격리해제 후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넷째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다.

등원시키고 오자마자 집 한 군데씩 비우고 정리해 가기 시작했다.

물건들이 비워지고 빈 여백이 생겨갈 때마다 마음에서 ‘바로 이거야’ 라며 산뜻한 기분과 성취감이 생겼다.

비움으로 인해 점점 늘어가는 여유시간에 내 마음과 몸도 돌봐주게 되면서 마음의 병이 회복되었다.

19평 작은 집에서도 6명이 충분히 넓게 지낼 수 있는 정도가 되어갔다.

거실 서재화는 포기 못한 19평 6인 가족 거실
19평 6인 가족 안방
베란다 한켠에 4남매 장난감

다음 집 이사를 앞두고 있었는데 10평 넓은 집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두려웠다. 또 29평 집에 물건을 가득 채우게 되는 건 아닌지..

그래서 ’ 6인 가족 5톤 트럭 한 대 이사 가기‘를 목표로 물건들을 더 많이 비워내기 시작했다.

이삿날에 남편 혼자 살 때부터 써오던 싱글침대,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있던 큰 서랍장, 읽지도 않는 책으로 가득 찼던 책장 등등 큰 가구들까지 비우고 5톤 윙트럭 한 대도 이사 가기에 성공했다.

그 결과 운동장만 한 거실에서 네 아이들이 공도 차고 신나게 뛰어놀고 있다.

미니멀라이프 시작 전의 나였다면 또 29평 집을 가득가득 채우고 있었을 텐데..

아이가 많다고 꼭 많은 짐들이 필요한 건 아니다.

4명까지 낳아보니 평수에 상관없이 물건이 적은 집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물건 정리하느라 보내는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바쁜 일상 속에 조금이나마 여유롭게 지낼 수 있다.

아이들이 장난감이 많다고 해서 잘 놀거나 행복해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자연에서 뛰어놀고 생활용품들을 가지고 노는 걸 더 즐거워한다.

집의 크기에 맞춰 짐을 늘려가던 맥시멀리스트였던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가며 느낀 마음들을 SNS에 기록해가고 있다.

나와 같이 집에 있으면 쉬지 못하고 쉬기 위해 카페에 가고 집안일하다가 하루를 다 보내고 있는 전업주부들에게 꼭 미니멀라이프를 알려주고 싶다.

초보 엄마들도 꼭 국민육아템으로 집을 채워가며 아이 재우고 장난감 정리하느라 늦게 자고 피곤해하지 말고 장난감 검색하고 구매할 시간에 아이에게 엄마 눈빛, 엄마 품을 더 내어주길 바라본다.

미니멀라이프를 하게 되면 불필요한 물건들과 씨름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얼마나 삶이 윤택해지는지..

사는 데 필요한 물건들은 몇 가지 없다는 걸 알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29평 6인 가족 거실
4남매 장난감방
29평 6인 가족 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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