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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멀 사남매맘 Feb 28. 2023

끊임없는 출산과 이사

아이들과 함께 나보다 이사 많이 한 사람이 또 있을까?

’미니멀라이프‘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건 2012년이었지만 주부가 되어 마음에 새기게 된 건 8년 전이다.

'멋진롬'님 덕에 미니멀라이프를 알게 되었다.

블로그의 글들을 하나씩 읽어내려가며 반성하고 나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겠다며 다짐을 했다.

때마침 2016년 8월, 남편 일자리를 따라 중국에 가서 살게 되었다.

21개월, 6개월 아이들과 함께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가자고 다짐하고 적게 챙긴다고 했지만 전날 늦게까지 하는 마트에 가서 기저귀를 대량구매 해오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중국이다보니 '기저귀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깨지 못해서였다.

기저귀, 분유 등 아이들 용품이라 꼭 필요하다며 챙기다 보니 짐이 점점 많아졌다.

크고 작은 박스 26개를 배편으로 보냈다. 결국 자질구레한 물건들까지 다 챙겨담았다. 

도착해서 바로 사용할 물건들은 캐리어 6개에 담아 갔다.


이미 우리가 지낼 곳에 가구와 이불, 식기 등이 준비되어 있어서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짐이 도착하려면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그 물건들이 없어도 살 수 있었다.

간소하게 살다 보니 오히려 물건들이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 짐은 도착했고 급하게 꾸역꾸역 챙겼던 짐들을 풀며 한숨이 나왔다.

'뭘 이리도 많이 가져왔는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해외 이사를 통해 물건들을 정리하고 많이 비워냈지만, 곧 초심을 잃고 3년 정도 지내는 동안 가져갔던 짐의 두 세 배 정도 늘렸다.

아이가 둘이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일삼으며 '국민육아템'이란 건 다 구해봤다.

아이들이 잠들면 물려받은 장난감과 책들을 정리하기 바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외로움 느낄 틈도 없이 항상 집 안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그 와중에 산후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아이들 재우고 정리하고 운동을 했다.

두 번째 산후다이어트도 성공해 가던 시점에 셋째가 생겼고, 32개월 이후 임산부는 비행할 수 없어서 그전에 다시 귀국해 생활했다.

남편과 몇 개월을 떨어져 지냈고 출산 할 때 와서 2주일 함께 보낸 후 또 다시 떨어져 지냈다.

산후조리를 하고 셋째 70일 정도쯤 다시 중국에 갔다.

짐들을 옮기는 과정에서 수화물 용량이 초과되어 추가요금이 발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3년 넘게 지내는 동안 참 많이도 한국과 중국을 오갔다.

그때마다 '아이들이 셋이나 된다'는 핑계로 많은 짐들을 챙겨서 이동하곤 했다.

남편과 사이가 너무 좋은 나머지 생각지도 못하게 셋째 7개월 때 넷째를 임신했다.

셋째까진 계획했는데 넷째는 생각지도 않게 생겨서 당황스러웠다.

그러던 중 중국에서도 이사를 해야 했다.

이사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코로나로 중국 전역이 봉쇄되어 가고 있을 때 비자 연장하러 한국에 나왔다.

아빠만 비자를 겨우 받아 중국으로 돌아가고 남은 가족 넷은 한국에서 지내게 되었다.

코로나가 점점 심해져 하늘길이 막혀 7개월 정도 생이별을 했다.

친정부모님께서 건강하셔서 감사하게 나와 아이들과 몇 달간 함께 해주셨다.

한국에서 전세 만기로 또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해서 집을 알아보고 한 여름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계약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어 바로 계약할 수 있었다.

남편 없이 아이들 셋과 함께하는 이사는 아주 죽을 맛이었다.

만삭의 몸으로 이삿짐 정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일을 마무리하고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엔 중국에서 보내온 짐을 기다리며 ‘그 짐들 없이도 잘 살고 있는데 짐이 안 왔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출산 예정일 일주일 앞두고 중국짐이 도착해서 또 한숨을 쉬며 만삭의 배를 붙들며 허리보호대를 차고 짐을 정리했다.

미니멀라이프를 알긴 알았지만 실천하지 못해 많은 짐무덤 속에 파묻혀 지내게 되었다.

이사 온 집에서도 책육아를 하겠다며 중고판매로 나눔으로 많은 책들을 임산부의 몸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코웃음이 난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22살 때부터 마흔살인 지금까지 총 12번의 이사를 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중국으로 일본, 중국에서 지내면서도 이사를 했었다.

그렇게 많은 이사를 했음에도 늘 후회하면서도 당연하다는 듯 항상 짐은 많았다.

미니멀라이프를 알았어도 실천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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